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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재미로 치면 으뜸가는 서부극 - 혹스의 ‘리오 브라보’

할리우드가 거대 에픽에 현혹되어 있을 당시, 하워드 혹스도 왕과 왕비와 유사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에 도전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혹스의 친구인 윌리엄 포크너를 비롯해 수많은 혹스 사람들이 동원됐고, 이집트 로케이션을 감행한 영화엔 막대한 물적 자원이 투입됐으며, 만 명 가까운 엑스트라가 출연한 어마어마한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러나 장르영화를 주물러온 혹스라 한들 모든 장르의 걸작을 만들 수는 없었다. <파라오의 땅>은 흥행에 실패한데다 평단의 혹평까지 들었다. 데뷔 이후 1년 이상 쉰 적이 없던 혹스가 4년이란 긴 시간을 할리우드와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던 이유는 그러하다.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평단들의 애정 공세로 그나마 마음을 달랜 혹스는 1958년 봄에 드디어 애리조나의 촬영 현장으로 복귀한다. 그가 예상 밖으로 서부영화를 선택하자, 코미디나 액션영화를 기대한 워너 측은 당황했다. 혹스가 서부영화를 선택하게 된 데는 TV의 영향이 컸다. 유럽에서 돌아온 혹스는 그 사이에 TV가 미국인들 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았음을 알게 되었고, 유심히 지켜본 결과 그들이 서부극을 즐겨 본다는 걸 파악했다. 마침내 잭 워너가 혹스의 의견에 동의함에 따라 <리오 브라보>에 착수할 때에도 그의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이 더 흐른 뒤에야 혹스는 현장에서의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전해진다.

<리오 브라보>는, 몇 편의 서부영화에 거부감을 품은 혹스가 그러한 영화에 대응한 결과물이다.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1952)과 델머 데이브스의 <유마행 3:10분 열차>(1957)는 인물의 심리와 영웅의 변화를 심도 깊게 그려 향후 서부영화의 방향 짓기에 큰 역할을 해낸 작품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서부 영웅을 예찬해온 사람들은 두 영화의 주인공에 거부감을 느꼈다. <하이 눈>에서 여주인공 ‘에이미’는 갓 결혼한 상대인 ‘윌 케인’에게 “영웅이 되려고 애쓰지 말아요. 나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윌의 대답 - “난 영웅이 되려는 게 아니오. 내가 좋아서 이런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미친 거요” - 은 의외의 것이다. 그리고 윌은 그것도 모자라 영화 내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러 돌아다닌다. <하이 눈>은 주인공을,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한 행위를 구걸이라고 판단한 혹스가 두 영화를 용납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이 눈>이 가식적이어서 싫다. 그 주인공은 프로페셔널이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영웅은 아마추어의 도움을 오히려 거절해야 하며, 오직 프로페셔널과 함께 자신의 일을 수행해야만 한다, 고 혹스는 생각했다. 그러므로 <리오 브라보>를 읽는 데 가장 중요한 신은,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평범한 친구의 선의를 주인공 챈스가 시원하게 거절하는 부분이다. 안소니 만이 <서부의 사나이>(1958)에서 게리 쿠퍼를 다시 불러내 악당과 당당히 맞서는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영웅을 되살렸다면, 혹스는 <하이 눈>과 유사한 소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시킴으로써 영웅의 진정한 자세를 재확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9년이란 격변의 시간과 전통 서부극인 <리오 브라보> 사이엔 결코 작지 않은 틈이 자리한다. 그 해, 프랑스에선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를 발표했고, 미국에선 존 카사베츠가 <그림자>를 내놓았다. 영화가 일대 변혁의 시기에 돌입할 즈음, 서부영화 또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서부극의 장인 존 포드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수색자>(1956)로 정점을 찍은 그조차 몇 년 후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를 연출함으로써 서부극에 작별을 고할 터였다. 그런 시점에 혹스는 전통 서부극의 세계로 재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웨스턴 백과’의 저자 허브 페이건은 <리오 브라보>를 ‘악에 맞선 선을 그린 서부극의 거의 완벽한 예’라고 표현했다. <하이 눈>의 결말에서 주인공 ‘케인’이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마을을 버리고 떠나는 것과 반대로, <리오 브라보>의 ‘챈스’는 프로페셔널과 영웅으로서의 자아와 공동의 선의 가치를 재확인한다.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을 사랑했기에 혹스는 장르를 의심하거나 뒤틀린 인물의 지옥을 그리기보다 선을 지키려는 자유로운 영혼의 인물과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선이 승리함으로써 정의가 성취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주변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가 넘치고, 우정을 간직하고, 자신감과 정의감에 찬 인물을, 혹스는 추구했다. 프로정신과 자부심을 지닌 반면 전통적이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인습에 저항하는 그들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까닭에 혹스의 서부극은 호탕하고 유머가 흐르며, 종래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게 특징이다. 단적인 예로, 존 웨인은 혹스의 웨스턴에서 더 많은 미소를 짓는다. 사실 포드의 서부극에서 간혹 이상화되고 신경질적이며 경직되어 있는, 그래서 아메리칸 히어로의 피곤함에 지친 듯 보이는 웨인은 혹스의 서부극으로 이동할 때마다 훨씬 경쾌한 인물로 탈바꿈한다. 물론 혹스의 인물들이 시작부터 완벽한 프로페셔널로 행세하는 건 아니다. 난관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결점을 보완하며, 서로 협조하는 과정을 거쳐 각 인물들은 성숙한 프로페셔널로 거듭 태어난다. 혹스의 첫 서부극인 <레드 리버>에서 그랬고, 변형된 서부극인 <빅 스카이>에서도 그랬듯이, <리오 브라보>는 프로페셔널과 영웅이 일체가 되는 지점을 지향하는 영화다. 실연의 고통과 알코올 중독을 딛고 주인공의 동반자로 성장하는 <리오 브라보>의 ‘듀드’는 혹스식 프로페셔널의 대표적 인물이다. 혹스가 꿈꾼 프로페셔널의 원형이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1939)라면, <리오 브라보>는 혹스가 평생 희구했던 가치를 꽃피운 작품이라 하겠다.


후반부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전까지, <리오 브라보>의 대다수 장면은 설정 상 텍사스 주와 멕시코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포위의 드라마이기에 혹시 빡빡하게 직조된 구성을 예상했다면, 틀렸다. 혹스는 긴박한 전개를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거니와 유별난 스타일을 뒤쫓지도 않는다. 어느덧 익숙해진 존 웨인의 걸음걸이처럼, 언제나 눈높이에 맞춘 카메라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위치에 머문다. 꼭 맞는 때에 꼭 맞는 곳에서 꼭 봐야 할 것을 보여주는 게 <리오 브라보>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거기엔 고전적인 우아함이 빛난다. 당당하고 서두르지 않기에 <리오 브라보>의 전개 속도는 오히려 느린 편이다. <리오 브라보>는 극중 주요 지점인 보안관 사무실, 호텔, 초소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의 행동으로 구성된 영화다. 간간이 몇 개의 중요한 액션 신이 삽입되어 있으나, 혹스는 그 밖의 장면을 코미디와 로맨스 (그리고 뮤지컬) 등으로 채워놓았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신에서 <소유와 무소유>를 재연하고, 딘 마틴과 리키 넬슨의 인기를 살려 기이할 정도로 긴 노래 장면을 끼워 넣는 등, 혹스는 자신의 장기를 아끼지 않고 선보였다. <리오 브라보> 속에서 발견되는 서너 가지 장르의 영화는, 서너 편의 TV쇼를 동시에 안으려는 혹스의 의도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리오 브라보>가 혹스의 최고 걸작일까? 모르겠다. <리오 브라보>가 최고의 서부극일까?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리오 브라보>가 재미로 치면 으뜸가는 서부극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영화를 재미있어 하는지 알고 있던 혹스는 아는 바대로 <리오 브라보>를 만들었으며, 그의 판단은 옳았다. <리오 브라보>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고,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서부극으로 손꼽힌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만 이 영화를 과소평가했을 뿐이다) 진실로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는 구식의 때를 타지 않는 법이다. (이용철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