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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4 베니스 인 서울

[특집 - 2014 베니스인 서울]변신 이야기, 나폴리의 신화 - <신화 속의 여인: 소피아가 말하는 로렌>

변신 이야기, 나폴리의 신화

- 마르코 스파뇰리의 <신화 속의 여인: 소피아가 말하는 로렌>



다큐멘터리 <신화 속의 여인: 소피아가 말하는 로렌>에서 로렌은 반복하여 배우로서의 열정, 의지, 용기 같은 미덕을 강조한다. “미모는 도움은 되겠지만, 중요한 영혼이 아닐까요.” 로렌에 따르면, 배우에게 필요한 미덕은 사회적스펙이기보다는 윤리적 태도다. 실제로 로렌은 내세울 거의 없는 하층민 출신인데, 자신의 노력으로 스타가 대표적인 배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빼어난 미모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10 때의 오디션 관련 장면을 보면, 배우로 성장하며 가꿔진 것임을 있다. 알다시피 이탈리아에는 미모로만 따지자면 로렌보다 뛰어난 배우들이 넘친다. 로렌은 자신의 말처럼 남다른 윤리적 태도, 열정으로 정상까지 올랐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어두운 과거를 딛고, 고생 끝에 스타로 성장한 로렌의 이야기는 대중들이 꿈꾸는 바로 신화일 것이다. <소피아가 말하는 로렌> 신화의 과정을 기억하는 다큐멘터리다.



비토리오 데시카의 발굴


다큐멘터리는 나폴리의 어느 극장에서 로렌이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로렌의 옆에는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이 있고, 당시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개봉을 준비 중인 것으로 봐서, 1963년의 어느 날일 것이다. 당시에 로렌은 이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이탈리아 최고의 배우였다. 대중 앞에 서는 경험이 풍부한 로렌이 이날만은 약간 예민해 보인다. 아마 고향에 금의환향한 배우의 감동 같은 흥분일 터다.


로렌은 나폴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모친은 미혼모이고, 로렌은 여동생과 어릴 때부터 비합법적인 가족 대한 열등감을 느끼며 자랐다. 부친은 딸을 두고도 결혼은 다른 여성과 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번도 갖지 못해 아쉬운 없나?”라는 질문에어린이였던 이라고 로렌이 고백한 대로, 자신은 남들과 같은 어린 시절을 전혀 누려보지 못했다. 빨리 철이 들어야만 했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모친이 운영하는 작은 바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런데 서른도 되기 전에 세계의 별이 되어 고향 사람들 앞에 것이다.


로렌의 영화계 은인은 10 만난, 이탈리아의 유명 제작자이자 훗날 남편이 되는 카를로 폰티이다. 그는남편이자, 아버지가 없던 로렌의 (유사) 아버지이자, 영화계의 동료이다. 폰티 덕분에 로렌은 단번에 배우로 성장할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단역을 전전하던 로렌에게 폰티가 소개한 감독이 바로 비토리오 데시카이다. 데시카의 <나폴리의 황금>(1954)에서 로렌은 스타가 되는 기회를 얻었다. 길지 않은 분량의 연기였지만, 여기서 건강하고, 섹시하고, 여유 있고, 사랑에 주저하지 않는 로렌의 유명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로렌은 평생의 감독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든 비토리오 데시카를 주저 없이 꼽는다.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로렌의 사진들


<나폴리의 황금>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 이탈리아에서의 활동은 3년도 지속하지 못하고 로렌은 1957 할리우드로 간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영화적인 영예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작품들로 얻는다. 데시카는 다시 로렌에게 최고의 선물을 하는데, 바로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 여인>(1960) 통해서다. 영화로 로렌은 칸영화제의 주연상까지 받았으니, 그때가 경력의 최고점이라고 하겠다.


1967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에서 로렌의 모습을 담은 사진만으로 전시회도 열린다. 다큐멘터리의 화면들로 상상해 있는데, 아마 사진전은 10 때부터 당시의 스타의 모습까지 모두 전시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속에는 시골 소녀 같은 로렌이 변신을 거듭하며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의 땀들이 배어 있을 같다. 나폴리의 가난한 소녀는 어느덧 살아생전에, 죽어서야 주로 가는 박물관 Museum 전시 대상이 되는 신화를 만든 것이다.


 

한창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