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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필름으로 보기까지 27년의 세월이 걸린 영화

봉준호 감독의 선택작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 시네토크

2월 5일 서울아트시네마 마지막 회는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이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상영되었고, 이어서 봉준호 감독과의 흥미로운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약간의 주석과 함께 존 부어맨 감독을 대신하여 영화의 각 장면들과 배우 그리고 흥미진진한 촬영 뒷이야기까지 전달해준 봉준호 감독의 걸출한 입담으로 시종일관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시네토크는 <서바이벌 게임>의 여운을 더 남기게 했다. 선수보호 차원(?)에서 끝내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던 한 시간 반 동안의 뜨거웠던 봉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지난 개막식 때 한 기자가 봉준호 감독에게 왜 이 영화를 추천했냐고 물었는데, 들러리 갔다가 봉변당한 느낌을 받을 영화라고 소개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들로 봉변당한 듯한 느낌을 줄 법한 영화다. 예전에 충무로 영화제에서도 한 번 상영을 했었는데, 그 때 상영비가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도 처음에 프린트를 받을 때 잘못 들어와서 두 번의 과정을 걸쳐 어렵게 상영하게 된 작품이다. 이 영화를 추천하신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보셨는지.

봉준호(영화감독): 감기가 와서 몸의 상태가 안 좋은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더 힘들다. (웃음) 진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오늘 여러분 덕분에 저도 시네마스코프 프린트, 제대로 큰 화면으로 보게 되었다. 프린트 컬러가 군데군데 불안정하게 변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쨌든 큰 화면으로 보니까 좋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중학교 1, 2학년 즈음인 80년대 초에 이 영화를 KBS 명화극장에서 <구출>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봤다. 그 당시에 약간 관심이 있었던 버트 레이놀즈가 나온다고 해서 엉겁결에 보았다가 영화에 완전히 빨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KBS 공중파에서 했으니까 핵심적인 그 씬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렬했던 기억이 있다. 88올림픽을 하고 비디오 시대가 열리고 VHS 비디오들이 나올 때, CIC에서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약간 이상한 제목으로 나왔다. 그래서 비디오로 다시 봤는데 텔레비전에서 못 봤던 장면들이 나오더라. 그 다음에 DVD 시대가 열렸다. 2001년경 집에 DVD를 장만하고 이 영화가 생각나서 아마존에 들어가 DVD를 샀다. 그 때 처음으로 2.35:1 비율로 영화를 봤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큰 화면으로 보게 되었으니 이 영화를 필름으로 제대로 보기까지 27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괜히 혼자서 감개무량한데 다시 봐도 고통스럽고 힘든 영화인 것 같다.

 

김성욱: 버트 레이놀즈 배우는 왜 좋아하시는지.

봉준호: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저 배우 참 느끼하다’라는 생각을 어렸을 때도 많이 했었다. <샤키 머신>은 <서바이벌 게임>보다 좀 더 뒤인 것 같은데 제가 호수극장에서 본 기억도 있고, 또 그 때 당시는 다른 배우들을 잘 몰라서, 존 보이트에 대해서도 긴가민가했다. 그리고 버트 레이놀즈가 그 당시에 느끼한 영화들, 막 나가는 상업영화들을 많이 했을 때여서 왠지 그 배우가 나온다고 하니까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존 부어맨 이라는 감독, 또 빌모스 시그몬드라는 촬영감독은 전혀 몰랐다. 그냥 봤었던 것인데 그렇게 보는 체험이 강렬한 것 같다. 오늘 이 시네토크를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존 부어맨 감독이 했던 인터뷰와 이 영화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새로 나온 개정판 DVD에 감독의 코멘터리가 있어서 보고 왔다. 그분이 못오시는 자리이니 대신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다. 아울러 제가 느낀 이런저런 감상들을 더해서. <마더> 촬영기간에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았는데, 마더는 엄마이고, 여기는 다 남자들만 나오는데 이상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자기 죄를 감추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죄를 저지르는 입장이 되는 것을 좋아한다. (웃음) 어렸을 때 몇 가지 일들도 있었고 이런 심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영화가 죄를 덮고 끝나잖나. 마더도 할아버지를 죽이고 나서 그렇게 끝나는데, 그래서 왠지 모르게 이 영화DVD에 다시 손이 갔었나 보다 싶다.

 

김성욱: 영화에 대해서 많이 연구를 해 오신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봉준호: 존 부어맨 감독은 80년대 <엑스칼리버>라는 영화로 유명했다. 최근의 이 분 작품은 <제너럴>이라는 영화를 많이 기억하실 것 같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세현급의 마틴 카힐이라는 실제 아일랜드의 국민대도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 감독은 이 영화로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저도 그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그 영화에 요즘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나오는 브렌단 글리슨이라는 아일랜드 배우가 출연하는데, 그 배우의 연기가 참 멋있다. 또 <엑소시스트 2>를 이 감독이 찍었다가 완전히 망하고 욕도 엄청 먹었다. 이 분이 들쑥날쑥 기복이 심하다. 그런 감독들의 필모그래피가 또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처럼 매번 걸작을 찍는 사람들은 징그럽지 않은가. 그런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지만 이 분은 실패작도 많이 있었고, 숀 코네리가 삼각팬티를 입고 나오는 <자도즈>라는 이상한 SF 영화도 있었다. 스틸 사진만 봐도 좀 어이가 없어 보이는 그런 영화. 반면 리 마빈이 나오는 <포인트 블랭크>의 경우, 지금 보신 영화보다 더 초기작인데 아주 파워풀하다. 볼만하다. <서바이벌 게임>은 1972년도 영화이니 존 부어맨의 비교적 초창기 영화에 속한다. <대부>랑 같은 해에 나왔다. <대부>의 그늘에 많이 가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감독상, 작품상 그 외에 몇몇에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비록 상은 못 받았지만, 첫 번째 존 부어맨이라는 감독의 좌표로 놓고 영화를 볼 수도 있고, 70년대 미국 영화라는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70년대 기운의 파워풀한 괴력을 품고 있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70년대 미국영화를 매우 좋아하는데 몇 년 전에 여기 오셨던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도 70년대 미국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다. <서바이벌 게임>이 사실 70년대 초대형 히트 영화도 아니고 존 부어맨이 프란시스 코폴라처럼 한 시대를 완전히 주름잡았던 감독이 아님에도, 굉장히 파워풀하고 엄청난 괴력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영화들이 또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다. 이상한 남자 성추행하는 것에서부터 사람이 다쳐서 뼈와 살이 옷 밖으로 튀어나오는 등의 오히려 요즘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기괴하고 거침없는 묘사들이 나온다. 이런 영화들이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지고 아카데미 상 후보에도 오르던 시대가 바로 70년대였다. 우리가 작가, 오떼르까지 치지 않더라도 시드니 루멧, 존 프랑켄하이머, 존 슐레진저, 알란 제이 파큘라 등의 감독들이 굉장히 힘 있는 영화들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좋은 프로듀서, 배우, 각본가, 감독들이 모두 많이 포진해 있었던 시대였다 보여진다. 존 부어맨 감독의 인터뷰를 봐도 ‘70년대 초였으니까 이런 영화를 스튜디오에서 만들 수 있었다.’, ‘스탭도 몇 명 안 되고 배우들 네 명이랑 똘똘 뭉쳐서 강에 가서 신나게 찍고 왔던 기억이 나면서 70년대니까 가능했다’고 한다.

 

<서바이벌 게임>은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로 원작자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영화 끝에 가면 배가 불룩 나온 보완관이 나오는데 그 분이 원작 소설가라라고 한다. 연기를 상당히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후반부에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는데 제임스 딕키라고 그 분이 원작자다. 메이킹 필름을 보니까 그 분이 미국 남부에 있는 대학교 교수라고 하더라. 시인이자 소설가인데 여대생을 모아 놓고 시 낭송을 하는 다큐멘터리 푸티지가 있는데 거의 뭐 최민수 형님으로 시를 몰입해서 읽고 있고 여학생들은 반해서 듣고 있는 모습이 있다. (웃음) 쇼맨십이나 포스가 강하게 있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들 사이에서도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 빅 클로즈업과 미묘한 대사들을 해내는데, 마지막의 조용히 가라는 대사를 하는 숏을 말하면 굉장히 인상적이다. 존 부어맨이 원작을 각색할 때 과격하게 각색을 하는 편인데, 이 영화 같은 경우는 비교적 소설을 충실하게 따라간 영화로 알려져 있다. 소설도 영화 제목처럼 ‘딜리버런스’다. 대신 도입부와 엔딩이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댐 공사부터 시작하면서 네 명의 주인공들이 강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소설은 그 앞에 각 인물들의 소개 등의 전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라스트에 보면 물 속에서 손이 올라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존 부어맨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더라. 그 라스트는 요즘의 시점에서 보면 약간 관습적인 공포영화의 클리셰 같다. 그러나 이 당시의 관점에서 작품 전체로 넓게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 장면으로, 처음에 키 작은 남자를 매장할 때 보면 손이 튀어나와서 존 보이트가 그 손을 다시 집어넣는 장면이 나온다. 손을 향해서 약간 카메라가 줌인도 하는데 그 때 손의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 사용할 것이 예고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식으로 소설에 충실하지만 변화를 준 부분들이 더 있다고 하더라.

 

“네 주인공의 앙상블이 뛰어난, 배우의 심리적 변화가 재미를 더하는 영화다”

 

촬영감독은 빌모스 시그몬드라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를 촬영한 분이다. 러시아 사람인데 헝가리에 갔다가 할리우드까지 오게 되었고 70년대 많은 족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역을 맡은 네 명의 배우들이 모두 재밌다. 당시 존 보이트와 버트 레이놀즈는 이미 스타급 배우였고, 기타를 치는 로니 콕스와 최고의 명연기를 보여주었던 뚱뚱한 남자의 네드 비티 배우는 이 영화가 첫 영화였다고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연극하던 분들 중에서 존 부어맨 감독이 열심히 찾아다녔다고 한다. 배우 네 명의 출신성분도 다양한데 버트 레이놀즈는 TV시리즈도 많이 했고 막 나가는 상업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반면 존 보이트는 이미 영화계에서 자리 잡은 상태로 이 영화 이전에 오스카 작품상을 탄 <미드나잇 카우보이> 주인공을 한 바 있다. 영화를 보면 네 명의 앙상블이 대단히 뛰어난데 사실 배우들을 급류에 저렇게 몰아넣으면 어디서 어떻게 왔던 앙상블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웃음) 돼지소리 내면서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인상적인데, 이 씬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사실 <서바이벌 게임>의 구조는 단순하다. 여행을 가다가 이상한 놈들을 만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총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로니 콕스가 물에 빠지게 된다. 또 이것을 처리해야 된다고 절벽에 올라가서 한 명을 죽이는데 그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모든 것이 애매하게 찜찜하게 사람을 미치게 하면서 끌고 간다. 너무 단순한데 매순간 매단계가 너무나 사실적이다. 화살에 관통된 키 작은 남자가 죽을 때의 그 과정을 생각해 보라. 죽은 사람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그 주변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또 급류를 내려갈 때와 절벽을 올라갈 때의 장면은 정말 같이 올라가는 느낌이다. 쉽게 장면들을 축약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편집의 느릿한 호흡이나 리듬들이 이상하게 실시간이 보존된 느낌을 준다. 단순하고 느릿한 호흡인데 모든 것을 체험했다는 느낌말이다. 편집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에너지와 연출 모든 것들이 체험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신기하다. 요즘 화려한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영화들을 봤을 때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사실감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입체감, 3D, 4D가 아닌가 싶다.

 

“느릿한 호흡과 리듬감이 이상한 사실감을 주는, 모든 걸 체험케 하는 영화다”

 

여튼 이렇게 체험시켜주는 느낌은 배우들과 연출의 힘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의 경우 놀라운 디테일들이 많다. 성폭행 당하고 난 후의 네드 비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자신을 성폭행한 사람이 나무 끝가지 걸려 죽어있으면 보통은 단세포적인 연기를 하거나 즉발적인 분노를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화면 뒤 쪽에서 네드 비티는 넋이 나가 상태로 있고, 존 보이트는 네드 비티에게 애기처럼 옷을 입혀주고 있다. 그러다가 그 씬 마지막에 냉혹한 얼굴로 '묻어버리자'라고 한다. 과장이 없는 연기와 그런 표현들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인물이 점점 뒤로 갈수록 냉정하고 냉혹한 인물로 변한다. 시골 사람들과 식탁에서 밥 먹는 장면을 보면 지금까지 리더 역을 맡아왔던 존 보이트는 울고 네드 비트는 오히려 식탁의 분위기와 대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헤어질 때 '당분간 보지 말자'라는 대사를 하면서 인물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한 연기다. 물론 각본과 연출이 연기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버트 레이놀즈가 나중에 놀이터에서 다쳐 집에 와서 징징 우는 어린 아이처럼 존 보이트를 붙잡고 우는데, 이런 연기를 버트 레이놀즈가 리얼하게 보여준 것도 의외였다. 기계가 몰락한다, 시스템이 몰락한다고 최민수 형님 톤으로 계속 읊어대다가 육체가 몰락하는 동시에 완전히 몰락해버린다. 그리고 끝에 가서 침대에 누워 깜찍하게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고 하는데, 이러한 버트 레이놀즈의 변화가 재미있다. 존 보이트도 사슴을 겨누었을 때의 심약하고 소심한 모습의 얼굴 표정이 좋다. 그랬던 사람이 버트 레이놀즈가 다리뼈가 튀어나오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리더의 역할을 맡아서 모든 것을 리드한다. 기타 연주를 했던 로니 콕스는 캐릭터가 변할 기회도 없이 죽어버린다. 여담인데 마지막 로니 콕스의 팔이 뒤틀려 있는 것은 인터뷰를 보니까 자기가 그냥 한 것이라고 한다. 특수효과나 더미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감독님 저 어깨로 재미있는거 할 수 있는데 보실래요'라며 로니 콕스가 그 모습을 보여주니까 감독이 좋다고하여 직접 하게 된 거라 한다. (웃음) 로니 콕스도 변화되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법과 민주주의 이야기를 하다가 매장하기로 결정하니까 미친 사람처럼 땅을 판다. 그 때의 순간은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법, 민주주의, 경찰에 대해서 말하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네 명의 인물들이 황금비율을 갖고 분할되어 있으면서, 각 캐릭터가 짧지만 악몽 같은 여정을 통해서 변화되는 모습이 재미있게 실감되게 나타나 있다. 이 영화에서 네 명의 배우들은 환상의 조합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매단계마다 우리를 질식시켜버릴 것만 같은 명확하지 않음, 모호함, 설명하지 않음의 것들이 더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우리가 실제로 낯선 곳에 가거나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장소나 사람에 대해서 설명을 듣기는 힘들지 않은가. 그냥 마주대하고 겪는 것 뿐 이다. 그야말로 봉변을 당하는 것. 이런 식으로. 사실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부분이 있었지 않나 싶다. 마을로 처음 들어왔을 때의 이상한 분위기들과 마을 주민들의 극도로 히스테리컬한 반응들은 봉변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것은 벤조 치는 소년이다. 15살 되는 이 소년은 그 마을 커뮤니티에서 직접 뽑았다고 한다. 뒤에 다시 나타나지 않지만 누군가 떠나거나 무슨 일이 시작될 때 불길한 기운을 암시하는 인물이 있는데 소년이 바로 그런 역할의 인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그 인물의 이미지나 느낌 자체가 워낙 독특해서 이 영화 초반부의 백미이다.


 

관객: 오늘 <서바이벌 게임>을 보면서 캐릭터들이 감독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향을 받거나 다른 영화들의 장치 혹은 캐릭터들을 재창조하신 다른 사례가 있는지.

봉준호: 제 단편 <지리멸렬>과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아파트 지하실 파이프 라인을 로우앵글로 머리 위로 지나가면서 트래킹한 샷이 있다. 저 개인적으로 이런 장면을 찍으면서 좋아했던 장면이었는데, 데이비드 린치의 <엘리펀트 맨>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나중에 DVD를 사서 보니까 완전히 똑같은 장면이 있더라.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3학년 KBS 명화극장에서 본 것인데 그 뒤로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없다가 나중에 <플란다스의 개> 개봉 후에 DVD로 보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봤던 것들이 잠재의식 속에 있다가 나온 것 같다. 저도 그 샷을 찍으면서 쾌감을 느꼈었는데, 굉장히 묘한 기분이었다. (정리: 신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