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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낭만주의 서부극의 정점

[영화읽기]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



와이어트 어프와 그의 OK 목장의 결투는 전설처럼 남은 서부의 역사이며, 서부극의 매우 흔한 소재이기도 하다. 존 포드는 이 유명한 전투를 재연하기 위해 <역마차>이후 7년여 만에 모뉴먼트 벨리로 돌아가, 25만 달러를 들여서 툼스톤 마을의 세트를 지었다. <황야의 결투>(1946)는 그렇게 탄생한 영화다. 포드는 자신이 서부극에서 세워놓은 전형적인 배경으로 돌아갔지만, 스스로 구축한 클리셰를 살짝 변주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와이어트와 클랜튼 일가의 대립구도를 통해 결투가 벌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와이어트는 이미 동생을 죽인 범인을 짐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곧바로 복수를 시도하지 않고 툼스톤에 정착하여 보안관이 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미 서부극의 전형적인 대립구도와 긴장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적 상황들과 감정들을 묘사하는데 할애한다. 포드는 내러티브의 정동을 조절하여 지연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즉 필연적으로 다가올 결투의 순간을 영화 내내 지연시키다가 후반부에 일시에 폭발시키는 것이다. 관객들은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언제 폭발할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체험하게 된다.



 

일상적 시간들에는 우정과 사랑이 싹튼다. 툼스톤에는 닥 할리데이라는 유명한 총잡이가 있다. 전직 의사이며, 도박꾼이기도 한 그는 어떤 슬픈 과거를 지닌 느낌을 준다. 와이어트와 닥이 처음 조우할 때, 그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금세 어떠한 애틋한 감정으로 변한다. 그들은 서로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닥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틀레멘타인이 나타나면서 우정과 사랑이 얽힌 미묘한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랑은 질투를 유발하기도 하며 관계의 쌍을 이뤄나가는 요소가 된다.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결투로 향하는 내러티브적 긴장감의 정동과 함께 행위의 정동, 그리고 사랑 감정의 정동이 완벽하게 조응한다는 점에 있다. 이를테면 와이어트와 클레멘타인이 파티에서 즐겁게 춤추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활력에 넘치며, 사랑의 꽃핌이 암시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또한 모뉴먼트 벨리를 배경으로 툼스톤을 떠나려는 닥과 그를 추격하는 와이어트의 역동적 질주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줄 때는 극적 긴장감이 절정에 도달한다.

 

헨리 폰다가 연기한 와이어트 어프는 흔히 볼 수 있는 서부사나이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는 기본적으로 신사적이고 차분하며,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옛것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클레멘타인으로 인한 행복감을 드러내듯 의자에 않아 의자 뒷다리로 균형을 맞추며, 기둥에 발을 번갈아 올려놓는 장면은 이미 유명해졌다. 클레멘타인은 와이어트에게 사랑의 대상이기 이전에 선망의 대상이다. 그는 그녀를 대할 때,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클레멘타인은 영화 내에서 현실적 존재성을 갖기보다는, 모든 남자들이 꿈꾸는 어떠한 이상향으로서 일종의 ‘여신’처럼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다 보더라도 우리는 그녀에게 동일시되기 어려우며, 그녀가 내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녀가 문명과 개발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서부사나이들에게 정착의 꿈을 갖게 하며, 삶을 감싸주고 지탱하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동부에서 온 그녀가, 학교 선생님으로서 마을에 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묘사가 여성을 이상화하여 여신처럼 다루던 낭만주의 전통의 남성적 시각에서 유래한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My Darling Clementine)’이라는 주제가처럼 그녀는 남성들에게 찬미되는 존재, 즉 낭만적 여성성 그 자체다. 클레멘타인의 존재성처럼, 이 영화도 우리에게 가장 낭만적인 서부극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