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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이상주의와 숭고한 무법자의 원형적 충돌을 그린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

빈곤과 엑소더스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새롭게 시네마테크에서 구매한 존 포드의 영화 6편과 작년 '할리우드 고전 컬렉션'으로 이미 구매했던 <분노의 포도>를 포함 9편의 존 포드 영화가 상영된다. 이 중 <분노의 포도>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비교해 볼만한 작품으로 빈곤으로 고향을 떠나는 해체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실적이면서 시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그렉 톨랜드의 촬영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존 스타인벡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편집자)





서부극의 거장인 존 포드가 퓰리처상을 받은 존 스타인벡(1902 ~ 1968)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은 사회적 문제보다는 빈곤 때문에 유랑을 떠나야 했던 조드 가족의 운명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작품의 무대는 1930년대, 미국의 오클라호마의 ‘사풍 지대’라 불리는 건조 지대이다. 1929년의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손상이 발생하고 그 여파는 농업의 집약화와 기계화라는 형태로 농가의 생활을 위협한다. 가석방된 톰 조드(헨리 폰다)는 오클라호마에서 가족과 재회하지만 일자리를 찾고자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궁핍한 농민이지만 자긍심을 가졌던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그러나 더 가혹한 현실이다. 포드는 이들의 방랑에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역사를 떠올렸다. 

스타인벡의 사회파 소설 「분노의 포도」는 발표와 동시에 선풍을 일으켜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폭스사의 총수 다릴 F. 자눅은 소설의 중요한 테마와 사회적인 의도를 충실히 재현해야한다는 스타인벡의 조건을 받아들여 영화화 판권을 획득했고, 존 포드와 헨리 폰다를 기용해 영화를 제작했다. 소설의 테마는 자연의 맹위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변동성, 공산주의에 대한 당대의 공포가 주를 이루지만 다릴 F. 자눅과 존 포드는 인간적인 면과 가족의 드라마를 강조해 소설과 달리 톰과 모친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영화의 끝을 맺는다. 그리하여 영화 속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톰이 모친과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의 롱테이크이다.

종종 포드의 영화에서 가장 통렬한 순간이 인물들이 고향을 떠나려고 가족과 작별을 고할 때에 발생하는데, 이 서정적인 장면은 다음해 만들어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에서 탄광에서 해직된 두 아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고향을 떠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톰과 모친이 무도회에서 ‘홍하의 골짜기’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도 급진주의자로 변모한 톰과 보수적인 가치를 고수하는 어머니와의 마음과 영혼의 상태를 보여주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존 포드 영화에서의 이상주의와 숭고한 무법자 간의 원형적인 충돌의 감성이 이에 묻어난다. 

이런 점으로 <분노의 포도>는 미국사회를 다루지만, 영혼과 테마의 관점에서는 포드가 말하는 ‘아일랜드적인 전통’에 속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톰 가족이 겪는 빈곤과 엑소더스는 아일랜드의 대지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던 이민자들의 여정을 반복한다. 존 포드가 스타인벡의 소설에서 떠올린 것은 그의 아일랜드 선조가 ‘대기근’의 시기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던 과거의 기억들이었던 것이다. 그랙 톨랜드의 콘트라스트가 강한 다큐멘터리 터치의 촬영도 기억할 만하다. 조드 가족이 빈민 캠프에 도착하는 장면에서의 느린 트래킹 쇼트, 뇌리를 떠나지 않는 밤 장면들, 성냥불과 촛불에 의존한 촬영장면들 또한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정취를 더한다.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