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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이 영화는 사회적인 측면이 좀 더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작가를 만나다] 김동주 <빗자루, 금붕어 되다>

11월의 ’작가를 만나다’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김동주 감독이었다. 달동네 고시원에 기거하는 50대 장필의 사연을 통해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이 놀라운 데뷔작을 함께 보며 감독과의 대화를 가졌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문제작 <빗자루, 금붕어 되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어떤 계기로 <빗자루, 금붕어 되다>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동주(영화감독): 고시원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 친구가 운영하고 있던 고시원에 놀러갔다가 그 공간에서 받은 영감,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에서 출발했다. 전국에 6,000여개 정도의 고시원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고시원에 들어가서 시나리오를 쓰려고 마음먹고서, 영화에도 나오는 ‘다부터 고시원’에 실제로 들어가 7개월 정도 살았다. 그렇게 2007년 10월에 촬영을 해서 2008년에 처음 영화가 공개되었고, 올해 정식으로 개봉하게 되었다.

김성욱: 고시원의 복도랄지 내부적 공간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215호실의 남자는 영화에서 거의 설명되지 않던데.
김동주: 고시원에 살다보면 소리에 상당히 민감해진다. 감옥 같은 작은 공간에 살다보니, 정신도 예민해지고, 특히 소리에 예민해지다보니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어느 방에서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고시원 안에서 간혹 분실이나 도난 사건이 일어나기도 해서, 화장실 갈 때도 문을 잠그기도 한다. 215호실의 남자를 설정하면서, 약간의 자폐증적인 성격의 캐릭터이면서 고시원 안에서 담배처럼 간단한 물건을 훔칠 수도 있는 모호한 인물을 염두에 두었다.

김성욱:
영화 전체에 걸쳐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는 탓에 통상적으로 본다면 CCTV의 느낌을 받게 된다. 카메라의 위치나 장면은 어떻게 구상했나?
김동주: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지자 카메라워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설정 정도로 주어진 상태에서 카메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해나갔다. 고시원과 주변 공간을 담아내기 위해선 한 앵글 한 쇼트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일상에서 하는 일, 가는 곳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일단 한 쇼트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앵글이나 구도에서 받게 되는 감흥,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의 느낌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영화 전반에 부감 쇼트를 많이 사용했다.

김성욱: 배우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김동주: 주인공 장필 역을 맡은 유순웅 씨는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하신 분이고, 김재록 씨는 <방문자>(2005)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다. 나머지 배우들은 대부분 실제로 그 주변에서 영화 속에서와 같은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다. 실제 자신의 직업에 있는 사람들이 영화에 등장할 때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해도 그 정도의 리얼리티, 자연스러움을 담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고시원 동네를 살면서 주변을 다니며 그 곳에서 만났던 분들을 섭외해 출연시키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한편으로 그 분들의 힘이기도 하다.

김성욱:
살인 이후에 시체를 묻는 장면이나 고시원에 여자가 누워있는 장면은 사실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몽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것 같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도 좀 다른 느낌이 든다.
김동주: 일단 카메라를 고정쇼트로 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뒤, 그 원칙을 끝가지 밀고 나갔다. 사실적인 구도와 앵글 내에서 다른 감흥과 연출적인 측면을 고려해, 쇼트는 사실적이지만 그 쇼트 안의 내용은 사실적이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카메라 트릭이나 장치, 편집을 쓰지 않고도, 쇼트 안에서의 애매한 차이를 보여주거나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롱테이크 롱쇼트를 밀고나간 상태에서 제가 의도한 바를 표현했기 때문에 보신 분들에게는 각자 다르게 받아들여지실 것 같다.

관객1: 주인공의 연기에서 연극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의도한 부분인지 궁금하다. 모니터를 파는 여자와 조각상을 사는 여자를 같은 배우가 연기했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가?
김동주: 오랫동안 연극만 하시고 영화는 처음이신 분이어서 연극적 연기가 배우에게 굳어진 면이 있었다. 연극에서의 억양과 액션을 지우기 어려웠던 것 같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도 처음인데다, 내러티브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는 점에도 익숙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여자 배우의 경우는 영화상에서 사실 서로 다른 배우여도 상관이 없고 롱쇼트이기 때문에 확실히 분간되지 않을 수 있는데, 영화의 다양하고 모호한 측면에서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었으면 했기 때문에 1인 2역을 설정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객 분들이 구체적으로 다 모르셔도 될 것 같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 문학이나 문자가 표현할 수 없는 영화적 장치들을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관객2: 독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과 구도를 먼저 정해놓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김동주: 처음부터 이러한 틀을 고수했던 것은 아니다. 촬영여건이나 배우의 연기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씬 원커트의 촬영은 힘이 든다. 처음에는 주된 공간이 되는 고시원 방이나 골목만 그렇게 찍고 나머지 부분에선 커트를 나눌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1,2회차 촬영을 하게 되면서, 원씬 원커트의 원칙에 대한 확신이 서게 되고 그러한 틀로 영화 전체를 만들어갔다. ‘장필’이라는 제목을 공유하다가 영화의 편집을 끝내고 제목을 다시 생각하면서 좀 더 모호한 느낌을 주었으면 했다. 빗자루나 금붕어 모두 영화에 등장하는데, 이 둘의 조합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으로 삼게 되었다.

관객3: 골목에서 들리는 고물상 노인의 녹음 목소리는 영화를 위해 따로 녹음해 두신건지? 공간의 구도에서 깊이감과 기울어진 느낌이 좋았다.
김동주: 녹음 된 소리는 실제로 그 분이 장사하는 마이크와 그 소리 그대로이고, 실제로 그러한 복장으로 골목을 다니는 분이다. 촬영에 대해선, 앵글과 촬영이 이례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에 있다 보니, 처음엔 촬영감독과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골목을 찍으면서 촬영감독이 이렇게 찍어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밀고 나가게 되었다. 광각을 쓰고 초점에 맞게 하는 것이 배우의 동선에 적절하고, 전형적인 앵글보다 부감으로 보여줄 때는 좀 더 가까운 선을 틀었을 때의 느낌이 좋았다. 간혹 주차장이나 경비실에서 CCTV 찍는 것을 보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 경험들을 살려 이 영화에 써보고 싶은 면이 있었다. 골목도 부감이지만 각이 살짝 꺾여있다. 그러한 골목을 찾아내기 위해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영화가 고정된 쇼트로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왠지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 그런 부분에서 오는 것 같다.

관객4:
살인을 기점으로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전반부는 사실적인 리얼리티를 따라 가다가, 후반부는 어떤 환상이나 꿈같은 느낌이 있어서 후반부에 들어서는 헷갈리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있다.
김동주: 비교적 전반부는 이해하기가 쉬운 편이다. 후반부는 주인공 장필의 내면적인 면을 묘사하려고 했다. 어떠한 계기들로 인해 성찰의 과정을 겪는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후반부에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측면을 많이 묘사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기회에 다시 보시게 된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 고정되어 있는 카메라의 특징은 인물이 덫에 걸려있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한편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돈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엄마나 모니터를 파는 여자, 목각인형을 사는 여자, 나중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공범이 되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돈을 지불하고 돈을 훔쳐간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사건이 연계되어가면서 인물에게 일종의 덫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성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김동주: 영화를 만들어 놓고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이 움직이는 사회, 상품으로서의 영화와 같은 면들을 느끼면서 더욱 이 영화가 개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회를 이끄는 건 돈이고 사람의 인간성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돈이 된 것 같다. 이러한 생각들로 영화 안에 돈에 관한 많은 설정을 만들었다. 처음에 목각인형을 사는 여성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여성들은 일상적인 이미지에서 많이 왜곡된 모습이다. 영화를 주인공의 입장에서 묘사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이 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고 주변 환경에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지점들이 나를 통해서 나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를 통해 나온 작품이므로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작가의 의도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이 좀 더 고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성욱: 영화아카데미 7기를 졸업하고 상당히 늦게 데뷔작을 만들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도 개봉이 늦어졌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작업도 어렵지만, 극장에서 개봉되어 공개되고, 이후의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감독님의 소회를 듣고 싶다.
김동주: 내 생각에 각자의 관점에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 선택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나의 경우에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느냐 혹은 타협하느냐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선택을 하게 된다. 모두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것이고, 제작사 등에 좌지우지 되고 싶진 않다. 작은 작품이지만 이렇게 영화를 보러 와주시고 대화에도 참여해주신 분들을 만나게 되어 앞으로 내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정리: 장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