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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시네토크]“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다” - 손아람 작가의 추천작 <포레스트 검프>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다”

- 손아람 작가가 선택한 <포레스트 검프>




지난 1월 31일, 손아람 작가가 선택한 <포레스트 검프>의 상영과 시네토크가 있었다. 이날의 대화를 짧게 옮긴다.




허남웅(영화평론가) : 먼저 이번 친구들영화제에 참여한 소감을 듣고 싶다.

손아람(작가) : 놀랐다. 다른 친구분들의 이름을 보니 나를 왜 선택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영광이라 생각한다.

허남웅 : <포레스트 검프>를 추천해주었다.

손아람 : 나에게는 인생 영화다. 처음 전화로 제안을 받았을 때 직원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포레스트 검프>요” 라고 말했다.

이 영화를 세 번 이상 보신 분이 계실 것이다. 혹시 열 번 넘게 본 분도 계신지... 그런데 나는 100번 넘게 봤다(웃음). 나는 뭐랄까, 이 영화가 단순히 ‘좋다’는 개념이 아니라 기독교인이 성경 들춰보듯이 본다. 주말마다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서 ‘좀 씻어내야겠다’, 뭐 그런 느낌이다(웃음).

허남웅 : 그 정도로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손아람 :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내가 중학교 2학년인가 그랬다. 처음에는 그냥 재밌게 봤다. 그런데 나중에 살아가면서 이 영화에서 다루는 가치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의 예술이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주는 건 일시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 삶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배웠다. 이 영화는 분명히 나에게 영향을 미쳤고, 내가 쓰는 글에도 그 영향이 녹아 있다. 내가 쓰는 글의 ‘조상님’ 같은 존재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약 나의 글이 세상에 작게나마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거기에는 <포레스트 검프>의 영향도 녹아 있을 것이다.

허남웅 : 중학생 때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극장에서 보았나, 아니면 비디오로 보았나.

손아람 : 하도 많이 보다보니 오히려 첫 기억은 희미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걸 내 인생 영화로 삼은 건 아니다. 나이가 든 뒤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허남웅 : 그 감상의 변화들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듣고 싶다.

손아람 : 어렸을 때 봤을 때는 그냥 바보의 성공기처럼 보였다. 주인공이 ‘바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점차 나이가 들면서 삶의 우연성이란 테마에 관심이 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대사가 “인생은 초콜릿 박스 같은 것이다. 열기 전에는 뭘 먹게 될지 모른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깃털로 시작해 깃털로 끝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영화 속 포레스트 검프의 삶에는 너무 많은 우연들이 개입한다.

그리고 영화의 플롯 자체가 우연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만약 어떤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면 개연성이 없다고 바로 욕을 먹을 것이다. 기본도 안 된 이야기라고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삶의 우연성에 대한 어떤 진실이 담겨 있어서 이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어떤 무의식과 공명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삶 자체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말이다.

허남웅 : 이 영화에 대해 찾아보니 원작이 1985년도에 나온 소설이다. 그때 피디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을 때 모든 제작사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주인공도 바보고 각 에피소드들 사이에 너무 개연성이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피디가 결국 톰 행크스에게 바로 책을 보냈다. 다행히 톰 행크스는 이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고, 피디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바로 최고의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야 한다는 것. 그 사람이 바로 에릭 로스다. 따지고 보면 이 제작 과정도 전부 우연인 셈이다.


손아람 : 내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공로자는 에릭 로스이다. 그는 인간을 보는 관점이 뚜렷한, 위대한 작가이다. 이 사람이 쓴 시나리오에 저메키스 감독이 특유의 감성을 덧입혔다. 나는 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이라고 하면 저메키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캐스트 어웨이>, SF 영화 <콘택트> 등등.

허남웅 : 소설을 쓸 때 <포레스트 검프>에 영향을 받은 게 있다고 했다. 작가님의 소설 「디 마이너스」 같은 경우도 9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손아람 : 나는 어떤 커다란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개인적 삶을 같은 시점으로 보는 걸 피하려 한다. 이를테면 좌파와 우파가 나온다고 해도 개인의 삶은 그 사람의 정치성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거시적인 역사적 흐름과 분리된 인간의 관점을 지키려는 점이 좋았다. 그리고 그게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포레스트 검프의 이름인 포레스트는 KKK단의 간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히피와 흑표범단이 나오지만 이 영화는 그들을 어떤 정치적 진영의 관점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인간들의 관점에서 그려낸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우호적으로 그리지 않는 점도 있다. 그런 관점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고, 「디 마이너스」에서도 그런 걸 시도하려 했다.

허남웅 : 이 영화가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개연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다룰 때는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썼다고 한다.

손아람 : 세계관의 중요성을 가르쳐 준 영화이다. 보통 작가의 작업은 소재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작가의 진짜 작업은 소재 이전에 어떤 세계관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허남웅 : <포레스트 검프>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소위 ‘우파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역사를 그렸다는 것이다. 제니 같은 좌파측 인물이 병에 걸려 죽는 에피소드 등이 특히 그랬다.

손아람 : 그건 너무 즉물적인 발언이다. 우리만 해도 예전 민주화 세대, 소위 ‘386 세대’가 기성 제도에 편입됐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 민주화 세대에 속하는 각 개인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는 사실 별개의 문제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잘 보여준다. 만약 이 영화가 역사적 사건만 그리고 그 안의 사람을 그리지 않았다면 굉장히 볼품없는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는 역사적 필연성 안에서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각 개인의 삶을 보여준다. 커다란 역사적 흐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개별적 삶을 분리한 것이 이런 걸작이 탄생한 분기점이라고 본다.

허남웅 :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것이지.

손아람 :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포레스트 검프가 단상에서 이런 저런 말을 하려는 데 결국 실패하고 단상 아래에서 제니와 껴안는 장면을 좋아한다. 이 장면은 반전 운동의 핵심을 보여준다. 역사 안에서 인간 생의 변곡점이라 부를 만한 지점을 보여준 장면이다.

그리고 나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 장면은 포레스트 검프가 전국을 뛰어다니는 시퀀스이다. 실제로 나에게 그런 시기가 있었다. 뛰지는 않고 걸어 다녔다(웃음). 힘든 일이 있어서 두 달 동안 전국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해서 그냥 집 앞 한 바퀴를 돌고 왔다. 그런데 걷다보니 전국을 돌고 있었다. 그 여행을 하면서 포레스트 검프 생각도 많이 했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허남웅 : 그렇게 전국을 걸을 때 따르는 우군들이 있었나?(웃음)

손아람 : 아무 준비도 없이 걷다보니 나중에는 몰골이 좀 이상했었다. 씻지도 못하고 수염도 길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웃음). 그렇게 하루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는데 옆방의 대학생이 밤에 날 찾아왔다. ‘제가 이번에 졸업을 하는데 고민이 많습니다. 선생님께 상담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라고 하더라. 날 도사님으로 본 것 같다. 내가 ‘이방인’으로 보여서 자기 삶에 예외적인 조언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 것 같더라.

허남웅 : 로버트 저메키스의 영화에는 길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캐스트 어웨이>도 비슷한데, 저메키스의 영화는 길과 그 길을 걷는 사람을 보여줄 때 카메라가 멈춰있지 않고 항상 움직인다. 저메키스 특유의 미학이다.

손아람 : 저메키스 영화에는 삶 자체를 가출로 보는 관점이 있는 것 같다. 동의하는 관점이다.

허남웅 : <포레스트 검프> 말고 저메키스의 영화 중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손아람 : 로버트 저메키스 작품이라 좋아한 건 아닌데, <콘택트>도 굉장히 좋아한다. 원작도 대단히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원작은 굉장히 엄밀한 과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접근한다. 사실 좀 어렵기도 하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부분을 효과적으로 생략한 뒤 소설의 핵심 테마인 인간과 종교, 과학의 관계에 대해 파고든다.




관객 1 : <포레스트 검프>에서 깊은 인상을 준 조연이 누구인지 듣고 싶다.

손아람 : 주인공이 백지와 같은 캐릭터이다보니 조연들이 특히 더 도드라진다. 우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있고, 그 반대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 댄 중위가 있다.

또는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포레스트 검프가 있고,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 삶에 좌절감을 느끼는 제니가 있다. <포레스트 검프>는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긴장을 만들어낸다. 굉장히 세련된 방식이다.

허남웅 : 덧붙이자면 원작 소설이 85년도에 나왔는데 작가가 속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속편에는 포레스트 검프가 톰 행크스를 만나는 장면도 있다고 한다(웃음). 후속편도 만들어질 뻔 했는데 톰 행크스가 속편 출연을 거부하면서 불발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속편 시나리오 기획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손아람 : 안 만들어졌으면 한다. 속편이 넘어서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다.

허남웅 : 100번 넘게 보았다고 했는데 다 극장에서 보지는 못 했을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포레스트 검프>를 극장에서 본 느낌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손아람 : 이 영화는 오늘이 아니면 다시 극장에서 볼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장에서 보니 집중력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집에서는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전래동화나 이솝우화를 읽는 기분이다. 그런데 극장에서는 스크린이라는 것, 어둠이 주는 프레임 효과 등을 경험할 수 있다.

허남웅 : 소설은 사람들과 같이 읽을 수 없는 장르이다. 하지만 영화는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스크린을 여러 명이서 보는, 이상한 연대감이 생긴다.

손아람 : 그런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유머가 그렇다. <소수의견>을 모니터링 할 때 미묘한 유머 코드가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개봉 이후 사람들이 가득 찬 극장에서 볼 때는 한 명만 웃어도 그 균열이 빠르게 전파된다. 특히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뭔가 전염되는 감정을 받아들일 적극적인 준비를 한 사람들이다.

<포레스트 검프>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굉장히 수준 높은 유머로 무장한 작품이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볼 때는 절대 소리 내며 웃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나도 몇 번씩 크게 웃었다. 웃음은 어떤 면에서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메시지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소리 내서 웃을 아무런 이유가 없지만 극장의 관객들에게 함께 웃자며 소리 내어 웃는 것이다.

관객 3 : 저메키스 감독은 뛰어난 스토리텔러이기도 하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것을 빨리 도입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VFX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기술적인 측면을 통해 영감을 받은 부분도 있는지 궁금하다.

손아람 : CG를 통해 가상의 이야기와 실제 역사의 접점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지금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내 소설 「디 마이너스」에서도 그런 시도를 했다. 내가 쓴 이야기 안에서 역사적 사건들이 짧게 스쳐지나간다. 의식한 건 아니지만 아마 <포레스트 검프>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허남웅 :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저메키스의 영화들은 90년대 영화고, 작가님도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90년대 대중문화에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손아람 : 가장 예민했고, 또 문화적으로 수용성이 가장 높은 시기였기 때문에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이건 객관적인 건 아니지만 세계 대중문화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고 생각한다. 영화, 서사, 음악 전부 그렇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90년대에 나온 모든 가능성을 재조합하면서 재탕한다는 느낌이 있다. 영화도 90년대에 모든 걸 다 쏟아낸 뒤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허남웅 : 앞으로의 계획, 다음 작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다.

손아람 : 미래에 대한 계획을 얘기하면 시간이 지난 뒤에 사람들이 자꾸 전에 말했던 계획에 대해 물어본다. 그게 괴로워서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는 못할 것 같다.

허남웅 : 마지막으로 관객분들께 인사말씀 부탁드린다.

손아람 :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내가 선택한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이 좋을지 몰랐다.

<포레스트 검프> 정도의 영화는 영화사를 통틀어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야기의 힘과 이것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이 정도 에너지를 가진 영화가 흔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영화와 함께할 시간을 내어주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정리ㅣ 이오림 자원활동가

사진ㅣ장혜진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