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 시네바캉스 서울

[아티클]임협의 정신과 임협영화의 구조

임협의 정신과 임협영화의 구조

 

 

 

‘임협영화’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것이 가장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움직였던 1960년대부터 1970년 초까지, 대략 10여 년 동안 일본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영화를 말한다. 임협은 에도시대부터 임협영화가 마지막 빛을 발했던 1970년대 초까지 긴 세월에 걸쳐 일본의 중하층 사회의 평민, 그리고 서민들을 지탱해 온 삶의 미학이며, 정신적 모델이었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각자이자 일본 문학의 근대화의 리더였던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는 1892년, 「시대의 평민적 이상이라는 평론에서 호협한 기개와 용맹에 사는 협객을 주제로 ‘협()’이 평민 즉, 일반 서민 이상이었다고 논했다. 실제로 일본 평민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삶, 동경하는 삶은 ‘이키()’와 ‘협()’이였다. ‘이키’가 유곽 문화를 중심으로 남녀 사이에서 요구되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라이프스타일이었던 반면, ‘협’은 촌스럽고 거칠지만, 남자들 세계에서 통용되는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서민들의 삶의 방식에서 보이는 라이프스타일이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도 “‘임협’ 사는 모습이야말로 하층사회의 이키다”라고 했던 것처럼, 임협은 구수한 향취가 느껴지는 서민의 삶의 미학이었던 것이다.

 

 

 

도에이의 임협노선

 

 

 

     임협(任俠)에 관해서는 에도시대 초기·중기의 가부키에서 보는 용맹스러운 사나이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메이지시대에서부터 다이쇼 및 쇼와시대의 랑곡과 신극, 가깝게는 하세가와 신이나 시모자와 칸의 소설, 연극, 방랑사극에서 그 자취를 볼 수 있지만 그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역시 1960년대에 등장한 임협영화일 것이다.

임협영화의 본가라고 말할 수 있는 도에이(東映)의 임협노선의 시작은 1958년을 정점으로 1960년대부터 급격히 줄어든 영화관객을 극장으로 돌리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나온 전략이었다. 영화 인구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관객을 모은 도에이의 야쿠자 임협노선은 즉시 모든 영화기업에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일본 영화계는 단숨에 야쿠자 영화 일색으로 물들게 된다.

역사적으로 임협노선의 시작은 1963년 마키노 마사히로 감독의 <인생극장 - 히샤카쿠 人生劇場飛車角>라는 설과 1964년 오자와 시게히로 감독의 <도박 博徒>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두 가지 설 모두 일리가 있지만 임협영화의 기본형식과 틀을 제대로 갖췄다는 점에서 <도박>이 그 시작이라는 설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광의적인 의미에서 임협영화는 야쿠자 영화에 포함되어 도에이에서 제작된 방랑사극, 현대 갱스터물, 닛카츠의 액션 작품을 포함해서 다이에 사의 <자토이치> 시리즈와 <악명> 시리즈 등과 같이 야쿠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 대부분 그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임협영화를 협의의 야쿠자 영화로 본다면 메이지 이후, 쇼와 초기까지 근대화에 잔존하는 전통 풍속을 배경으로 일본 전통의상을 입고 촌마게(일본식 상투)를 없앤 야쿠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정의할 수 있다. 일본영화 사상 하나의 장르가 패턴화되어 10년을 넘게 대중의 인기를 유지해 온 사례는 아마도 임협영화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시대극이 그것에 필적하지만, 사극 속에 드라마, 비극, 희극, 스펙터클을 포함한 다양한 패턴으로 분류된다면 임협영화는 그 대부분이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듯 10여 년간 임협영화가 인기를 유지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작 자본과 흥행 자본이 밀착한 블록 부킹에 근거한 양산 생산 체제, 정기적 배급, 배우 전속제에 따른 스타 시스템에 의한 노선화가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영화는 스타를 중심으로 한 기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스타를 만나러 가는 것과 같았다. 영화는 항상 동시상영이 기본이었고, 게다가 격주로 개봉을 하기 때문에 그 일정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스타 시스템과 노선화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도에이 영화도 간판스타를 내세운 비슷비슷한 패턴의 영화를 시리즈만 바꾸어 양산하였고 그렇게 임협영화는 10여 년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또한 1966년에는 메이저 영화사로서는 처음으로 올 나잇 상영을 시작, 임협영화의 지지층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임협영화는 당시 상영형태였던 동시개봉을 위해 제작된 스타 중심의 메인 시리즈 작품과 색깔을 조금 달리한 작품군이 함께 제작되었다. 가령, 도에이 임협노선의 주요 시리즈는 다음과 같다.

 

-<도박꾼 博徒> 시리즈 (12화)

-<일본협객전 日本俠客伝> 시리즈 (11화)

-<쇼와잔협전 昭和残俠伝> 시리즈 (9화)

-<도박치기 博奕打ち> 시리즈 (10화)

-<형제의리 兄弟仁義> 시리즈 (8화)

-<붉은 모란 緋牡丹博徒> 시리즈 (8화)

-<남자의 승부 勝負> 시리즈

-<일본여협전 日本女俠伝> 시리즈

 

 

 

이외에도 단발적으로 제작된 <메이지 3대 습명>, <총장도박> 같은 임협영화의 걸작도 다수 제작되었다. 도에이 이외에서는 닛카츠의 <남자의 문장 紋章> 시리즈, 다이에의 <젊은 두목 若親分> 시리즈, <여자 도박사 女賭博師> 시리즈 등이 제작되었다.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

 

임협영화의 대부분은 스토리 구성, 시대배경,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 행동 등이 하나의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일정한 약속으로 이어지는 특징이 있다. 선과 악의 기준은 대부분은 신구로 나눠지며 이는 주인공을 둘러싼 시대, 배경, 관습, 생활방식부터 의상, 말투에서까지 확연한 대립구도를 보인다. 기본 스토리의 전개는 악덕 야쿠자에게 자신의 가족과 조직의 형제가 굴욕과 린치를 당하지만 인내를 거듭하는 주인공 야쿠자가 마침내 복수의 칼을 들고 적진에 들어가 피의 복수를 한다는 것으로, 그 위에 선과 악의 상징을 이용하여 명확하게 두 존재의 대립구도를 만들어낸다.

우선, 임협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전근대와 근대의 충돌을 들 수 있다. 그 대립구도는 야쿠자 영화의 선악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일본협객전>의 첫 작품은 메이지 중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배경으로 자본주의가 급속히 추진될 무렵이고, <메이지 3대 습명> 역시 근대 일본의 자본주의의 약진기, <쇼와잔협전>의 첫 작품은 제2차 대전 패전 직후의 혼란과 부흥기이다. 공통점은 근대 일본의 국력과 군사력의 약진, 새로운 정치와 경제의 힘이 비대해져 가던 시기라는 점이다. 모두 일본의 역사의 과도기이며, 일본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일본이 근대화를 향해 매진했던 시기이다. 임협영화에서 그려지는 정의의 야쿠자는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근대화에 싸움을 거는 인물이다. 그것은 임협영화가 대중의 지지를 얻었던 1960년대와도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를 외치며 오로지 경제 성장을 향해 매진하던 시기로, 변해가는 시대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주인공 쓰루타 고지와 다카쿠라 겐의 존재가 있었다.

또한, 임협영화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선악, 신구의 대립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연출이 곳곳에 시각적인 요소로도 나타난다. 시대의 변화로 붕괴되는 전통사회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야쿠자의 행동과 의상, 소품은 모두 일관성이 있다. 전통 야쿠자들은 대부분 전통 기모노나 유가타를 입고 일본식 목조 다다미 가옥에서 생활하며 이동수단은 인력거, 무기는 칼이다. 이에 반해 신흥 야쿠자들의 두목은 근대화의 최신 유행을 보여주는 말끔한 양복을 입은 멋쟁이이며 서양식 소파가 있는 응접실에서 시가와 담배를 피운다. 또한 외제차는 그들의 상징적 부속품이며, 무기로는 권총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임협영화를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논하기는 쉽지 않다. 기본 패턴을 중심으로 파생되어 양산된 임협영화는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 아닌, 한 작품 한 작품을 초월한 총체로서의 야쿠자 영화로 귀결된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주인공인 다카쿠라 겐과 쓰루타 고지는 과거에 수많은 야쿠자 영화의 작품 속 이미지를 업고 등장했으며, 악당인 가와즈 세이자부로, 아마즈 도시오, 아베 도오루, 가네코 노부오의 고정된 이미지도 마찬가지이다. 그 외에 작품의 인과관계에 있어서도 모든 야쿠자 영화는 서로 작품의 배경 조건을 공유해 나갔다.

이 밖에도 영화 속에 보이는 임협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방식과 행동, 그리고 의식 등은 임협영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의리’와 ‘인정’이 그것이다. 임협영화 속에서 의리와 인정은 일반사회에서보다 더 강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작동한다. 야쿠자 세계는 의리로 유지되는데, 의리는 야쿠자가 공동체를 추구하는 대가로의 윤리 체계로 계명에 가까운 구속력이 있다. 임협영화의 주인공들은 의리 하나로 목숨을 걸고, 인정 때문에 본인의 소중한 그 무엇을 잃기도 한다. 의리와 인정은 일본인이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일상적인 정서이고 도덕규범이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는 의리와 인정으로 움직이는 인간보다 이성과 지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긍정하고 장려했다. 그런 의미에서 임협영화는 붕괴된 일본의 도덕을 다시 부활시키는 역할을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임협영화는 고도 경제 성장기에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의지할 곳 없는 소시민과 청소년들의 강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그들에게 감정을 공유하는 장소가 되었다. 임협영화에 대한 일본 대중의 지대한 공감은 일본인의 삶의 기층에 잠재되어 있는 옛것에 대한 향수, 반성의 외적 표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0년대의 닛카츠 액션영화도 젊은이들의 심정을 대변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도에이의 야쿠자 영화와는 분명하게 다른 구조를 갖고 있었다.

영화평론가 와타나베 노부오가 “닛카츠는 ‘전후 가치’를, 도에이는 ‘반동’을 상징한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닛카츠 액션영화는 전후 가족과 국가의 구속에서 해방된 ‘개인’의 자유와 그것을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고독,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감추고 있었다. 이에 반해 도에이 야쿠자 영화는 60년 안보투쟁의 좌절 후 비약적으로 거대해져 가는 대중사회를 견디지​​ 못했던 ‘개인’이 공동체로의 회귀를 요구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기반으로서 청렴한 전통문화에의 향수를 강력히 요구했던 사회적 풍조를 엿볼 수 있다.

 

 

양식미로 승화된 비장함

 

 

     이와 같이 1960년대 임협영화의 출현은 일본 영화사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자 60년대 일본 사회의 움직임과 연동하여 필연적으로 일어난 시대적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임협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인 마지막 주인공이 비장한 모습으로 혼자 적진을 향해 가는 모습은 가부키의 하나미치(花道), 미에(見得)와 같이 임협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만들며 하나의 양식미로 승화된다. 악의 권력에 대항하여 홀로 적진에 돌진해 가는 야쿠자의 모습은 반체제운동과 권력에 대항하던 1960년대 전공투의 심정과 겹쳐지면서 강한 지지를 받았다. 한 예로 동경대학 고마바제(문화축제)에 등장했던 포스터에는 다카쿠라 겐의 얼굴 위로 임협영화의 대사를 패러디한 “말리지 말아요, 어머니. 등에 새겨진 은행나무가 울고 있어요. 동대 남자, 어디로 가나”라는 카피의 포스터가 걸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임협영화를 상영하는 심야극장에서는 전공투, 신좌익 학생운동의 기수들이 모여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스크린을 향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님”이라는 환성을 지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임협영화는 남자가 중심이었던 전통사회에서 남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 영화였다. 그러나 전통사회가 무너졌을 때, 임협도 쇠퇴하고 변질되었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임협영화는 1973년 <의리없는 전쟁> 이후부터 스크린 상에서는 더 이상 임협과 협기를 기대할 수 없는 폭력성과 잔인성만이 난무하는 야쿠자 영화로 만들어져 갔다. 하지만 모습은 다르지만 임협의 정신은 지금도 문학,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계속해서 일본의 근간에서 이어져 가고 있다.

 

임협의 정신은 일본의 심성과 삶을 알기 위해서는 피해 갈 수 없는 키워드이다. 이번 한국에서 개최되는 ‘임협영화 걸작선’임협영화 전성기 시절의 작품을 35밀리 필름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임협’(任俠)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사내답고 용감함’(한국고전용어사전), 그밖에 ‘약자를 돕고 강자를 물리치는 정의감이 있음’, ‘용맹스럽고 호협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 의미는 한국과 일본이 동일하다. 권력에 대항해 호협한 기개를 펼쳤던 영웅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었던 것처럼 이번 상영회가 일본인의 심성, 미의식, 삶의 방식, 라이프스타일 등을 볼 수 있는 계기와 더불어 한국의 ‘임협’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주희ㅣ 아트나인 이사

 

 

'2013 시네바캉스 서울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뷰] 메이지협객전  (0) 2013.08.02
[리뷰] 일본협객전  (0) 2013.08.02
[리뷰] 늑대와 돼지와 인간  (0) 2013.08.02
[리뷰] 의리의 인력거꾼  (0) 2013.08.02
[아티클]가토 다이와 임협영화  (0) 2013.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