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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미국적 이상

[영화읽기] 존 포드의 <모호크족의 북소리>



앙드레 바쟁은 웨스턴에 관한 그의 글에서 서부의 정복과 소비에트 혁명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새로운 질서와 문명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미학적 차원을 부여한 유일한 언어는 바로 영화였다고 말한다. 웨스턴 장르는 미국(할리우드)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존 포드의 웨스턴 영화들은 미국에 대해 그가 갖는 역사적 비전을 담아내면서 진화했다. 그 중 1939년에 만들어진 <모호크족의 북소리>는 미국이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개척정신에 뿌리를 둔 미국의 기원을 그렸다. 존 포드의 첫 테크니컬러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자연과 풍경, 계절과 날씨의 변화, 빛과 어둠의 변화를 풍부하게 담아내면서, 이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내러티브를 전달한다.

영화는 커플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뉴욕에서 생활하던 라나는 길버트와 결혼하게 되면서 새 가정을 꾸리기 위해 그를 따라 북부의 프론티어로 떠난다. 새 보금자리에 도착하던 날 밤, 궂은 날씨와 작고 초라한 집, 갑작스런 인디언의 등장에 놀란 라나는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녀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울먹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곧 생활력 강한 개척민 모습으로 변화해나간다. 변화의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강인함과 생명력은 위기에서 다시 딛고 일어서는 공동체의 회복력과 동일시된다. 계절이 순환하듯, 공동체의 삶도 위기와 희망을 오가며 다져져 가고 있다.



영화는 라나와 길버트를 비롯해서 다양하고 생동감 있는 주변캐릭터들을 그리면서, 그들이 구성하는 공동체의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불태워지는 집과 요새를 습격해오는 인디언처럼 위협과 공포는 공동체 내부에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한편, 공동체 바깥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은 과감히 생략된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던 날 밤의 깊은 어둠과 폭우, 그리고 전쟁터의 참혹함을 회상하는 길버트의 긴 독백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개척해나가야 할,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에 맞서는 과정이다. 요새 바깥, 숲과 들판에서 출몰하며 공동체를 위협하는 인디언들은 그러한 환경적 세계에 대한 두려움의 은유적 표현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공동체의 요새가 포위당하게 되고, 길버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웃 요새로 향한다.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은 인디언의 추격을 받으며 달리는 장면이다. 숲과 강, 들판을 지나고, 밤의 어둠에서 밝은 태양, 석양의 붉은 빛에 이르는 시공간의 변화와 함께 길버트와 인디언이 끊임없이 달리는 장면은 단순한 추격 장면 이상의 감흥을 전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성조기를 꽂는다. 흐믓한 표정으로 국기를 바라보는 모습에는 백인과 흑인, 그리고 인디언이 어우러져 있다. 환경에 맞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곳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개척정신과 이를 위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미국적 이상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장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