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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비평가좌담] 보여지지 않은 영화들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자세와 노력

비평가 좌담


보여지지 않은 영화들에 대한 우리의 적극


적인 자세와 노력


- 김성욱, 유운성, 이용철 평론가가 말하는 Unseen Cinema 

지난 17, 카롤리 마크의 <러브> 상영 후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언씬 시네마(Unseen Cinema) 섹션에 참여했던 이용철 평론가와 유운성 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열렸다. 앞서 마련했던 시네토크가 두 평론가가 선택한 작품에 대해 각각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였다면, 이번에 마련된 자리는 언씬 시네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자리였다. “덩치가 큰 사람들 세 명이 한 테이블에 앉으니 오랜만에 테이블이 꽉 찬다는 말로 시작한 대담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경험, 그리고 언씬 시네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오고 갔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서 마련한 언씬 시네마 섹션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을 소개하기 위한 섹션이다. 이 섹션의 상영작을 위해 이용철 평론가와 유운성 평론가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두 평론가의 작품 선택의 변과 그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두 번의 시네토크를 통해서 들어봤으니, 오늘 이 자리에서는 언씬 시네마라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그 전에 방금 상영한 카롤리 마크의 <러브>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보자.

유운성(영화평론가): 보셨다시피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매력을 주는 영화들이 몇 편 있다. 쉽게 말해 씨네필들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영화들은 영화에 대한 암시가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를 본다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한다. <러브>도 이런 맥락에 있다. 무언가가 사라졌고 존재하지 않는데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두 여자가 말을 주고 받으며 무언가를 기다린다. 이런 부분들은 영화 보기의 경험과 같은데, 영화를 본다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스크린에 영사된 압도적인 이미지를 보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에로틱한 공감도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영화관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글은 흥미롭다.

이용철(영화평론가): 사실 나는 <러브> 90년대 초반에 우연히 비디오로 봤다. 매우 흥미로운 영화였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보았다. 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영화를 극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본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김성욱: 사실 영화는 사라짐, 부재, 보이지 않음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다시 보인다는 것의 문제가 있다. 언씬 시네마 섹션도 그렇다. 사실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보이게 하느냐의 문제는 평론가인 두 분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런 영화들이 보여지지 못하는 것은 영화들이 위치를 잡지 못한 이유가 크다. 국내의 이런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용철: 한국에서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영화의 유통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본다. 외국의 경우, 상영되는 영화들의 수적 방대함이 국내와 비교가 안 된다. 영화 평론가들과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은 새로운 영화들을 보기 위해 각종 영화제들이나 필름 마켓에 참석해 영화를 보고 그곳에서 본 영화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화가 유통되는 형태가 이와 다르다. 영화를 소개하는 자세가 다른 것이다. 각국의 여러 영화제들에 참석해 새로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계의 몇몇 영화제들에 참석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소수일 뿐이고,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해외 영화제에 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방법이 영화 잡지를 구독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방법이 아니면 새로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니 영화를 소개하는 자세가 다른 나라와 다를 수밖에 없고 영화의 유통도 원활할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 영화를 보여주고 소개한다는 것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다. 언씬 시네마는 계속해서 언씬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고전의 경우에는 시네마테크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대 영화의 경우에는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유운성: 일단 참고할 수 있는 한국의 잡지가 한 권도 없다. 뿐만 아니라 일간지의 문화면도 참고할 만한 게 없다. 물론 출장 지원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잡지나 일간지는 영화제가 있으면 그 영화제의 현장을 잘 전달해줘야 한다. 언씬 시네마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 큐레이터들의 한계가 있다. 영화제 같은 경우는 출장비가 책정되어 있지만, 시네마테크 같은 곳은 그럴 수가 없다. 운영비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하다. 해외 각국의 주요 시네마테크만 봐도 큐레이터들이나 프로그램 디렉터들은 출장비가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영화를 보고 좋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폭넓게 보면 복원된 영화들도 보여지지 않는 영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국내에선 그런 영화들을 소개하는 빈도가 낮다. 최근 마이크 파웰의 작품처럼 요즘엔 걸작이라고 평가 받았던 작품들도 애초에 누락된 장면을 포함해 최대한 원본에 맞게 복원하는데, 이런 작품들도 소개해야 한다. 어떤 점에서 걸작으로 평가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어야 한다. 꼭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작품뿐 아니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영화들의 복원판도 마찬가지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국내에서 상영됐는데도 자리 잡지 못 하고 사라진 영화도 언씬 시네마다. 심지어 보여졌는데도 정리되지 못 하고 그냥 흘러가버린 영화들이 꽤 많다.

 

김성욱: 과거의 영화들은 지난 자료들로 아쉽게나마 접근할 수 있지만 현재의 영화들은 실질적으로 그럴 수 없다. 영화제를 가거나 직접 그 지역에 가야만 현재의 영화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국내에 있는 국제영화제의 큐레이터, 기획자, 프로그래머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용철: 가장 큰 문제는 전문가 집단들이지만 관객들도 예외가 아니다. 씨네필들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말해야 한다. 잡지도 찾아보고 감독도 찾아보고 영화도 찾아보면서 왜 국내에서 이 작품들을 상영하지 않는지 따져야 한다. 큐레이터나 프로그래머들이 보여주는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들에게 어떤 작품을 틀어달라고 요구하면, 그들도 경각심을 갖고 영화를 소개하는 일에 임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유운성: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언씬 시네마에 상영되는 여섯 편의 영화 모두 다운로드가 가능하더라. 언씬 시네마는 존재하지만 언다운로더블 시네마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웃음). 그만큼 영화는 접근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극장에게 함께 공유하며 보는 것이 좋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한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영화를 본 사람에게 영화가 간직하고 있는 무언가가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보여지지 않은 영화들을 보여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게 하지 않기 위한 여러분 스스로의 방어와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정리: 최혁규(관객에디터)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