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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지상중계] 후나하시 아츠시 마스터클래스 - 시대와 관계성을 갖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지난 2월 24일,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의 두 편의 영화, <야나카의 황혼빛>와 <빅 리버>의 상영 뒤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되었다. 이날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은 페드로 코스타와 왕빙의 영화,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자신의 최근작 <뉴클리어 네이션>의 영상들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무시간성, 0도의 화면과 같이 흥미로운 개념들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던 이 날의 마스터클래스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먼저 간략하게 후나하시 아츠시 감독을 소개해 드리려고 한다. 1974년생으로 오사카출신이며, 도쿄대에서 공부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연출수업을 받고 2006년에 16mm로 첫 장편영화 <에코스>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여러 국제영화제에 소개가 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두 번째 작품인 <빅 리버>는 35mm 시네마스코프로 만들어졌으며, 국내에서도 개봉 되어 국내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09년에는 <야나카의 황혼빛>이 국내에선 CINDI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그 해 베스트 텐 중 하나로 손꼽았을 만큼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최근에는 <뉴클리어 네이션>을 만들어서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상영 되었다. 최근까지의 작품들 안에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고 오늘 마스터클래스 시간에도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작업과 관련해서 감독으로서의 독특한 영화론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후나하시 아츠시(일본 영화감독):
서울아트시네마에 초대받게 되어 감사드린다. 서울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전에도 몇 번 왔었다. 시네마테크와 같은 곳에서 영화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과 영화 얘기를 나누는 일은 정말 기쁜 일이다. 방금 소개해 주신 것처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양쪽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감독 경험 없이 바로 영화감독이 된 최초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감독들도 제게는 10년, 20년 선배인데 그 분들은 조감독의 수련 경험을 쌓고서 감독이 되었다. 일본 스튜디오 시스템은 전후에 거의 없어져가긴 했지만,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여전히 그런 맥락이 남아있어서 인디펜던트 영역에서도 조감독의 경험을 쌓는 것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학교 출신의 감독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바로 감독으로 데뷔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도쿄대학에서 영화 비평을 공부하면서 대만영화를 테마로 공부했었다. 미국 뉴욕에서 영화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에코스>라는 영화를 연출해 데뷔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부족한 현장경험을 절감하게 되었고, 일단 많이 찍어보자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도 찍어보고 극영화도 찍어보았다. 가능한 한 많이 찍으면서 경험을 많이 쌓은 것이 저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어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어떻게 공정함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없이 말할 수 있는 부분인데, 대부분의 영화는 엔딩이 예측 가능하지만 어떤 영화들의 경우에는 엔딩을 예측할 수 없는, 저는 ‘0도의 화면’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시마 나기사가 말하는 다큐멘터리의 두 가지 원칙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60, 70년대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많이 찍었는데 당시에 오시마 나기사가 쓴 글에 다큐멘터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진정으로 진실을 쫓는, 힘이 강한 다큐멘터리는 두 가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기록 대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기록이 그것이다. 그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중 <잊혀진 황군>이라는 작품이 있다. 2차 대전에 강제로 징용당해 전투를 치르거나 노역을 해서 상이군인이 된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일본정부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당시 남한과 북한에서도 외면당했다. 오시마 나기사는 그들에게 밀착해서 촬영을 했다. 시위를 하고 전단지를 뿌려보지만 일본인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버린다. 마지막에 한 인물에게 감독이 묻는다. 그는 눈을 다쳐서 실명한 상태였다. 감독은 그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묻고, 그는 자신의 눈을 보라고 말한다. 뭉개진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서 그 장면이 영화의 엔딩이 되는데, 아주 강력한 엔딩이다. 이 영화 같은 경우 오시마 나기사가 말한 다큐멘터리의 두 가지 원칙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본다. 촬영 기간 자체는 비교적 짧지만 철저하게 대상에 밀착해 촬영했다는 점에서 장기간의 기록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오시마 나기사는 일본의 전후 다큐멘터리와 당시의 학생운동, 미일안보조약반대운동 등에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민중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되며, 피해자의 의식, 피해자의 괴로움에 대해 호소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의 접근은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값 싼 방식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구로사와 아키라의 <내 청춘은 후회 없다> 같은 영화나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스물 네 개의 눈동자>와 같은 영화들은 관객들이 바로 감정이입해서 그 괴로움에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오시마 나기사는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다큐멘터리는 달라야 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잊혀진 황군>에서도 오시마 나기사는 재일조선인 상이군인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거리를 둬서 자꾸 질문을 하게 되고, 감정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과 상황에 대해 이해하게끔 하는 방법을 취한다.

공정함을 갖고 다가가기

오시마 나기사가 말한 두 가지 원칙, 기록 대상에 대한 애정과 장기간의 기록에 대단히 찬성하고 있고,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공정함에 대한 부분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장을 찍고 그것을 흡수하려고 할 때, 그리고 그것을 다시 보여주려고 할 때 가능한 한 공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했던 <뉴클리어 네이션>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1년 동안 그 곳의 사람들의 모습을 찍으면서 만든 영화이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과연 만드는 이의 판단이 어디까지 작용해야하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10년이나 20년 뒤에 봐도 관객들에게 열려있고,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있은 후, 원전이 있던 후타다 마을의 주민들은 3월 하순부터 도쿄 근처의 폐교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그 때부터 약 10개월 동안 그곳에서 같이 지내면서 그 분들의 모습을 찍어서 만든 영화가 <뉴클리어 네이션>이다. 비극이라는 것을 다룰 때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촬영현장이었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다. 첫째는 재해 비극을 그릴 때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파괴된 형상들이 이미지적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많이 담는데, 그에 비해서 피난소에서 사람들이 줄서서 급식을 받는 일들은 이미지 자체도 강렬하지 않고,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분들이 매일 그렇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 기다림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분들이 이렇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매일 반복해서 겪는 그러한 상황만을 그린다는 것이 맞는 일인가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그 분들은 원전 설립을 통해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던 사람들 때문에 그동안 어느 정도 원전을 지지하고 지탱해온 면이 있다. 과연 백퍼센트 그들의 편을 드는 것이 맞는 일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영화들은 많았다. 일본에서는 하지만 그것들은 원전을 홍보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자신들의 주장만을 담은 영화였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은 지금 보면 대단히 낡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든 영화는 그런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사람의 생각, 사상이라는 것은 아주 쉽게 낡은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환경을 그대로 담아서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이 공정함이다. 피사체와 일정 거리를 두어야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내가 느낀 것을 그 자체로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10개월의 촬영 기간은 나의 선입견이나 생각자체를 매일매일 스스로 갱신해나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피난소에서 얼마나 힘들게 지낼까를 담으려고 했는데, 정작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도 다툼이 있고 이기주의가 있었다. 과연 나는 누구의 편을 들것인가. 그러다보니 나는 누구의 편도 되지 말아야겠다는 것, 공정함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시간성과 0도의 화면

오시마 나기사가 말한 두 가지 원칙과 제가 말씀드린 공정함, 이 세 가지는 저의 영화 <야나카의 황혼빛>에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들을 만들게 되면서, 그런 식의 다른 감독 영화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한 가지 독특한 느낌을 얻게 된다.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저는 이런 느낌을 동굴 속에 가라앉는 느낌이라고 부른다. 인물들을 동일체로서 느끼면서, 시간의 경과 자체를 못 느끼게 되는, ‘무시간성’으로 가득 찬 영화들이 있다. 픽션이든 다큐멘터리이든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그러한 무시간성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했다. 페드로 코스타나 왕빙과 같은 감독들의 영화 역시 무시간성으로 관철된 영화들이다. 페드로 코스타는 영화에서 포르투갈의 슬럼가를 계속해서 담았다. 아주 비참한 삶이지만 그 지역의 사람들을 의외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아낸다. <반다의 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름다움과 비극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보고 대단히 많은 감동을 받았었다. 영화제에서 함께 대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얘기했던 것 중 하나가 ‘당신은 반다와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군요’라고 말했다. 그 때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말하길, <반다의 방> 전에 <뼈>라는 극영화를 만들었는데, 극영화 촬영장에 가면 남성적인 역학관계가 생기는데 그것 자체에 대단히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야말로 혼자서 <뼈>를 찍었던 장소에 다시 가서 찍은 다큐멘터리가 바로 <반다의 방>이라고 했다. 그런 감각은 제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빅 리버>를 40~50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촬영했는데,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위아래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저는 배우들을 맘대로 컨트롤해서 찍는 것보다는, 배우들이 갖고 있는 인간성을 담고 싶었고, 그들만이 갖고 있는 시간성에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나와 내 앞의 사람이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가 되어서 그야말로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담고자 했던 것이 <야나카의 황혼빛>와 <뉴클리어 네이션>이었다.



<반다의 방>도 그렇지만, 아무도 없는데 카메라가 있는 것 같아서 마치 투명카메라 같이 느껴지는, 그래서 그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화면에서는 언제 컷이 끝날지 알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뚜렷한 사건이 없다. <반다의 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사람들마다의 시간에 따라 진행되다보니 언제 영화가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시간에 의존해서 진행되는 경우 놀라운 기술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간을 어떻게 아름답게 잡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저는 이것을 ‘0도의 화면’이라고 부른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화면을 말한다. 이러한 화면은 무엇인가 설명하지 않으며,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 그 자체를 담는다. 이런 ‘0도의 화면’을 담는 것은 페드로 코스타 뿐 아니라 왕빙의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왕빙의 <중국여인의 연대기>는 인터뷰만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신문기자였다가 정치공작으로 인해 문화혁명 당시 강제노역을 해야 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극영화를 만든 것이 바로 <바람과 모래>이다. 사막의 강제수용소에서 땅을 파서 만든 굴에 들어가 생활해야했던 비참한 상황을 계속해서 밀착해서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노동자들의 얼굴은 시커멓다. 누가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다. 개인이 아닌 집단을 그림으로써 그 시대만의 괴로움을 그릴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막의 추위와 괴로움을 느끼게 되고, 상황 자체의 시간을 카메라가 쭉 따라가다 보니 그 무거운 시간의 흐름, 일종의 무시간성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 제 영화인 <야나카의 황혼빛>에는 앞을 못 보는 무덤지기 할머니가 나온다. 500개나 되는 무덤을 혼자서 관리하는 그 분의 시간을 지긋하게 담음으로써 일본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지역 공동체, 그 공동체의 끈끈함 결속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빅 리버>에서도 파키스탄인 알리는 아내와의 시간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깨닫게 되는 시간의 그 무시간성을 그려보고 싶었다. 무시간성이 끝까지 관철되는 화면 속에서 사람들은 괴로움이나 슬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것들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고 싶다.


관객1: 소개해 주신 영화들이나 감독님의 영화들이 ‘무시간성’, ‘0도의 화면’과 같은 방법론에 있어서는 같다고 볼 수 있겠지만 소재들은 모두 다르고 굉장히 다양하다는 느낌이었다. 감독님은 작업의 동기나 출발점을 어떻게 찾으시는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좋은 질문이다. 사실 어떻게 테마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가는가는 누가 가르쳐 준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다. (웃음) 저 같은 경우엔 매번 그런 것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싸워서 얻는다. 대부분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나오는 문제의식 같은 것들이 제 출발점이 되어 왔다. 예를 들어 <빅 리버>를 만든 것은 9·11 테러사건이 시발점이 되었다. 사건 바로 직후에 미국 아리조나에서 파키스탄인이 터번을 두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백인이 총으로 쏴 죽였던 일이 있었다. 정말 충격을 받았었고, 미국의 서부시대의 무법천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 들었다. 그렇다면 서부에서 9·11의 테마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를 가지고 출발했던 것이 <빅 리버>다. 이런 식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한 저의 반응 그것 안에서 테마를 결정하는 기회를찾는다.

관객2: 감독님의 이론을 흥미롭게 들었다. 종종 다큐멘터리가 더 픽션 같고, 픽션이 더 다큐멘터리 같은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야나카의 황혼빛>에서도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공존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라는 것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데,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저는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긋고 있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를 더 선호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빅 리버>를 만들 당시에도 그랬고,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에도 그랬고, 극영화를 찍겠다든지,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정한 상태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싶다고 만드는 충동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진다. 편의상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라는 구분이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픽션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둘에 대한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멋진 장면, 멋진 영화를 찍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객3: <빅 리버>에서 미국의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후나하시 아츠시: <빅 리버>에서 사막을 집중적으로 다뤘던 부분은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 살고 있는가, 그 환경을 어떻게 다룰까 하는 문제들이 중요했다. 실제로 많은 거장들의 영화들을 보면, 환경을 어떻게 담는가가 중요하고 또 굉장히 아름답게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존 포드나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허우 샤우시엔 영화들에서 환경을 담는 롱샷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풍토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그런 부분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성욱: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감독님의 마지막 소감을 들으면서 오늘 자리는 마감해야겠다.
후나하시 아츠시: 오늘 이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얘기 나눌 수 있어 기뻤다. 앞으로도 픽션이나 다큐멘터리라는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영화란 시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일본영화에서는 그런 것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시대와 관계성을 갖는 영화들은 꼭 만들어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저 자신도 그러한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