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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주앙 세자르 몬테이로와 친구들

[특집2] 페드로 코스타 마스터 클래스

“빈 자리의 존재를 기억하게 만드는 영화”

- 페드로 코스타 마스터 클래스



지난 5월 12일,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대표작 <행진하는 청춘>을 상영한 후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시간이 있었다. 자신은 ‘마스터’가 아니며, 이 자리도 ‘클래스’가 아니라는 말로 인삿말을 대신한 감독은 영화의 위대함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명료한 언어로 풀어나갔다. 그는 삶의 중요한 문제들에 직면하지 않으려 하는 영화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영화 속에서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는 죽음의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나는 영화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행사의 제목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나는 마스터도 아니고, 이 자리는 클래스도 아니다. 이 논클래스(non-class)에서 내가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수업이나 학교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것을 통해 영화를 배우는 것은 가능하다. 나는 영화에 대한 믿음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여전히 내 삶에서 큰 부분이고,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영화를 둘러싼 산업을 보면 점점 힘들고 슬퍼진다.

 

영화라는 것은 현실에 가장 가까운 예술이라고 느껴왔다. 우리 앞에 있는 현실 - 이를테면 꽃, 자동차, 물건들, 동물, 하늘, 아이들 - 앞에 서는 것이 영화였다. 나는 창조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예술 형식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았다. 나는 ‘창조’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방식의 상상력을 믿지도 않는다. 내가 왜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그것은 내가 이 세계 속에 있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내가 스스로 발견한 이 작은 세계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 이것은 가짜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일이다.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하거나 글을 썼다면 나는 혼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세계(world)라는 단어를 썼는데 그것은 ‘사회(society)’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사회’라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세계’이다. 물론 많은 감독들에게 사회라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런 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아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나는 다른 예술가들 중에 신중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그들의 존재를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들은 무언가를 잡으려 하기보다는, 인생을 내버려 둔다. 그들이 하는 일은 인생과 그저 마주하는 것이다. 어떤 영화들을 보면 경찰 보고서 같다. 나는 그런 영화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너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식의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이러한 질문들 사이에 있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너무나 작아서 식별하기 힘든 것들. 이를테면 ‘집을 언제 떠났느냐’와 ‘범죄 현장에 언제 도착했느냐’의 두 질문 사이에 있는 일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영화와의 동일시를 거부해야 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단어는 동일시(identification)이다. 관객이 영화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인생이 있는 것이고, 관객이 그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영화를 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나쁜 모습이지 않을까(웃음). 영화는 무엇이 옳지 않은지, 무엇이 좋지 않은지, 무엇이 더 나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의 감독들은 어떤 일을 실제로 ‘가능하게’ 만드는 작업을 보여주지 못한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오즈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의 영화 속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그것은 큰일이지만 큰일이 아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동경이야기>에서 노파가 죽었다. 노파가 있었던 공간 안에 노파가 더 이상 있지 않다. 대신  당신은 그 빈 공간 안에 여전히 베개와 의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아무도 이런 영화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트랜스포머>를 보기 원한다. 요즘 관객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았다. 어떤 면에서는 그곳에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을 상실한 듯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빈 공간에 없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 영화들을 보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들이 이 극장을 떠나도 여기에 무언가가 남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존재(presence)와 부재(absence)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들은 현실도피주의적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도망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도피하는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한다. 나는 여전히 두세 명만이 진지한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영화들은 일종의 불꽃놀이거나 자랑일 뿐이다. 감독들도, 관객들도 어떤 이미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에너지나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혁명을 원하지도 않는다. 오즈도 혁명을 원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감독이 있는가? 이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곧 휴머니티를, 공기를, 느낌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천장을 보고 옷을 입고 부엌으로 가 아침을 먹는다. 이 일련의 행동들 사이에 엄청난 것들이 있다. <호빗>이나 <트랜스포머>는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경찰들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알아서도 안 되는 것들이다. 오즈 영화를 보면 강한 정서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의자를 보고 사람이 운다. 왜냐하면 그 의자는 거기에 더 이상 없는 사람, 혹은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영화에서 본 위대함이었다. 그곳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그만두는 순간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 방금 상영한 <행진하는 청춘>도 그렇고, 이전 영화들이나 최근의 영화들에서 당신은 특정한 지역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스본의 특정한 지구에 대해 느끼는 감독으로서의 애정, 혹은 책임감이 있는가.


페드로 코스타 :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나에게 매우 어렵고도, 때로는 간단하다. 할 일도 많고 문제도 굉장히 많다. 영화를 찍을 때 현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로 괴로워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책임감같이 큰 것이 아니라 더 작은 문제들이다. 정치, 역사, 기억, 모든 것은 매우 작다. 존재하지 않는 문제들을 다루는 요즘 영화들은 너무 가짜 같다. 그런 영화들에서 나오는 사랑, 삶과 죽음은 너무나 가짜이고 인위적이다.


관객1 : ‘사회(society)’를 거부한다고 했는데, 정확히 사회의 어떤 속성을 거부하는 것인지.

 

페드로 코스타 : 한 가지 요소만이 아니다. 어떻게 경찰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나는 경찰이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한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그런 일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내가 영화를 찍는 것이다.


관객2 : 관객이 인물과 동일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영화 속 배우들이 실제 인물처럼 연기를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할 때 연기 연출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페드로 코스타 : 연기 연출에는 비밀이 없다. 다만 굉장히 어려울 뿐이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촬영을 하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따라가고, 실제로 해 볼 뿐이다. 나는 처음 떠오르는 것, 혹은 첫인상을 절대 믿지 않는다. 계속 생각을 한다. 그런 것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무성영화가 좋았던 것 같다. 무성영화는 대사가 없고, 그저 보여 주어야 한다.


관객3 : 이전의 영화들에서는 말이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본 <센트로 히스토리코>에서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나. 그리고 차기작으로 어떤 영화를 준비하고 있나.

 

페드로 코스타 : 변화가 생긴 이유는 장소가 사라지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이미 다음 영화 작업을 거의 끝냈다. 다른 감독들과 공동 작업을 할 예정이다. 영화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만약 영화가 그냥 영화이기만 했다면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가 아닌 다른 것이어야 한다. 친구들, 혹은 영화를 뛰어넘는 약속 같은 것.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잃어버린 많은 것을 다시 발견했다. 영화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이것은 슬픈 것이 아니라 기쁜 것이다. 언젠가 내가 영화를 그만둔다면 그때 비로소 행복해질 것이다.


 

정리│지유진 관객에디터

사진│주원탁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