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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안녕 김치>의 마쓰에 데쓰아키 감독을 만나다!

상반기 마지막을 장식한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

올 상반기 마지막 ‘일본영화걸작 정기 무료상영회’가 열린 지난 6월 13일 월요일 저녁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는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이날 상영작 중 한편인 <안녕 김치>를 연출한 마쓰에 데쓰아키 감독이 내한하여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 한국계 일본인인 가족들이 걸어온 역사와 현재를 재일한국인 3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웃음과 눈물의 다큐멘터리 <안녕 김치>에 대한 영화 이야기부터 현재의 일본사회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들려준 뜻 깊은 시간의 일부를 이 지면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녕 김치>는 영화학교의 졸업 작품이기도 한데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마쓰에 데쓰아키(영화감독): 원래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결정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60~70년대 아메리칸 뉴시네마를 보면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도 그런 영화들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세운 학교인 일본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 학교에 들어갔을 땐 극영화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한동안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학교의 커리큘럼에도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이 있었다. 수업과정에서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취재 하는 과정은 평상시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재일한국인이라는 걸 주위에 말해본적이 없었고,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런 것에 대해 얘기해 본적이 없었다. 왠지 화재삼아선 안 되는 이야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안녕 김치>를 찍자고 생각했다는 것 중 하나가 카메라가 있으면 취재라는 명목으로 기존에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가족들이 굉장히 편하게 얘기하는 것 같지만 평상시에는 거의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이뤄지는 대화들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보겠지만 내겐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카메라가 있음으로 해서 가깝게 한 단계 더 들어가서 가족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성욱:
<안녕 김치>라는 제목이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마쓰에 데쓰아키: 이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었을 때만해도 한국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어서 내가 좋아하는지 혹은 싫어하는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근데 오히려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 된 건 확실하게 무엇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족들이 서로 태극기를 드느냐 일장기를 드느냐로 나눠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처음부터 분명히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그 장면으로 하여금 나의 어떤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데, 우연치 않게 그 장면을 찍을 때 바람이 불면서 국기들이 떨어져버렸다. 결국 내가 잘 모른다고 하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김성욱: 재일한국인 3세로서 여전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들을 일본 사회 안에서 많이 겪게 되는지 궁금하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제기된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살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마쓰에 데쓰아키: 12년 전에 만든 영화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일한국인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비슷했는데, 둘 중의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고민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한 고민 자체가 드라마로써 만들기 더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처럼 확실하게 나누지 않고 그런 고민 자체를 긍정적으로 다룬다는 점 때문에 당시에 많은 재일한국인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안녕 김치>를 찍고 나서 얼마 뒤 <쉬리>가 일본에서 개봉해 화제를 일으켰고, 드라마 등을 통해 한류 붐이 일었다. 이 영화를 찍을 때는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어서 아마 지금 이 영화를 찍게 된다면 다른 형태가 될 것 같다.

김성욱:
가족 영화를 본 느낌이어서, 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할머니는 2005년에 돌아가셨다. 당시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것을 생각하면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이었지만 같은 해 가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일은 큰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큰 병도 앓은 적도 없고 입원했던 적도 없었는데, 우연히 병원에서 병을 진단 받고 3주 만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이 영화를 돌이켜보는 것이 개인적으로 힘들다. 큰 고모님도 일 년 전 쯤 돌아가셨다. 영화라는 것이 잔혹한 면이 있다. 특히나 다큐멘터리가 더 그렇지만 촬영했던 당시의 시간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후에도 계속 반복된다. 이 영화를 보는 일이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오늘 영화를 보신 분들에게는 아버지나 할머니나 고모님의 모습이 아마 첫인사처럼 다가갈 텐데 그런 점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것 중에 가족 영화를 본 것 같다, 가족들을 만난 것 같다는 얘기가 정말 기쁘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재일한국인 1,2세에게는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지만, 3세의 입장에서는 재일한국인이 우선이기 보다는 가족 안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다보면 그 안에 자연히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이야기도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12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화를 내고 항의를 했을 거다. 실제로 당시 그런 반응들이 꽤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 때만해도 가족을 먼저 그리고 싶었고 그게 내게는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김성욱: 최근에는 도쿄 지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안녕 김치>를 만든 다음에는 AV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작업을 하게 되었고, 어떤 과정이었는지, 본인의 영화 작업에서 어떤 시간들이었는지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재일한국인 2,3세가 주인공인 AV를 찍었다. 포르노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는 섹스씬만 찍으면 나머지는 감독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닛카츠 로망포르노나 핑크영화처럼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지만 AV는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AV 작업이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플러스됐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선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대상을 계속해서 만나면서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는데, AV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알몸이 되려는 사람들을 데리고 찍기 때문에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굳이 필요 없이 바로 만들 수 있다. 그런 AV의 특징 때문에, 대상에 바로 접근해서 재일한국인에 대한 아이덴티티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안녕 김치>와는 또 다른 형태로 재일한국인에 대해 얘기하는 다큐멘터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당시 AV를 찍으면서 크게 배운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찍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상대와 관계를 쌓아가면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AV는 작품을 하루 만에 찍어야 하기 때문에 배우를 만나 바로 촬영을 시작하면서 액션을 걸고, 리액션을 도출해내서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점을 익혔다. 그래서 아마 일반적으로 여러분이 많이 본 다큐멘터리가 마라톤 같은 영화라면 나의 영화는 100미터 단거리를 달리는 것 같은 면이 있다. 지금은 AV를 찍고 있지 않은데,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만든 AV가 안 팔리기 때문에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 또 하나는 AV업계에서 변화한 부분인데 내가 찍었을 때만 해도 섹스씬만 찍으면 나머진 상관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관객1:
재일한국인을 다룬 다른 영화들에서는 북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안녕 김치>에는 그런 언급이 등장하지 않아 신기하다. 그리고 로망 포르노 같은 장르에서 섹스장면만 찍으면 나머지는 감독이 자유롭게 만들 수 있던 것의 배경이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예전에는 AV가 렌탈이었기 때문에 300엔만 내고 영화를 보게 되는데, 케이스에 적힌 내용과 실제 내용이 다르다하더라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렌탈에서 지금은 판매하는 것으로 시스템이 바뀌면서, 내용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정보를 게재하는 일반적이다. 비단 AV 뿐 만이 아니라, 간혹 ‘이 영화는 관객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과연 영화라는 것이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만을 위한 것이어도 되는 걸까? 아메리칸 뉴시네마나 닛카츠의 로망포르노처럼 관객을 만족을 시켜주는 것보다 만드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분들, 관객에 대한 도발들이 존재하고, 스크린 안에서 싸움을 거는 것 같은 그런 영화들이 더 자극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TV나 DVD와는 다르게 영화를 보러오는 사람들은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지 않나. 그런 만큼 영화 안에는 어떤 긴장감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북조선 국적과 관련해서는 이 영화 찍기 전에 사실 취재를 했었다. 조총련계의 학교도 가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다. 폭넓게 접근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취재를 하게 되면 정보는 많이 얻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는 것이 체감으로서 와닿질 않았다. 물론 그렇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목소리를 담았다면 좋은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었겠지만 나의 관심은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난 가족이 건강하면 돼’ 라든가 할머니가 ‘나는 네 할아버지 별로 안좋아했었어’ 하는 말들이 내게는 더 와 닿았다. 이 영화를 통해서 ‘재일한국인들은 이렇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를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려보고 싶다는 어떤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관객2: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찍다가 이번에는 졸업작품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에 대해 찍기로 결심을 했는데도 아직 카메라가 어색하다. 감독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기로 하셨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 작업하고 계신 작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마쓰에 데쓰아키: 사실 다큐멘터리는,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조심히 하더라도 누군가를 상처 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찍은 풍경에 뒤에 자신은 찍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찍힐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무서움이라는 것 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촬영하면 좋겠다. 10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데 왜 다큐멘터리를 찍느냐고 물으면 이것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영화나 TV영화로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촬영을 하면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녕 김치>도 그렇지만 가족들이 영화에서처럼 이야기하는 건 내겐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의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 일본에 큰 지진이 있었을 때 놀랐던 건 도쿄가 굉장히 어두웠다는 것이다. 33년 동안을 도쿄에서 살면서 그렇게 어두웠던 걸 본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동경이 어떻게 보면 너무 밝았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어두운 도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고정시키고 싶었다. 지인들 중에서도 후쿠시마원전이 있는 곳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찾아간 사람들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도쿄도 피해지중 하나다. 어두운 도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본의 뮤지션과 같이 라이브를 하며 거리를 걸으면서 동이 트는 것을 맞이하는 하루 동안을 담았다. 도중에 비가 와서 비를 맞으며 아침을 맞이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어두운 거리에서 어두운 하늘아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가을정도에는 공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관객3: 인터뷰를 통해서 가족들의 얘기는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생각되지만 감독님의 생각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마쓰에 데쓰아키: 직접적으로 나의 감정이나 생각이 비춰지는 부분들은 적지만 영화 안에서 질문의 순서, 제가 사용하는 단어 등에서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카메라의 시점을 가지고 이야기하는가를 통해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원래는 영화의 나레이션을 내가 하려고 했으나, 찍는 도중에 여동생으로 바꾸었다. ‘나는’이 아니라 ‘오빠는’이라고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등장시키고 등장인물 중의 하나로 보이게 했다.

정리:
장지혜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