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아트시네마 소식

예술인들의 예술적인 저항방식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도네이션 광고, 공동 화보 촬영
'작가 선언 69'활동, 한국작가 회의 '저항적 글쓰기' 시작
문화연대 '콜트·콜택 콘서트', '스쾃' 등 문화적 사회참여

존 레논, 보노, 마이클 잭슨.

이들은 비단 스타, 아티스트란 이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세 명은 현대 대중음악사를 바꾼 뮤지션이면서 동시대 정치사회 문제에 가장 민감했던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의 만든 작품을 보고 들을 때, 전쟁과 기아와 마약에 반대하는 그 절절한 가사를 음미할 때, 그들의 예술적 명민함과 기민한 정치사회적 감각, 그 세련된 표현방식을 우리는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우린 언제쯤 존 레논이나 보노의 한국판 모델을 기대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조금은 불만을 잠재울 때가 왔다.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의 사회참여, 저항방식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예술적인' 방식으로. 국내 문화예술인들의 예술적인 사회참여를 들여다 봤다.

어디다 아는 체에요? 시네마테크도 모르면서

빈 : 그 머리 좀 어떻게 하라니까.
봉: 베토벤? 아인슈타인?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로운 발상.
빈: 갖다 붙이긴 어디다 막 갖다 붙여요? 맥주 맛도 모르면서.

영화감독 봉준호, 배우 원빈이 출연한 이 광고는 기실 광고 브랜드인 맥주보다 영화인들의 '노 개런티'로 화제를 모았다. 예술영화와 고전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감독 5명과 배우 7명이 도네이션 형태로 맥스 광고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지난 달 27일부터 전파를 탄 광고는 박찬욱, 류승완, 김혜수 등이 출연했다.

서울 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올해 초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재정적 위험을 타개하기 위해 2월 초 감독 배우가 참여하는 도네이션 형식의 광고 제작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선 3개월 광고가 방송되고 이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광고 중인 '맥스'가 될지 다른 브랜드가 될지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배우 송강호 씨 등 다른 영화인들도 참여하고 싶어 했지만, 동종업계 광고를 계약한 상태라 참여하지 못했다. 영화인들의 전용관 건립 추가 활동 계획은 5월 후원의 밤 행사와 7,8월 바캉스 영화제에 참여하는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원회는 5월에는 패션 잡지 <하퍼스바자>에 영화인 20인이 공동으로 사진 화보를 촬영하고 후원금을 조성해 서울 아트시네마에 전달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영화배우 이병헌, 이요원, 고수, 배두나, 윤진서, 하지원, 안성기, 김효진, 엄지원, 정유미 씨와 김지운, 민기동, 이명세, 장훈 감독 등이 참여했다. 감독과 주·조연 배우 등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이 프로젝트는 2007년부터 매년 5월에 진행해 올해 4번째로 접어들었다.

마감 늦춰달라고 해야겠다

'마감을 늦춰 달라고 해야겠다. 거리로 나가느라 글 쓸 시간이 없다.'

이 말은 지난 해 6월 젊은 작가들의 시국 선언이었던 '69작가 선언'에서 김미월 작가가 쓴 선언문이다. 80년대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섰던 문인들의 사회참여, 저항 역시 2000년대 들어 세련된 방식으로 변했다.

188명의 작가들이 한 줄씩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던 '작가 선언 69'는 이후 정치 사회 참여 아젠다를 용산참사로 선정하고 2권의 헌정집 <여기는 용산참사 역입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발간했다. 용산참사에 관한 칼럼을 인터넷 매체와 신문, 잡지 등에 무료로 기고하고 이를 모아 단행본으로 묶은 것이다.

문인들의 특기는 글쓰기와 말하기일 터, 이 젊은 문인들은 올해 초 수유너머N에서 '시민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연'을 진행한 바 있다. 헌정집의 수익금과 인문학 강연에서 모은 성금은 전액 용산 참사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단식, 가두시위, 성명서 발표 등 고전적 사회참여, 저항방식을 보였던 한국작가회의 역시 올해 초부터 형식에서 변화를 보였다. 지난 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집회 불참 확인서를 요구받은 후 '저항의 글쓰기'운동을 시작한 것. 당시 한국작가회의는 "이번 사건은 비판적 사유와 창조적 역량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반문화적, 반인권적 행태가 멈출 때까지 저항의 글쓰기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을 만들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 블로그에는 16일 현재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쓴 50 여 편의 글이 올라와 있다.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작가들이 투고하고 있고, 이 작품을 모아 저항의 글쓰기 단행본을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저항의 글쓰기는 문화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경제·환경·여성·복지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대상으로 한다. 그 첫 주제는 정부의 4대강 사업. '내 눈 앞의 강'을 주제로 작가들의 시, 산문을 모아 7~8월 중 단행본으로 펴 낼 계획이다. 다음달 11일에는 '국가권력과 작가의 존재방식'이란 주제로 제 1회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 심포지엄을 연다.

글쓰기와는 또 다른 형식의 예술적 사회참여도 있다. 문화예술위의 '시위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에 맞서 지원금 3400만원 수령을 거부하며 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가 봄호부터 무기한 정간됐다. 지난 3월 13일 작가들은 정간된 봄호에 들어갈 작품을 거리에서 낭독하는 거리 낭독회를 가졌다.

이날 거리 낭독회는 이진희 시인의 '불쑥', 이현호 시인의 '습작시절', 박남준 시인의 '매화나무 다비식', 김일영 시인의 '자화상 2010', 김선우 시인의 '반짝 빛나는 너의 젖빛' 등이 작가의 목소리로 발표됐다. 한국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4대강 저지 운동의 일환으로 오는 24일 20인의 작가가 독자와 함께 팔당 일원을 걷는 행사를 마련한다.

도종환 부이사장은 "작가들은 가장 문인다운 방식, 예술가다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고 이 방안이 저항의 글쓰기였다.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에서 하는 앞으로의 활동도 예술가, 문인다운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콘서트? 아니거든요

사단법인 문화연대에서 지난 10년간 선보인 저항방식은 말 그대로 문화예술적 사회참여다. 일례로 2008년 기타를 만드는 콜트·콜택 노동자와 연대해 만든 콘서트 형태의 문화제는 새로운 형식의 문화예술적 저항을 보여주었다.

기타를 생산하던 콜트·콜택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흑자를 내던 회사가 갑자기 공장을 인도네시아 등으로 이전하면서 2007년 해고를 당했고, 1년 넘게 회사와 싸우다 문화연대와 함께 2008년 9월 콜트·콜택의 사연을 알리는 콘서트를 열었다.

노동운동과 대중음악을 잇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홍대 클럽 빵에서 콜트·콜택을 위한 콘서트가 이어진다. 이 콘서트에 참여한 인디뮤지션이 100여 팀이 넘는다.

이한철, 허클베리핀, 와이낫 등 내로라하는 인디뮤지션은 거의 모두 콘서트에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화제에서 노래와 정치 구호, 연대발언 등이 차례로 이어지지만 콜트·콜택 콘서트에서 뮤지션들은 아무 말 없이 연주만 하고 무대를 내려간다. 이런 방식이 오히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연대 정소연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기타 회사에서 뮤지션이 가장 큰 1위의 소비자인데 뮤지션들이 콜트·콜택 기타 불매운동을 시작하면서 회사 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에서 문화운동으로 변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지난해 9월8일 인천지법에서 콜트악기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 판결이 나왔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홍대 클럽 빵에서 열렸던 콘서트는 5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달에만 29일 홍대 상상마당에서 콘서트를 연다.

문화연대는 2004년 예술가들과 함께 공사가 중단된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했다. 비어 있는 건물을 점거해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스?'(Squat)을 한국 사회에 처음 선보인 것. 이밖에도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한 홍대 인디뮤지션들의 공연 '그대로 두어라', 입시문제와 관련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행사 '즐' 페스티벌 등이 문화연대가 이룩한 대표적인 문화예술적 사회참여다.

"팔뚝질만 할 때 관심 없던 대중들이 노래를 부르는 콘서트에는 참여하시더라고요. '이거 왜 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전에는 유인물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 무슨 콘서트인지 인터넷 검색해 보고 콜트·콜택에 귀 기울이고. 사회를 시키고, 대중에게 알리는 새로운 지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콜트·콜택 콘서트를 3년 째 함께 하고 있는 정소연 팀장의 말이다. 문화예술인들의 예술적 사회참여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출처] 주간한국 2010.04.22 (http://weekly.hankooki.com/lpage/arts/201004/wk2010042210140010509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