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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죽음을 넘어선 자연의 예찬 - 할 애쉬비의 <해롤드와 모드>(1971)


 

 


 

할 애쉬비는 70년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감독 중 한 명이다. 프란시스 코폴라, 로버트 알트만, 브라이언 드 팔마, 테렌스 멜릭과 같은 세대인데, 어쩐지 애쉬비는 그들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해롤드와 모드>는 애쉬비의 두 번째 연출작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이제 성인이 된 해롤드는 자살놀이를 일삼으며 장례식에 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죽음과 연관된 일 외에는 딱히 관심 없던 그는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모드를 만난다. 이제 곧 여든 번째 생일을 맞는 모드는 해롤드와 대조적으로 쾌활하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진 노인이다. 해롤드는 모드를 만나며 점차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에 매료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해롤드와 모드>는 마치 나이 든 사람의 지혜로움으로 인해 점차 변화해가는 주인공의 성장스토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분명 해롤드는 모드를 만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으니, 성장스토리라는 말이 어느 정도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십 대 소년 해롤드와 팔순의 노인인 모드의 관계를 연인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여든 살의 여성을 성적인 매력을 가진 존재로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루스 고든이 연기한 모드는 사실 처음부터 꽤나 관능적인 인물이다. 죽음에 사로잡혀 있던 해롤드는 그녀의 자유분방함에 놀라워하는 동시에 그녀의 관능성에 매료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해롤드가 모드를 만나러 찾아갔을 때 그녀는 나체로 얼음 조각을 위한 모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모드는 자신이 만든 예술품을 해롤드에게 보여준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 같은 조형물은 여성의 음부를 연상시키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촉감을 느껴보라는 모드의 말에 해롤드는 조형물을 만지며 처음으로 성적인 충동에 사로잡힌 것 같은 모습을 한다. 이러한 장면들이 둘 사이의 멜로드라마를 충실히 성립시킨다.

 

<해롤드와 모드>모드를 만나 삶의 희망을 발견하는 해롤드라는 다소 상투적인 서사구조를 따르고 있다고 간주해 버리면 이상한 지점들이 생긴다. 예컨대 해롤드는 자신의 자살놀이를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영화의 엔딩에 이르러도 이 자살놀이는 끝나지 않는다. 만일 모드를 만남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는 희망을 발견했다면 그는 자살을 멈춰야 했다. 한 가지 더, 영화의 어디에도 인간을 향한 예찬은 찾아볼 수 없다는 점 역시 유사하게 기능한다. 모드가 예찬하는 대상은 인간의 삶이라기보다는 자연의 모습이다. 그녀는 해바라기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하늘을 나는 새들이나 숲에 찬미를 보낸다. 애초에 모드가 다가오는 생일에 죽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녀 역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쉬비는 빼곡하게 화면을 채우는 묘비들의 모습과 꽃이 핀 들판의 모습을 이어붙이며 그 둘을 시각적으로 유사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죽음이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대사를 들려주는데, 사실 아이의 출생은 한 차례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대신 나타나는 장면은 온실 속에서 자라고 있는 새싹들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지향은 인간이 아닌 자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의 엔딩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는 해롤드의 뒷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낙관적 전망을 기대하게 한다. 절벽 위 초원에서 춤추는 그의 모습은 앞서 등장했던, 자연에 대한 예찬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자연을 담아내는 장면들이다. 나무를 심으러 간 숲 속, 지는 석양과 새들을 바라보는 두 사람, 그리고 꽃들의 개성에 대해 말하는 모드의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담기는 꽃잎들의 모습 등은 영화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드에게 배운 분명한 것 역시 엔딩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연에 대한 예찬일 것이다.


황선경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