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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시원적인 공간, 인간의 신체 -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







모든 것이 비워진 새하얀 풍경, 시간과 공간을 추측할 수 없는 신화적 혹은 시원적인 느낌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가 있다. 성서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아기 예수 같기도 하며, 그보다도 이전의 인류 태초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인간들은 그곳을 무작정 걸어 다니거나 울부짖고 다투거나 무언가 알 수 없는 행위를 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불과 물이라는 질료, 양과 말 등의 동물들, 그리고 원형의 구도는 영화의 시간성을 자꾸만 태곳적으로 이끌고 간다. 모든 것이 새하얗고 흐릿한 풍경에서 지평선은 무한히 확장되며 하늘과 땅의 경계조차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화 <내부의 상처 La cicatrice intérieure>(1972)는 필립 가렐이 니코와 결혼한 후 만든 첫 작품이다. 영화음악을 담당한 니코의 주술적인 음악은 이 영화의 제의적인 느낌을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가렐은 과다노출로 촬영하여 빛으로 가득 찬 새하얀 화면, 그리고 과소노출의 어두운 화면과 암전이라는 두 양극점을 조화롭게 활용하는 감독이다. 빛의 깜빡임과도 같은 밝음과 어둠, 백과 흑의 교차가 있다. 백색의 빛은 영화의 공간성을 무화시키며 암전은 영겁의 시간을 함축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일종의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영화적 시공간을 창출해낸다. 질 들뢰즈는 가렐의 이러한 미학을 각각 '흰 스크린'과 '검은 스크린'이라 불렀다. 이 공간에 놓여진 인간의 신체는 매우 물질적 존재성을 갖는다. 즉 <내부의 상처>에서 등장하는 인간들은 일반적 영화의 캐릭터적인 특징을 지니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신체 그 자체로 스크린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그 스크린 속의 신체는 연기자의 신체 그 자체가 현전하는 것이 아니다. 가렐의 영화에서 흰 스크린과 검은 스크린의 극단적 활용은 신체의 부재를 낳는다. 일종의 사라짐이자 비워짐이다. 영화는 거기에서 출발하여 흰색, 검은색, 회색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시원적 신체를 발생시키고 구성해낸다. 따라서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이는 그냥 '어떤 인간'의 신체인 것이다.




인물의 이동과 카메라 움직임 또한 공간과 신체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가령 울부짖는 여자를 내버려둔 채 원형을 그리며 무작정 걸어가는 남자가 있다. 카메라는 그를 360도의 트래킹 숏으로 포착하는데, 카메라와 남자간의 거리와 시점이 고정됨으로 인해 그가 단순히 측면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발걸음이 울부짖는 여자를 다시 지나감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원형을 그리는 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매 순간 카메라는 신체에 밀착되어 있고, 이러한 신체와의 밀착성에 의해 공간이 구성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신체들과 공간들의 관계를 사유한다.
흰 스크린과 검은 스크린의 활용을 통해 무화된 텅 빈 공간에서 몇 명의 인간들만이 등장하는 극도로 미니멀한 세계. 가렐의 미니멀리즘은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임과 동시에, 빛의 조절을 통해 이뤄내는 순수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지극히 영화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내부의 상처>에서 이러한 가렐의 미학은 시원적인 시공간을 창출하고 여기에 초월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영화를 거의 숭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다. (박영석: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