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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에세이] 영화보기, 내 십대의 특별한 생존기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조금 특별했다. 이상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 공립 대안학교였는데, 갓 한국에서 온 열여섯의 영어가 느린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가지고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토론하는 수업시간은 신세계였다. 매번 문학시간은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 나는 ‘일리야드’를 읽지도 플라톤의 ‘국가론’ 전문을 읽어본 적도 없었는데, 그곳의 아이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미식축구 감독 욕을 하며 인용했고 세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슨 작품들을 학교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드라마에 비유하곤 했다. 그곳의 똘똘한 아이들은 나에겐 거대한 충격이었다. 난 거기서 살아남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고 함께하고 싶었다. 

우리 학년에서 유행했던 고급 영국식유머를 배우고 즐기기 위해 <몬티 파이튼의 성배>를 보았다. 그 이후 ‘몬티 파이튼’ 시리즈를 섭렵했고, 아이들의 농담에 같이 웃을 수 있었다. 문학시간에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관해 토론할 때 미리 준비하려고 <지옥의 묵시록>을 보았다. 영화 속에서 커츠 대령이 낭독했던 ‘텅 빈 인간들’을 마치 영미문학에 조예가 깊은 듯 수업시간에 읽어보았다. 미국문화사를 배울 때 <록키>를 보고 그 시대의 미국을 느껴보려 했다. 운이 좋아 맞게 된 학교 연극반 연출을 할 때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했는데 그때 난 영화판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수백 번도 넘게 보았던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 대사를 줄줄 외우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미국 아이들은 뮤지컬 노래를 잘도 외워 부른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늘밤은 춤이라도 추겠어요’는 성악을 공부하던 내 친구의 애창곡이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영화를 보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 현대사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보았는데, 단순한 영화 감상평을 적어냈던 역사시간 주관식 시험에서 A를 받았다.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나 <황야의 결투>는 홈스테이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던 영화였다. 무뚝뚝했던 아저씨와 단둘이 어색한 가운데 영화를 보며 미국의 개척자 정신이 어떤 것인가 감을 잡아 보려했다. 아저씨는 나의 영화 감상태도가 자기 딸들보다 좋다며 감동받으셨다. <7년 만의 외출>은 할로윈에 마릴린 먼로로 분장하겠다는 친구 때문에 수도 없이 보았다. 그렇지만 할로윈 파티에서 내 친구는 먼로만큼 섹시한 아우라를 뿜을 순 없었다. <대부>를 보지 못하고도 미국 남자아이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그저 문화적으로 결핍된 사내들만 사귀겠다는 태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를 보았기에 난 미국 남자아이들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알 카포네 흉내 내는 그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단순히 서울 아트시네마의 작년 하반기와 올해 친구들 영화제 프로그램만 훑어도 나의 미국 고등학교 생존기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며 이 글을 쓴다. 미국은 집이 크고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나뉘어져 있어 여가를 즐기려는 다수의 미국인들은 홈시어터 세팅을 집에 가지고 있다. 부모님, 조부모님 때부터 모아온 방대한 양의 VHS와 DVD들은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는 그 집안만의 시네마테크, 시네마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고전영화들을 접했고 영화를 여가활동, 취미활동, 교양교육의 목적으로 보며 즐기는 사이에서 흑백영화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영미문화학습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시네마테크에서 주로 상영되는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는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영화적 메시지를 지녔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카라멜 팝콘을 먹으며 보는 영화와 달리 이 영화들은 옛 고전 문학을 읽는 듯한 영화적 소통의 느낌을 준다. 각 영화마다, 감독마다, 배우마다, 장면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될 수 있고 다양한 감흥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여러 가지 부여된 의미 중 하나는 나의 미국 고등학교 시절 즐거웠던 서바이벌 학습법이다. 영화는 단순히 즐기기 위한 여가의 수단을 뛰어 넘어 복합 문화 예술의 창조물로서 역사, 문화, 풍토, 감성, 정치, 철학 등을 담고 있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배우기 위해 영화를 보고 서울 아트시네마를 찾는다.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