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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 최호적시광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동동의 여름방학> 리뷰 - 동동의 사적인 기억들로 구성된 영화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상영작 리뷰


네 명의 필자들에게 이번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의 상영작 7편에 대한 짧은 리뷰를 부탁했다. 

이 글들이 각 작품에 대한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아 주길 바란다.





동동의 사적인 기억들로 구성된 영화 - <동동의 여름방학>


허우 샤오시엔이 1984년에 발표한 <동동의 여름방학>은 - <펑쿠이에서 온 소년>(1983), <동동의 여름방학>(1984), <동년왕사>(1985), <연연풍진>(1986)으로 이루어진 - ‘성장기 4부작’의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대만 뉴웨이브의 초기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주는 게 한 특징이다. 그 시기의 대만 뉴웨이브 작가들은 함께 옴니버스 작업을 진행하고 서로의 작품에 긴밀하게 협조하거나 출연까지 했다(허우 샤오시엔이 금마장영화상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던 시절이다). <동동의 여름방학>에도 에드워드 양이 주인공 소년의 아버지로 출연한다. 당시의 대만 평론에 의하면 “<동동의 여름방학>은 대만 영화는 물론,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내에서도 명백한 변화를 보여주는 지점에 위치한다.” 하지만 요즘의 허우 샤오시엔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에게 <동동의 여름방학>은 다소 생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긴 호흡과 과묵한 인물 대신, 어른들이 속마음을 내비치고 순진한 꼬마들이 노니는 모습에서 차라리 80년대 한국영화의 풍경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들이 출연하는 문예물 같은 영화로 본다면 곤란하다. 기실 대만 뉴웨이브의 작가들에게 어린아이의 시기는 잊힌 적이 없다. 허우 샤오시엔의 전작이 <빨간 풍선>(2007)인 것을, 에드워드 양의 마지막 작품이 <하나 그리고 둘>임을 기억해 보라.


영화가 주인공 소년 동동을 소개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동동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전에 그가 속한 집단들의 풍경을 하나씩 먼저 드러낸다. 영화의 도입부는 졸업식 장면인데, 강당에는 아이들이 빼곡 서 있어서 누가 주인공 소년인지 알 수 없다. 카메라도 동동을 따로 붙들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동동의 가족이 소개되는데, 여기서도 동동은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동동이 속한 집단과 그 집단의 의식과 규칙을 하나씩 알려주는 장으로 초반부를 활용한다. ‘학교, 가족, 그리고 가족의 확장으로서 외할아버지 댁, 시골 마을 아이들’로 이어지는 순서는 자연스러운 듯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동동의 여름방학>이 도시와 시골, 세대와 세대를 표현하는 방식은 그러하다. 그렇게 1984년의 현재 혹은 그것보다 조금 전의 시기를 담은 <동동의 여름방학>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과거를 기억하도록 돕는 작품이 되었다. 대만과 한국 같은 예전의 개발도상국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은 기억의 저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동의 여름방학>에서 소년이 방학을 보내는 곳은 시골인데, 아마도 그 지역은 수십 년의 시간을 거치며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확률이 높다. 거기에 현대식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지 않았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허우 샤오시엔이 과거의 기록이라는 차원에서 <동동의 여름방학>을 만든 것 같지는 않다. 허우 샤오시엔이 무심한 양 포착하고 있는 것은 특정 시간을 통과하는 개개인의 감성 또는 기억이다. ‘할아버지가 사고뭉치 삼촌으로 인해 갖는 근심, 딸이 병으로 먼저 죽을까봐 걱정하는 할머니의 슬픔, 동네 아이들에게 미친 여자로 놀림 받는 한쯔와 동동의 어린 동생 정정이 맺는 유대’를 대하는 영화의 태도는 너무나 은밀하고 섬세해서 오히려 간과될 판이다. 흡사 극 중 인물과 관객 모두가 몰라서 놓치고 있는 것을 영화가 남몰래 챙기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중 압권은 극의 후반부에서 슬픔을 매개로 인물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딸의 병환으로 할머니가 울고, 어린 새가 죽었다고 한쯔가 울고, 한쯔가 새를 둥지에 놓다 떨어지는 바람에 정정이 울고, 엄마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동동 또한 울적해진다. 그렇게 밤이 가고 새벽이 온다. 이제 영화는 역순으로 그 인물들을 보여준다. 동동은 모기장 안에서 자고 있고, 정정은 한쯔 곁에서 자며, (딸의 쾌차 소식을 전해들은) 노 부부는 동네 입구의 다리에 서서 새벽 풍경을 본다.


그 밖에도 극 중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데, 아무래도 시선은 동동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극 중 큰 외삼촌이나 숙모, 조카의 비중은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것은 동동의 기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뒤 내가 기억하는 건 그런 것들이다. 따돌리던 여동생이 기찻길에 넘어졌을 때 한쯔가 구해준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삼촌은 가족의 반대로 법원에서 격식도 못 차린 채 결혼하는데, 동동이 유일한 가족으로 참석한 일은 또 어떤가. 강도를 저지른 범인을 친구라는 이유로 숨겨줬던 삼촌이 체포되었을 때 경찰서에 따라간 일은? 그 현장마다 동동은 무슨 목격자라도 되는 듯 서서 지켜본다. <동동의 여름방학>은 그 밖에도 동동이 그 여름의 방학 동안 경험하고 훗날 기억하게 될 수많은 일들로 가득하다. 그 기억들이 모여 한 인간을 형성한다. 허우 샤오시엔은 흡사 소년의 이웃 친구라도 되는 양 그 일들을 하나씩 주워 담는다. 허우 샤오시엔의 걸작에 포함되지는 않더라도 내가 <동동의 여름방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작은 것들에 있다.

이용철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