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경계를 다룬 포드 서부극의 원형

[영화읽기] 존 포드의 <철마>

대륙 횡단철도가 꿈으로만 여겨지던 때. 일리노이주 스피링필드에 사는 꼬마 데비는 여자 친구 미리암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그는 아버지 브랜던과 함께 철도가 놓일 길을 탐사하는 여정에 오른다. 그러나 인디언의 습격을 받게 되고, 브랜던은 ‘두 개의 손가락’에게 살해당한다. 시간이 흘러 1862년. 링컨은 유니언 퍼시픽, 센트럴 퍼시픽과 계약을 체결한다. 바야흐로 대륙 횡단철도의 시대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대작 서부영화 <철마>(1924)의 내용이다.


 

1923년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한 <포장마차(The Covered Wagon)>가 성공을 거두자, 경쟁사였던 폭스도 당시 유행하던 대작 서부영화나 서사적 서부영화를 기획하게 되는데, 그에 적합한 연출자로서 존 포드를 지목했다. 당시 포드는 1921년까지 유니버셜에서 40여 편에 달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스트레이트 슈팅>과 같은 작은 규모의 서부극도 연출한 바 있었던 터다. 그렇게 포드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철마>는 그 장엄함이 실로 말할 수 없는 대작, 서사적 서부영화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철마>는 일단 규모부터 남달랐던 영화다. 주 내용은 1869년 서부를 연결하던 유니온 퍼시픽의 철도와 동부를 연결하던 센트럴 퍼시픽의 철도가 유타주에서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다루고 있다. 극중 인물로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설적인 총잡이 와일드 빌 히콕, 서부 개척가 버팔로 빌이 등장한다. 또한 철도 파업, 소 떼의 이동, 인디언 습격과 같은 서부 개척시대의 주요 사건들이 서브 플롯으로 흐른다. 특히 후반부의 총격 씬은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수십 명의 인디언이 기차와 철도 노동자들을 원형으로 포위했다가 횡렬로 바꾸어 공격하는 장면은 마치 로마시대의 백병전을 방불케 한다. 당시로서는 대규모의 물량을 투입한 작품이다. 기록에 의하면 한 마을 전체가 세트장으로 사용되었으며, 4천여 명의 일꾼과 기병대, 2백 개의 철도 레일, 8백 명의 인디언, 그리고 2천8백 마리의 말과 1천3백 마리의 버팔로, 1만 마리의 소가 동원되었다 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블록버스터에 해당하는 대작인 셈이다.



 

단순히 규모만 컸던 것이 아니라, 고고학적으로 19세기 미국에 접근하는 미덕도 가지고 있다. 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주 노동자가 백인이 아니라 중국인, 아일랜드인이라는 점은 영화에 사실감을 불어 넣는다. 또한 계급 간 갈등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도 영화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링컨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철도 건설업자들끼리 밀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은, 노동자들이 황무지에서 노래를 부르며 레일을 까는 장면과 대비를 이룬다. 비단 정치 경제인만이 아니라 노동자들도 역사의 주체였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처럼 <철마>는 균등한 시선분배와 객관적인 접근을 통해 서부 개척사를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접근하고 있다.

 

한편 영화에는 훗날 서부극의 모티브가 되는 테마들이 여럿 있다. 극의 중심을 차지하는 주요 테마는 로맨스, 복수, 인디언이다. 데비와 미리암 사이에서 꽃 피는 로맨스는 기사도 문학과 19세기 서부극 소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족을 살해한 적에게 복수하는 설정은 <역마차>나 <황야의 결투> 등 이후 포드의 서부극에서 자주 사용되는 코드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데비의 아버지를 죽인 ‘두 개의 손가락’이 백인이라는 것이다. 존 포드의 후기작들이 인디언과 인종간의 경계를 다룬다는 지점을 고려한다면, 분명 <철마>는 포드 서부극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실로 존 포드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