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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시네토크

"이 영화가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옥 감독 선택작 마이크 리의 <네이키드> 시네토크

1월 19일 저녁, 박찬옥 감독이 선택한 영화 <네이키드>가 시작할 때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가볍게 내리는 비를 보면서 영화와 이 영화를 뽑은 박찬옥 감독이 왠지 모르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남자 주인공의 정곡을 찌르는 빠른 말솜씨에 감탄했고, 영화가 끝난 후 이어진 시네토크에서는 박찬옥 감독의 천천히 조용하게 흐르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절룩거리면서 마지막에 떠나는 주인공 죠니의 모습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겼던 박찬옥 감독과 함께한 토크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먼저 이 영화를 고른 추천의 변부터 들려주신다면. 박찬옥(영화감독): 원래 음식이든 뭐든 누군가에게 추천을 잘 못 한다. 이번에 친구들 영화제에서 영화를 추천하라고 해서 했는데, 시네토크에 나와서 이야기 하려니 ‘하지 말걸 그랬나’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그냥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했다. 돌이켜보니 얼마 전에 만든 영화 <파주>의 영향 아래 여전히 있는 것 같다. 그 영화를 만들었을 때 몇몇 영화중에서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는데, 둘 다 결말에 주인공이 떠나는 영화더라. 하나는 <정복자 펠레>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화다. <네이키드>의 떠남을 <정복자 펠레>보다 좋아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인 것 같다. 특별히 이유를 들자면 이 영화의 결말을 좋아해서 추천하게 되었다.

김성욱: 이 영화의 결말에서 남자가 떠난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느낌인지 더 묻고 싶어진다.
박찬옥: 정말로 서로 통하는 친구가 같은 고향 맨체스터에서 사귀었는데 여자가 런던으로 오고 남자가 나중에 여자를 런던으로 찾아왔는데, 남자가 여자를 찾아와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겪고 이제 착하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가 남자가 떠나버린다. ‘일종의 배신인가 배반인가’ 싶지만, 그렇게 떠나는 것이 그 남자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물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고, 그런 마음을 좀 알 것 같았다(웃음).

김성욱: 이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봤던 이장호 감독의 <바보선언>이 떠올랐다.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국회의사당을 뒤로 하고 절룩거리면서 걸어간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감독님은 영화 속 캐릭터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박찬옥: 영화학교에 처음 가서 친구들이 만든 영화를 봤는데,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 친구들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도 역시 같은 범주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좋아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다. 그의 고민이 얼마나 골 깊은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데도 배우가 주는 눈빛과 속도 있으면서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그 사람이 싫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남자가 발작을 일으킬 때 표정이나 말이 ‘배우 개인의 모습일까 아니면 시나리오에서 약속된 연기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발작을 하거나 본능적으로 무의식이 튀어나올 때 어떤 말을 하게 될까라는 궁금함도 들었다. 소피의 역할을 맡은 배우 캐트린 카트리지도 매우 놀라운데 <비포 더 레인>뿐만 아니라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도 조연인데도 너무나 정확하게 자기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서 놀라웠다.

김성욱:
찾아보다 보니까 <네이키드> 영화 소개에 누군가가 ‘내가 이래서 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를 안 봐. 이 영화 이후로’ 이렇게 쓴 것이 있었다(웃음). 이 시절에 마이크 리는 방송이나 영화에서 유명세를 치루고 있었고 <네이키드>는 굉장히 작심하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 영화로 칸에서 상을 받아서 마이크 리라는 감독이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런 영화들을 볼 때 사실은 동조하지 못하고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는데, 관객이자 감독인 입장에서 이런 반응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박찬옥: 처음에 이 영화를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봤다. 그리고 오늘 큰 화면으로 보게 되었는데, 스크린으로 보니까 드라마의 흐름이나 물리적인 시간이 더 직접적으로 몸에 다가왔다. 지루할 때는 극장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다가 어떨 때는 보다가 영화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 영화가 대중들을 위로하는 영화는 될 수 없지만 몇몇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관객1: 이 영화를 보면서 현대 사회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죠니가 대화하는 방식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방식이면서 내용은 하이데거의 현대철학을 떠오르게 한다. 죠니가 마지막에 떠나는 것도 현대철학의 영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박찬옥: 보신 분의 느낌이 맞을 것 같다. 제가 배우들에게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대사를 하게 한다고 했을 때, 그 내용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지 내용을 통해서 영화가 말하려는 무엇이 바로 전달되기 원하지 않다보니... 저의 경우에는 죠니가 떠들 때마다 ‘아 떠드는구나, 현재 자기의 상태와 세상에서 자신이 편하지 않는 것을 저런 숱한 말로 내뱉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관객2: <네이키드>와 감독님의 영화 <파주>의 처음과 끝이 유사한데,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하다.
박찬옥: 인물이 떠나는 것을 결말로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했을 때 이 영화가 많은 영향을 준 것 같긴 하다. 사실 영화의 출발은 어렸을 때 보았던 <헐크>라는 미니시리즈였다. <헐크>의 엔딩에서 주인공은 헐크로 변신하는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떠난다. 다른 것은 기억에 없고 그 장면만 기억이 남는데 이것이 내용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네이키드>의 주인공이 런던으로 와서 런던을 떠난다면 <파주>에서는 파주로 와서 파주를 떠나는데 이런 지점들은 떠남을 전제한 영화구조에서는 비슷한 듯 하다.

관객3: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네이키드>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감독님의 영화가 떠오르면서 감독님의 연기연출 비법이나 스타일이 궁금해졌다.
박찬옥: 비법이라 할 것은 없고 그냥 개인적인 생각 중에 하나가 촬영, 미술, 조명, 콘티 다 훌륭해도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지 못하면 보는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거다. 항상 배우의 연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생각들이 잘 실현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려운 일이라서 잘 실현되려면 저한테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배우와 많은 교감과 신경전을 감당하면서 그 문제들을 풀어가야 되는데 배우도 감독도 어느 선에서 대충 접고 포기하고 가면 산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항상 시간의 한정 속에서 결정해야 되기 때문에 배우와 저 사이의 허심탄회한 자리를 미리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저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특별한 제스처가 없는 편이어서 이제는 제스처를 좀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다이렉트한 접근이 유효하다는 생각도 한다. 기술로 배우들을 대하면 배우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다이렉트 함이 유효할 수도 있다는 거다. 힘이 드니까 어느 선에서 접는 그런 것들이 없도록 좀 더 에너지를 많이 갖고 있어야 될 듯 싶다. (정리 : 신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