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시네토크] 기억의 밑바닥에서 다시 가져온 영화다 - 김곡 감독이 말하는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

시네토크

“기억의 밑바닥에서 다시 가져온 영화다”

- 김곡 감독이 말하는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

 

지난 3일, 김곡 감독의 추천작인 가이 매딘의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 상영 후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김곡 감독은 가이 매딘을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라고 말하며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줬다. 시네토크의 말미에서는 제한상영가로 상영이 힘들어진 <자가당착>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는데, 텀블벅(http://bit.ly/TipVzj)에서 이를 위한 후원금을 지원할 수 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가이 매딘의 영화 가운데 가장 친절한 줄거리를 가진 영화인 것 같지만, 이 영화가 도대체 뭘 얘기하는 건지 궁금해 하시는 관객 분들이 많을 것 같다.

김곡(영화감독): 가이 매딘이 언제나 다루고자 하는 세상은 비뚤어진 기억, 우리를 사로잡는 기억 같은 것이다. 그 기억은 자기들끼리 움직인다. 자기들끼리 배반도 하고 음모도 꾸민다. 김선과 함께 추천했던 감독들이 예르지 카발레로비치, 조셉 로지, 미이케 다카시 등이었는데 다들 미친 감독들이다(웃음). 그 중에 가이 매딘이 있었고 영광스럽게도 이 영화가 걸린 것이다. 이 영화를 추천한 것은 가이 매딘 영화 중 재미없는 영화 쪽에 속함에도 가이 매딘이 생각하는 세계관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가이 매딘의 영화는 <세계의 심장>이라는 그의 단편이다. 그것도 같이 틀어달라고 부탁했는데.

 

김성욱: 배급업체에 그것도 달라고 했는데 답이 안 왔나 보다(웃음). 가이 매딘의 영화를 튼다고 자랑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김곡: 제가 가이 매딘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외람됐다면 죄송하다. 가이 매딘에게 당신의 영화를 튼다고 자랑하니까 메일을 바로 주시더라.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최근에 만든 영화의 가 편집본을 암호를 걸어서 보내 주셨다. 그런데 그게 거의 포르노더라(웃음). 포르노그래피적인 성격이 엄청 강했다. 100개의 단편을 모아서 하나의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그 중에 서너 편을 보내주신 거다. 케네스 앵거에게 바치는 포르노 같은 거였다. 나이가 먹으니까 자꾸 포르노 생각만 나는 거 같다고 메일 말미에 쓰시기도 하셨고(웃음).

 

김성욱: <겁쟁이는 무릎을 꿇는다>는 10개의 잘려져 있는 단편들로 구성되었고, 전시를 목적으로 한 것을 극영화로 붙여놓은 건데.

김곡: 어떤 해외 영화제에 갔더니 가이 매딘을 초빙해서 행사 같은 걸 하고 있었다. 가이 매딘의 영화를 큰 빌딩의 벽면에 프로젝션 하고 있더라. 그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2003)이라는 영화였는데, 당시에는 그 영화를 안본 상태였다. 그런데 그 이미지를 딱 본 순간 저건 가이 매딘 영화네 그랬다. 오리지널리티가 분명한 이미지를 만드는 감독이다. 전시작품도 많이 만들고. 이야기가 좋은 극영화는 아니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고 혼란스럽다. 극작가가 본받을 건 거의 없다. 복수의 근거가 두세 개가 등장하는데 뭐가 중심이고 주변인지 모른다. 나중에는 등장인물 자신도 이걸 왜 하는지조차 모르게 되고 그래서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다. 반복되는 패턴들은 있는데 그 패턴들을 가지고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 같다.

나와 김선을 매료시켰던 것은 그의 이미지다. 자기 문법을 가지고 자기 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예전의 롱테이크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핸드헬드만 하면 박수를 치는데, 가이 매딘은 그런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고 오히려 무성영화로 돌아가려는 퇴행적인 충동에 사로잡혀있다. 언제나 퇴보의 영화를 찍는다. 그런 이유에서 언제나 16mm나 슈퍼 8mm의 영화를 찍고, 표현주의나 소비에트 몽타주의 문법처럼 영화사에서 잊혔을 만한 우리 기억의 밑바닥에 있는 영화를 끌어다온다.

 

김성욱: 이 영화는 뇌와 심장, 그리고 그 사이의 손에 관한 영화다. 뇌가 의식, 기억, 왁스 뮤지엄 쪽으로 향한다면 심장은 차가움, 아이스링크 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영화의 초반을 보면 이 모든 것을 정자탐구로 시작한다. 현미경으로 바라본다는 거 자체가 과거 초기영화의 형식이었던 키홀 무비를 떠올리게 한다.

김곡: 가이 매딘이 쓴 글 중에 ‘자궁은 불모다’라는 유명한 에세이가 있다. 아포리즘적인 괴팍한 농담 같은 건데 자신의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자기 무의식을 이렇게 묘사한다. 박물관처럼 얼어붙어있고 차가운 세계라고. 가이 매딘의 세계에서 의식이 상층부라면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가장 달라지는 건 온도일 것이다. 점점 내려가면서 뭔가 얼어붙고 정지하는 것들이 모여 있는 세계가 있다. 왜 아이스링크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이스하키가 캐나다의 국기이기도 하고, 위니펙이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기도 하고. 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얼음이다. 방부 보존된 아이스하키 선수들도 얼어붙어있다. 언제나 무언가 눈이 내리고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 기억과 의식의 불투명한 막이 있는데 그에게 이것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눈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욱: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가이 매딘 같은 작가를 보면 어떤 점들을 배우는가?

김곡: 자신의 꿈같은 세계를 뒤집어서 꺼내어놓는 건데 그렇게 하는 작업방식들이 요즘은 돈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아무도 잘 안하는 방식이고. 저 같은 사람들은 불우해서 잘 못하게 된다. 본받기는 힘든 작가이다. 그래서 가이 매딘 신작 나오면 쫄게 되더라. 영화 만들기 작업방식 중에 풋티지 전통이 있다. 남의 영화를 가져다가 재편집하는. 나는 가이 매딘을 가장 존경하지만 가이 매딘이 가장 부러워하는 작가들은 풋티지 작가들이더라. 그 작가들 사이의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가이 매딘은 자신의 기억을 풋티지 삼아서 막 뜯어다가 영화를 만드는 거다. 그들이 푸티지로 영화를 만든다면 가이 매딘이 하고 싶은 건 영화를 풋티지로 만드는 일이다. 요즘 하고 계신 작업도 단편 100개가 하나의 영화를 이루는 것이다. 내러티브는 없는데 정말 죽이더라. 나오면 보셔야한다.

 

 




관객1: 촬영된 방식이나 제작 투자 방식에 대해 알고 싶다.

김곡: 촬영현장은 굉장히 독특하다. 일종의 풋티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식이다. 우리 무의식에서 꺼내올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언제나 8mm나 16mm이고, 32mm 영화가 하나 있긴 하지만 가이 매딘 같지 않고 재미가 없다. 이분은 언제나 영화가 꿈같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럴듯하면 안된다. 언제나 세트를 조악하게 짓는다. 영화학교 1학년 들어가면 찍는 방식. 그렇게 찍는다. 인프라가 없어져서 많이는 못하는데 현상까지는 직접안하시고 네가현상까지는 직접 하신다. 투자 같은 경우는 소싯적에는 고군분투하셨는데 지금은 매니아층이 두터워져서 소규모 투자를 많이 받는다고 알고 있다.

 

관객2: 가이는 메타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는 것 같다. 복수를 원하는데 그것을 실행하는 건 가이다. 둘의 얘기가 초현실적이고 말도 안되는 부분이긴 한데 되게 보편적인 얘기인 것 같기도 하다. 베로니카가 아버지를 유혹하는데, 그럼 가이가 베로니카의 아들일수도 있을 것 같다.

김곡: 베로니카는 복수의 희생양이었는데 자신이 복수를 하게 된다.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이 가이의 어머니가 되어버리는 거다. 베로니카의 유령이 어머니 행세를 하는 게 재밌었다. 베로니카의 사랑은 미래로 운명 지어진 근친상간이었다. 근친상간의 주제는 가이 매딘 영화에서 자주 나온다. <조심>(92)에 나오는 커플은 서로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한사람은 아버지와의 섹스에 한사람은 어머니와의 섹스에 쾌감을 느낀다.

 

관객3: 데이빗 린치의 영화가 생각이 나는데 독특한 화면연출도 그렇고. 가이 매딘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김곡: 그림자를 다루는 사조가 사실 생각보다 생존자들이 많지 않다. 느와르 같은 장르물을 제외하면, 데이빗 린치와 가이 매딘 정도가 그 생존자들이다. 데이빗 린치, 가이 매딘, 체르카스키를 묶어서 신표현주의라고 이름 붙여도 될 정도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림자에 집착한다. 데이빗 린치 영화에서는 그림자가 인물을 정말 잡아먹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잡아먹지는 않는다. 서로 고용도 하고 배신도 하고 섹스도 하고. 가이 매딘에게 왜 자꾸 흑백필름을 찍느냐고 물으니까 흑백필름의 그림자에는 미스터리가 있으며, 칼라영화의 그림자에는 미스터리가 없고 다만 색이 없을 뿐이라고 답했다.

김성욱: 거대한 편두통의 영화라고도 보통 부르는데(웃음), 머리가 깨질듯이 아픈 영화들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를 보면 두통이 해소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한 번 편두통의 영화들을 모아서 상영을 하고 싶다. 그땐 꼭 <세계의 심장>을 틀도록 하겠다.

 





김성욱: 마지막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작년에 두 형제가 만든 <자가당착>이 개봉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는데.

김곡: <자가당착>이란 영화를 만들었는데 박근혜의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과하게 좀 썼다.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제한상영을 받았고, 한 번 더 넣었더니 정치적이라서가 아니라 폭력적이라서 그렇다고 말을 바꿨다. 사실 폭력적인 장면도 별로 없다. 텀블벅에 돈을 모으고 있는데 돈이 안 모인다. 큰일 났다(웃음). <자가당착>이 좋은 영화라고 홍보하는 게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봐야할 사람들에게 소급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구조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정치적 수준이다. <자가당착>의 개봉보다는 <자가당착>으로 제한상영가라는 부조리한 법질서를 공론화하고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에 제소해서 제한상영가라는 말도 안 되는 제도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게 중요하다. 무엇을 봐야한다거나 보지 말아야 한다는 문제는 민중들이 결정하는 거다.

 

정리: 박민석 /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