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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바캉스 서울

<여배우들>의 주역들이 여배우를 말하다!

[시네토크] 이재용 감독과 배우 윤여정, 김옥빈의 <여배우들>에 관한 수다

지난 14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여인’을 컨셉으로 한 ‘2010 시네바캉스 서울’ 상영작 중 유일한 한국영화인 이재용의 <여배우들>을 상영하고, 상영 후 이 영화를 연출한 이재용 감독과 이 영화의 주역배우들인 윤여정, 김옥빈 씨 두분이 함께하는 시네토크가 열렸다. 영화 촬영 당시의 다양한 에피소드부터 여배우들이 겪게 되고, 느끼는 감성까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아 여배우들의 진솔한 면모를 볼 수 있었고,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가까운 자리에서 감독님과 두 분의 배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어 기쁘다. 바쁜 분들이라서 어떤 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을지 기대도 하고 걱정도 했다. 이 자리는 여배우분들이 주역이 되는 자리다. <여배우들>이라는 영화는 굉장히 특별한 영화고, 배우의 연기가 실제인지 허구인지 혼동이 될 정도로 녹아들어가 있는 점이 놀라웠다.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이재용(영화감독): 윤여정 선생님이랑 개인적으로 만나서 대화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그랬다.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여배우들이 있다는 것이 기뻤고, 이런 여배우들의 실제 모습을 같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영화 연기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진짜 좋은 연기가 어떤 건지 다시 고민하던 시기였던 거다. 다큐멘터리에 대해 관심이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영화가 나온 게 됐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다보니 윤여정 선생님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여정(영화배우): 주연처럼 보인다는 말을 듣고 걱정했다. 그런데 어떡하겠나, 그렇게 됐다. (웃음) 출연제의를 받았을 때는 제 나이가 굉장히 많아서 별로 많이 잃을게 없다는 생각이 있었고, 컨셉을 들었을 때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돼서 참여하게 됐다.

김성욱: 윤여정 선생님이 영화 전체를 컨트롤하고, 김옥빈 씨는 그것을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김옥빈(영화배우): 처음 제의 받았을 때는 시나리오 내용을 전혀 몰랐다. 전체적 이야기 자체가 너무 신선했고, 선배님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 역할이 선배님들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일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역할이잖나.
윤여정: 옥빈이가 거기서 많이 치였다. 제일 연장자다 보니까 제가 말을 가장 많이 했고. 오늘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말을 많이 하길.
김옥빈: 선배님들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어서 현장에서 넋을 놨던 것 같다.

김성욱:
이 영화는 거의 여자 분들만 나오는 영화인데.
이재용: 패션화보를 찍기 위해서 하루 동안 벌어질 수 있는 가상의 이야기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역할들을 한 것도 사실이고. 기승전결과 기본 뼈대들을 있었지만, 분장실에서 이야기 한다거나 파티를 하는 것 등은 제가 쓰는 언어로는 다 쓸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애드립에 많이 의존했다. 방목 같은 거다. 재즈 연주할 때 기본선율만 있으면 나머지는 즉흥적으로 이뤄지듯이, 배우들이 고수들이 아니었으면 할 수 없었던 영화였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보다 배우들을 만나는 것이 더 두려웠다. 나를 믿고 출연해 줬는데, 잘못 그려졌다는 인상을 줘서 사람도 잃고 할까봐 두려웠던 거다. 결과적으로 첫 시사회 분위기에서 만큼은 다 만족해하는걸 보고 안심했다.

김성욱: 윤여정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연기를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판단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특히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상적 연기를 할 때는 판단이 쉽지 않을 텐데.
윤여정: 그게 제일 고민이다. 해답이 딱 있으면 좋겠지만, 연기는 그런 게 없잖나. 사람들이 나이를 들면 연기를 잘할 거라고들 생각하곤 한다. 나이들 수록 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허나 아니다. 저에겐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몸에 밴 게 있을 거다. 그런 게 나올 때 그게 참 싫다. 어떤 때는 애였으면 좋겠을 때가 있다. 특히 아역배우들은 정말 신선하게 감동을 주기도 하잖나. 이 영화의 경우는 우리가 편안하게 연주자로서 참석해서 호흡이 잘 맞는 잼 세션으로 들어가서 애드립을 자유롭게 하는 그런 좋은 케이스가 됐다. 이재용 감독님이 그걸 가능하게 해줬다. 굉장히 힘들었을 거다. 모든 배우들이 똑같이 참여하고 다 중요하다는 걸 진심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김성욱:
김옥빈 씨도 여러 분들 사이에서 힘드셨을 텐데. 배우들 간의 호흡을 어떻게 맞춰나갔는지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대처했는지?
김옥빈: 합을 맞춰서 오고가고 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잘 듣고 나서, 그 느낌 그대로 반응했던 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된 거 같다.
윤여정: 옥빈이가 배우다. 특별한 신비감 같은 것,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듯하다.

김성욱: 두 분이 같이 담배 피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두 배우분이 가장 나이차가 많은데, 서정적인 느낌이었고 어떤 때는 감동적이기도 했다.
윤여정: 그건 개인적 경험이다. 제가 옥빈이 나이일 때, 청경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담배를 너무 멋있게 피시 길래, 저도 하나 주시면 안 되냐고 여쭸더니, 혼자 외롭게 피는데 동참에 주니까 고맙다고 같이 피자고 하셨다. 너무 멋있었다.
이재용: 최고참 배우와 막내 배우가 같이 있는 그림들이 좋겠다 싶어서, 그 부분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실제로 두 분이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하려 했다. 대사가 잘 안 써져서 그냥 가자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좋았던 거 같다. 민희 씨하고 옥빈 씨하고 둘이 계단에서 하는 대화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그 자리에서 이뤄진 거다. 쪽 대본조차 없이, 다음 씬 어떻게 찍을까를 그때그때 만들었다.

김성욱: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는지?
윤여정: 자기 얘기를 많이 해야 되는 거라서, 오픈할 것과 가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게 어렵긴 했다. 성향마다 다른 것 같다.
이재용: 이 배우들의 두 배수가 넘는 배우들을 만났는데, 이런 분들의 성향이 아니었으면 안됐을 영화다. 실제로 이런 영화를 할 수 없는 배우들도 있다. 대본이 주어져서 그 역할에 몰입해야지만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는 배우들도 있으니까. 여자들이 모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배우들도 있고.

관객1: 감독님은 내놓은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장르도 다른데.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색깔이 있으신지?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가 파티 장면에서 "항상 모든 일엔 반대급부가 있다"라는 대사였다. 윤여정 선생님은 그런 깨달음을 언제 얻으셨는지? 김옥빈 씨는 <박쥐>로 굉장한 환호를 받으신 이후로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윤여정: 물론 어렸을 때는 못했다. 언제 깨달았나는 물론 잘 알 수 없고, 지금 60살이지만 여전히 아직도 내가 또 이러고 있네, 좀 근사하고 멋있게 대처할 수 없을까 생각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이재용: 개인적인 호기심과 관심사들이 많다 보니까 특별히 한 장르의 영화를 하는 감독은 아닌 거 같다. 잘 하는 것을 하긴 하겠지만, 재밌어 하는 걸 주로 하는 거 같다. 영화적이지 않은 영화에 관심이 많다. 이것이 영화다 보다는 이것도 영화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뭐 그런 거.
김옥빈: 시나리오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찢고 채이고, 혹은 애 엄마, 혹은 스릴러 등의 시나리오들만 많았었다. 전 실제로 그런 여자가 아닌데. (웃음)

김성욱: 후반부에서 와인마시면서, 라이벌 얘기할 때 인상 깊었다. 배우로서 질투심을 느낄 만큼의 인상을, 혹은 매혹을 느낀 사람이 있는지?
윤여정: 부러운 사람이 많다. 그런데 특정 한정된 사람이라기 보단, 어떤 역할을 어떻게 연기한 것을 보았을 때나, 혹은 같이 하면서도 느낄 때가 있다. 전에 김혜자 선배의 연기를 볼 때도 그랬고, 김영애 씨가 처음 나올 때도 어떤 애가 너무 당돌하게 잘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건 어떤 순간 같은 거다. 어떤 사람은 늘 잘하고 그렇게 여겨지진 않은 듯하다.
김옥빈: 나카타니 미키를 좋아한다. 클래식하게 생겼는데 코믹하면서도 섹시해서. 몸 개그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그 망가지는 게 너무 좋아서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원탑으로 힘 있게 밀고 가는 배우.


김성욱: 와인마시는 장면 후반에 한국에서 여배우로 사는 것에 대해 언급이 나오는데, 이야기가 좀 더 있을 법도 한데, 한국에서는 연기자로서 역할을 계속해서 얻어가는 게 상당히 제한적이기도 하다.
윤여정: 미국에서 잠깐 살 때, 사람들이 날 아무도 안쳐다보고, 나보다 잘난 사람도 너무 많고 해서 어색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날 알아보고 하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즐기곤 한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한에서, 현재 처한 상황을 감사할 수 있는 그 느낌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해서 가리고 하는 것도 우습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서 쳐다보는 건데 즐기면 될 것을.
김옥빈: 평소 길 다닐 때도 얼굴 잘 안 가리고 돌아다니는 편이다. 모자나 선글라스로 무장을 할 때는 좀 지저분할 때. 덜 꾸며진 모습을 보면 대중들이 보고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딱 맞는 거 같다.
이재용: 우리나라가 좀 심한 면은 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있고, 배우들을 흉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향들이 있다. 모든 배우가 안성기 씨처럼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다들 너무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 사실 배우들이 공인은 아니고 유명인일 뿐인데 말이다. 즐기다가도 자기 맘에 안 들면 왜 우리를 물들이냐고 갑자기 막 돌아서고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피해의식을 갖게 만든다. 피해의식에 서로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김옥빈: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가 환상의 모습대로 지속되길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그 환상이 깨지는 순간 냉정하게 돌아서버린다.

김성욱: 연극이랑 다르게 영화는 차단된 벽이 있는데, 너무 몰입되는 경향들이 있는 거 같다. 이재용 감독님이나 두 분은 여배우들에 대한 다른 영화에 대한 생각이 있는지? 마지막 말씀도 들려주신다면.
이재용: 십년 후에 다시 이들이 모이는 것을, 동창회 모임 하듯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조만간 일본에서 개봉하면, '여배우들 일본에 가다' 같은 것도 생각했고.
윤여정: 내가 살아있을까.(웃음)
김성욱: 진짜로 십년 뒤에 연기를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김옥빈: 보러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진심을 담아 이야기한 시간이었다.
윤여정: 감사하다. (정리: 박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