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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에디터 좌담] "영화,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는가?"

지난 2월 18일 저녁, 인사동의 한 카페에 서울아트시네마 에디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벌써 막바지에 접어든 친구들 영화제 기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쏟아지던 업무들을 잠시 잊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간의 고충과 사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박영석: 다들 에디터 활동을 처음 시작했으니 프리뷰, 리뷰 작성, 인터뷰나 녹취 다 처음 해 본 셈이다.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늘 하던 일이라 별다른 감흥이 없는데. (웃음)

박예하: 나도 녹취는 에디터 활동 전부터 도와드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글을 한 편씩 쓸 때마다 사실은 굉장히 고생을 한다. 처음 에디터 시작할 때 우리가 지금 쓰는 글이 갖추어야 할 구조를 배웠는데, 계속 거기에 맞춰서 써나가는 연습을 하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런 형식에 맞추려다보니 지금 쓰는 글들이 내 글이라는 느낌은 아직 잘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차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최용혁: 녹취야 여러 번 하다 보면 점점 나아지는 것 같은데, 글 쓸 때는 나아지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요즘은 어떻게 영화를 한 번 보고 리뷰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불가피하게 그래야만 할 때가 있으니까 걱정도 되고. 또, 예를 들어 비스콘티 영화에 대한 리뷰를 써야 할 때는 비스콘티 전작을 다 봐야 하는 건가, 하는 강박도 있는 것 같다.

박영석: 맞다. 그런 작가들이 있다.

최용혁: 근데 보기 싫고. (웃음)

박예하: 게다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최용혁: 맞다. 한 편도 여러 번씩 봐야 하는데. 그리고 또 있다. 물론 남들이 우리의 글을 무척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일단 웹블로그에라도 공개가 된다는 건 어느 정도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물론 경쟁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 글을 써오시던 분들의 글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준을 맞추려다보니 인용이나 레퍼런스를 무리하게 끌어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지만 어쨌든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고, 지금 아니면 영화에 대해 뭔가 내놓을만한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영화를 많이 본 편이 아니고, 그래서 공부한다는 느낌으로 하고 있다.

 

정태형: 사실 에디터 활동 자체를 급작스럽게 시작했다. 에디터를 선발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지원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웹 공간에도 글을 절대 올리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건가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서울아트시네마의 특수성 때문에 에디터 활동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과에 재학 중이라 학교에서 리뷰를 항상 쓰긴 하지만, 거기에서 쓰는 건 일종의 분석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 장면은 이렇게 보였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라는 식의 나열적인 글을 써왔다면, 지금 쓰는 리뷰는 총체적으로 좀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서 앞서 써왔던 식의 글들을 다시 정리해야하니까 힘든 점이 많았다. 그리고 녹취나 기타 업무들 역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래도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활동이다.

 





백희원: 다들 힘드셨다는데 나도 힘들었다. (웃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글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개인적으로 원래 좋아하는 글쓰기 방식은 내가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각들을 나열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쓰는 글들은 예하 씨 말씀대로 형식이 있고,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해 쓴다고 생각하니까 어쭙잖게 정보를 많이 끌어와서 덧붙이면서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봐온 사람인 것처럼 쓰게 되었다. (웃음) 그런데 그게 싫은 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글의 완결성을 갖추고 틀 안에서 써내려가는 작업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었다. 일종의 미션을 클리어하는 느낌? (웃음) 그리고 다들 옛날 영화들이고, 훌륭한 영화들이고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작품들이니 오히려 부담을 버린 면도 있었다. 어차피 훌륭한 이야기는 나올 만큼 다 나왔으니 내가 본 걸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뭘 봤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물론 괴롭기도 하다. 나는 영화의 난해함과는 별개로 <미치광이 피에로>가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프리뷰를 써놓고 보니까 글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웃음) 이 영화는 진짜 재미있는 영화인데 왜 그런 부분을 전할 수가 없을까. 그때 영화에서 메시지나 관념적 틀을 보는 것 보다 거기서 얻은 감흥을 글로 쓰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면서 그런 감각을 전할 수 있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예하: 글을 쭉 써놨는데, 내가 진짜로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글에 하나도 없을 때가 있다. 정말 당황스럽다. (일동 공감)

백희원: 진짜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분석만 하게 되는 것 같으니 이게 아니었는데 싶은 생각이 든다.

박영석: 프리뷰나 리뷰가 아니라 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면 그런 부분을 좀 더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지금 써야하는 글의 특성인 것 같다. 힘든 것도 재미라고 생각해야지. (웃음)

 



배준영: 나는 사실 글 쓰는 거나 녹취 푸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나름대로 나의 방식으로 형식에 맞춰 의견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피드백이 없으니 내 글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친구들 영화제는 너무 바쁜 기간이니, 다음부터 에디터들끼리라도 서로 피드백을 줬으면 좋겠다. 다른 부분은 딱히 어렵지 않다.

박영석: 사실 우리가 이렇게 글을 써서 1년에 댓글 한두 개라도 받으면 다행인 편이다. 그나마 서울아트시네마 네이버 카페 같은 경우는 댓글이 좀 달리는 편인데 웹블로그는 거의 없다.

최용혁: 공부하는 차원에서 쓴다고 생각하면 괜찮긴 하지만, 아무도 이 글을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박영석: 옛날 영화를 쓸 때 힘든 면이기도 하고 좋은 면이기도 한데, 사실 사람들이 정말 별로 안 읽는다. 그런데 그러니까 오히려 더 편하게 쓸 수도 있다. 방금 개봉한 영화에 대한 첫 번째 글을 쓴다고 생각해봐라. 엄청난 부담이다. 그럴 때보다 오히려 편하게 쓸 수 있는데, 또 그만큼 실제로 읽는 사람이 적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최용혁: 가끔 그런 자부심은 생긴다. 이를테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고전 영화들에 대한 리뷰가 많이 나왔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쓰는 글이 이 영화에 대한 첫 번째 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박영석: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글 쓸 때 그런 부분 역시 고려하면 좋다. 외국에서는 엄청난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말로 쓰인 글이 없을 경우에는 정보도 많이 넣고, 소개한다는 느낌으로 신경을 많이 써야한다. 아무튼 우리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읽는 사람들은 열심히 읽어준다.

 

박영석: 말이 나온 김에 앞으로 영화 글을 계속 쓰고 싶은지, 아니면 영화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최용혁: 기본적으로는 연출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다보면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것이 영화적인지 하는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일단 에디터 활동하는 동안 여기서 열심히 글을 쓰고, 내년부터는 혼자 시나리오를 쓸 것 같다.

배준영: 나는 연출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찍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런데 요즘 찍고 싶은 게 막 생긴다. 그래서 굉장히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고 예전에 써두었던 시나리오들을 다시 꺼내서 고치고 있다. 지금은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고, 앞으로는 해외 영화제들에서도 일해보고 싶다. 그래도 언젠간 한국에 돌아올 거고, 한국 영화계가 부흥이 되고 외국에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요즘은 연출을 젊을 때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예하: 나는 사실 뭘 할지 모르겠다.

박영석: 아직 애라서 그렇다. (웃음)

박예하: 맞다. 난 아직 애니까. (웃음) 사실 진짜 꿈은 관객이다. 그게 제일 좋은 것 같고, 누구나 그럴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직업이 될 수 없지 않나. 그렇다면 최대한 관객과 가까운 위치에서 영화의 주변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라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일단은 영화에 대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고, 그래서 불어 전공도 택했다. 나도 영화제에서도 일했었고, 현장도 나가고, 여러 가지 잡다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지금은 그냥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박영석: 내가 처음에 영화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단순히 영화가 좋아서였다. 별다른 야망은 없었다. 처음부터 연출 욕심은 없었고, 스스로 뭔가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냥 영화 보는 게 너무 좋았고 관객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가 있지 않나. 남들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싶고, 허세 부려보고 싶을 때도 있고. (웃음)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고 이제는 결과물을 낼 때다.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영화 글을 써가면서, 저널 일도 하고 싶다. 직업적인 꿈이라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고 싶다. 내가 정한 영화를 사람들이 볼 때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영화 추천해주는 걸 좋아한다. 글은 계속 쓸 거고, 공부도 계속 할 거다. 끝이 없는 것 같다. (웃음)

 

백희원: 나는 25살에 대학교 4학년 1학기다. 그러다보니 가는 데마다 취직은 어디로 할 거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사실 나도 그냥 관객이고 싶다. 다만 관객이기 위해서 일정정도의 물적 조건이 필요하니까, 지금 목표는 관객으로 살 수 있도록 어떤 일이든 직장을 갖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저널 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굉장히 애매하다. 내가 기업 타입이 아니다보니 주변에서 당연히 너는 저널 일을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틈새가 보이면 다른 곳을 찾을 것 같다.

 

정태형: 아버지께서 극장을 워낙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많이 다니긴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영화를 하고 싶어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다가 16살 때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다.

박영석/박예하: 친구를 잘못 만났나. (일동 폭소)

정태형: 그런 셈이다. (웃음) 그 전에는 영화 보는 게 단순한 취미였는데 그 친구를 만나고 나니 영화에 대한 일, 그러니까 감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독서실 간다고 하고 언제나 극장에 갔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3년 내내 영화만 봤다. 대학도 운 좋게 갔는데, 그래도 영화과를 갔을 땐 자신한테 굉장히 대견스러웠다. 요즘 갈수록 드는 생각은 영화 찍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거다. 사실 습작 단편들을 논외로 치면 바로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다. 일단 돈을 충분히 많이 모아놓을 생각이다. 어떤 일을 해서든지 재정을 확보해두고 나중에 안정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어떻게든 영화 일을 하고 싶지만 힘들고 어렵게 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내가 스스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느끼는 건, 어떤 것도 이렇게 오랫동안 해오지 못했으니까.

박영석: 나도 스물다섯부터 영화만 봤다. (웃음)

백희원: 나는 그런 게 정말 신기하다. 나는 몰입을 못한다.

박예하: 사실 나도 그런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만이 그 몰입을 지탱해주었던 것 같다.

정태형: 맞다. 바로 그거다. 그냥 영화만 보면 다른 건 상관없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영석: 어쨌든 우리 많이 이야기 한 것 같다. (일동 폭소와 박수) 앞으로 잘해봤으면 좋겠다. 오늘 들어보니 다들 피드백을 많이 원하는 것 같다. 서로 원하는 게 뭔지 알았으니 앞으로는 좀 더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