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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시네토크] "영화가 있는 그대로 존중 됐으면 한다" - 배우 유지태가 선택한 <로스트 하이웨이>

‘2012 친구들 영화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 2월 19일, <로스트 하이웨이> 상영이 있었다. 상영 후에는 영화를 추천한 유지태 영화배우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그는 현재 데뷔 15년 차 베테랑 배우이자, 첫 장편 <산세베리아>를 촬영 중인 신인 감독이기도 하다.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게다가 시네마테크에 대한 남다른 관심도 엿볼 수 있어 더욱 특별했던 현장이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로스트 하이웨이>는 개봉 이래로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된 적이 없었고 꽤 오랫동안 제대로 볼 기회가 없었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고등학생 시기에 영향을 미친 영화라고 말했었는데.
유지태(배우): 트위터에서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로스트 하이웨이>와 <이지라이더>를 인상 깊게 봤단 이야기를 한 것을 계기로 이 자리가 마련됐다. 영화가 난해하고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때론 난감한 부분에 대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너무 전문적인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겠지만(웃음) 편하게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한 간단한 정보를 말씀드리자면, OJ심슨사건이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OJ심슨이란 미식축구선수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다. 데이빗 린치가 우연히 TV에서 OJ심슨이 나오는 장면을 봤는데 저 사람이 혹시 자기 삶의 도피, 정신학적인 용어로 심인성질환에 시달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스트 하이웨이>를 만들 때 전반적으로 린치의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생각들이 나열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유지태씨가 만든 단편들을 몇 편 봤다. 현실과 환상, 기억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작품들이다. 이 영화도 그런 측면이 강하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영화에서의 현실과 환상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유지태 : 일단 나는 한국 관객들이 스토리에 너무 연연한다고 생각한다. 뻔한 플롯에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싶고. 그래서 종종 다양한 실험, 이미지, 영상언어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독들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냉혹한 것 같다. 린치 같은 경우 디즈니와 함께 작업을 한 적도 있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라는 영화인데 감동적인 이야기다. 이런 감독들은 머릿속에 있는 강한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껴서 그런 영화를 찍는 것뿐이다. 나 또한 이미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영화 연기는 대사 연기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느낌을 전달하는 이미지 연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연극 연기, 대사 연기에 점수를 많이 주는데 영화배우는 도리어 멋진 이미지,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느낌에서 진짜 연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절제 있는 연기를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기를 좋아했는데 좋아했던 영화들도 다 환상적인 면이 있고 괜히 멋있어 보이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앞으로 그런 영화를 찍을 것이냐면 또 그렇진 않다. 아무래도 감독으로서도 살아야하기 때문에(웃음). 영화는 순수예술이나 자위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소통을 많이 할 예정이라, 앞으로 찍는 영화는 다양한 형태일 것 같다.

김성욱: 이미지가 강한 영화에 출연하면 배우가 지금 이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는 아마도 미스터리맨을 연기한 로버트 블레이크 정도가 아닐까 싶다(웃음). 연출을 하다 보면 감독으로서는 전체적인 아이디어나 상이 갖고 있을 텐데, 두 종류의 일을 하니 그 차이를 어떻게 느끼는지가 궁금하다.
유지태: 감독들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한 편은 프로덕션 디자인에 강한, 콘티뉴티가 강한 감독이다. 다른 한 편은 감각, 느낌에 충실한 감독의 형태로 나뉜다. 린치나 크로넨버그 감독 같은 경우는 감각, 느낌,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감독이라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그런 감독들에게는 PD,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모든 스태프들이 '지금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에 집중을 한다. 그럴 경우 영화배우로 참여를 할 때는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의 생각과 느낌, 분위기를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감독을 할 때는 나의 생각이 정확해야하니까, 안 그러면 현장이 혼돈의 도가니가 된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최대한 정립해서 최대한 짧고 굵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김성욱: 지금 촬영 중인 첫 장편영화인 <산세베리아>는 어디에서 어떤 착상과 아이디어를 뽑아냈나.
유지태: 대학교 때부터 만들고 싶던 영화다. 내가 장편영화를 만들면 성장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서 느꼈던 힘듦, 힘듦을 통해서 얻었던 철학,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느낌들을 꼭 영화로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스토리를 어릴 때부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스토리 자체는 상업적이진 못하다. 그 때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10년 전에 만든 스토리기 때문에 지금 현실과 괴리감이 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대를 반영하다보니 이주여성이 등장했다. 이주여성을 많이 만나 인터뷰도 하고 책도 읽으며 정보를 쌓아가다가 자신을 산세베리아라고 묘사하는 이주여성을 만났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로 쓰게 됐다.


관객1: <로스트 하이웨이>를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는지도 궁금하다.
유지태: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OST를 사서 먼저 듣고 영화를 보러 가는 버릇이 있었다. 성공을 할 때도 있었고 실패를 할 때도 있었는데, <로스트 하이웨이> 같은 경우는 명반에 가까웠다. 데이빗 보위라든지 스매싱 펌킨스 등 여러 음악이 나온다. 음악에 취해서 이 영화를 봐서 스토리를 보지 않고 이미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주인공의 머리가 흔들리면서 스텝프린팅 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관객2: 피나 시체 같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를 만드는 중이신데 잔인한 장면을 감독들은 왜 사용하는지, 꼭 필요한지 견해가 궁금하다.
유지태: 잔혹한 장면이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라 매력적이다. 극을 만들고 연기를 하며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의 희열이 있다. 사랑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도 희열이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를 다루고 삶을 반영해야하는 예술의 형태이기 때문에 폭력이 묘사가 되어야 하고 폭력의 사실성이 예술가와 관객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폭력이 등장하는 것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이 든다. 예전에 다르덴 형제가 원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는데 극영화를 하는 이유는 더 현실에 가까워지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관객3:
데이빗 린치 감독 영화 중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유지태: 질문을 듣고 <인랜드 임파이어>가 생각났다. 린치의 영화가 그런 것 같다. 스토리가 강한 것 보다 머리속에 유영하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그 이미지 속에 철학을 담는 것 같다. 영화를 다른 식으로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린치의 영화를 볼 땐.

관객4: 영화에서 음악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새로 만드는 영화에서 영화음악은 어떻게 하시는지, 누구와 작업하는지도 궁금하다.
유지태: 배우이기 때문에 일반 신인감독보다 많은 특혜를 얻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배우 일을 하면서 친해진 음악감독들과 단편 때부터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는 조영욱 음악감독님이 기부를 해주셨다(웃음). 기부라는 표현이 맘에 걸리지만 언젠가 제대로 된 대우를 하면서 그 분들과 작업을 하고 싶다.

김성욱:
린치의 경우 음악에서 아이디어나 영감을 받기도 하고 배우들과 리허설 작업에서도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로스트 하이웨이>를 음악으로 먼저 접한 것이 영화에 접근하는 비슷한 경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할 때 소통이란 표현을 썼는데, 그런데 린치 같은 경우는 관객과 소통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웃음). 관객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라, 창작 작업에서 관객이 보고 좋아할 요소를 일부러 넣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영화현장에서 배우로서 영화를 찍고 만드는 일을 하며 그런 딜레마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듣고 자리를 마무리하겠다.
유지태: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람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바른 형태의 예술이나 건설적인 행동들이 이어져서 기적 같은 일들이 만들어진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떤 현상이나 어떤 특이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특이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타인을 만났을 때 그를 진정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우리의 행동들이 건설적인 일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많이 존중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너무 어려운 영화 보게 해서 죄송하고 영화를 다양하게 바라봐주시고 시네마테크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영사사고가 있었는데 영사기가 많이 낡아서 그랬다. 많은 후원 부탁한다.

정리: 이정아(관객 에디터)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