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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페데리코 펠리니 회고전

이교도적인 풍속화

[영화읽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사티리콘>


<영혼의 줄리에타>가 흥행에서 실패한 뒤 페데리코 펠리니는 제작자인 디노 드 로렌티스와의 소송에 휘말려서 재산 일부를 압류당하고, 늑막염으로 요양소에 들어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요양소에서 돌아온 후 <기이한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공포영화에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1969년 <달콤한 인생>의 후속작이라 일컬어지는 <사티리콘>을 만들었다. <사티리콘>의 시대적 배경은 고대 로마이며, 현대물인 <달콤한 인생>과 내용적인 면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기행과 도덕적 타락상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고전적인 극영화의 서사 구조에 충실했던 <영혼의 줄리에타>에서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이 결합된 <8과 1/2>의 구조로 되돌아갔다고 평가된다.

이 영화는 1세기경 네로 황제 시대의 로마 작가인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의 원작은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출판되었을 정도로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만 남아있었다. 펠리니는 원작에 대해서 눈이 없고 부서진 코를 하고 있는 박물관의 두상을 회상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조각조각 나누어진 원작을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대신 죄의식이나 수치심이 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도구로 삼았다. <달콤한 인생>이 기독교적인 반면 <사티리콘>은 기독교적 도덕관에서 해방되고자 한 이교도적인 풍속화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와 동시에 구원과 은총이라는 기독교적 모티브를 품고 있기도 하다.

<사티리콘>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시사회 반응도 무척 열광적이었다. 특히 비틀즈의 존 레논이 <사티리콘>의 팬이었는데, 당시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마틴 스콜세지는 ‘조명과 컬러를 가장 탁월하게 이용한 영화 베스트 10’(이 리스트는 영어권 영화 10편과 그 이외 지역의 영화 1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을 선정할 때 이 영화를 뽑기도 했다. 이 목록에는 이탈리아 영화가 네 편 들어있는데 <사티리콘> 이외에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 등이 뽑혔다. (홍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