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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장 가뱅을 바라보는 사소한 이유

장 가뱅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그의 터프한 액션을, 그의 부드러운 시선을, 그의 반짝이는 눈을, 사랑을 고백하는 말투를 좋아한다. 아마도 처음 <안개 낀 부두>(1938)를 본 이래로 그랬을 것이다. 제임스 딘을 좋아하던 청소년기의 친구들과 달리 유독 나이든 아저씨들을 좋아했던 탓이다. 아마도 그들이 뭔가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내게 영화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소심한 아이가 꿈꾸는 어른들의 세계였다.


장 가뱅이 세상을 떠나기 전(그는 1976년에 사망했다)에 그는 장 루 다바디의 시를 노래한 적이 있다. 이 노래는 장 가뱅의 삶 그 자체를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노래의 제목은 ‘이제, 나는 알고 있다’이다. 정리하자면 가사는 이런 식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아주 작은 아이였을 때, 나는 한 남자가 되기 위해 아주 큰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말을 했다. 난 알아, 난 알아, 난 알아. 하지만 내가 18살이었을 때 이렇게 말을 했다. 난 알아, 됐어, 이번엔 난 알아. 하지만, 요즘, 내가 되돌아보면, 나는 여전히 지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그래도 내가 아는 것들은 이런 것이다.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는 날, 날씨가 매우 화창해요. 난 더 좋은 말을 할 수가 없다. 날씨가 좋아요, 라고. 내가 청춘이었을 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난 알아. 그러나 내가 더 찾을수록, 내가 알게 된 것은 더욱 적었다. 하지만, 이제 난 알고 있다. 사람들이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인생과 사랑, 그리고 돈과 친구들과 장미꽃들을. 사물들의 소리나 색깔을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정말 그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가뱅이 정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싶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사랑한다.



<망향>(1937)의 거의 끝 무렵에는 장 가뱅이 과거 유명한 샹송가수였던, 하지만 이제는 초라하게 늙어버린 프레엘을 만나는 울적한 장면이 있다. 가뱅은 이제 유배자와도 같던 삶을 버리고 매혹적인 여자를 쫓아 떠나려 고민 중이다. 프레엘은 우울해 보이는 가뱅에게 ‘우울해 하지 말아요. 우울할 땐 나는 시대를 바꾼다오’라 말한다. 그녀는 오래된 샹송 한 곡을 들려준다. 물끄러미 가뱅은 그녀를 쳐다본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화에서 본 미국. 멋진 나라라고 사람들이 말하네. 그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서 울적한 어느 날 떠났다네. 많은 사람들이 배를 골은 채 뉴욕에서 달러를 찾아 헤매었지. 거지와 추방당한 사람들 사이에서 슬픔에 젖은 이민자들. 그들은 파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네. 모두 어디로 갔나. 매일이 일요일 같던 날들. 친구들은 모두 어디 갔나? 무도회는 어디로 갔나. 모두 다 어디로 갔나?” 그녀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이윽고 눈물을 흘린다. 가뱅이 그녀를 쳐다보는 느릿한 순간은 잊기 힘들다. 그는 터프하지만 동시에 탁월한 청취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면이 그의 진정한 인간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쾌활하면서도 느긋하고 신의를 지닌 인물이면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또 사람들이 바라보는 배우였다. 누군가는 그가 여자보다 더 바라보게 되는 그런 남자였다고 말한다. 장 르누아르는 가뱅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삶의 문제를 대할 때에도, 배역 속으로 빠져들 때와 마찬가지의 차분한 자신감을 발휘하리라고 확신했다” 장 가뱅을 여전히 바라보고 있는 사소한 이유가 이와 같다.

글/김성욱(편집장,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