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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 존 카사베츠 회고전

[시네토크]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얼굴들> 상영 후 김영진 평론가와 김성욱 프로그램 디렉터의 대담

 

지난 5월 13일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존 카사베츠 회고전’ 상영작 중 <얼굴들> 상영 후, 영화평론가들의 대담이 이어졌다.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다. 비정형적인 내러티브, 인물들의 불안감을 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존 카사베츠의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영화를 보고 나니깐 담배를 태우고 싶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다. 오늘은 ‘존 카사베츠 회고전’을 맞이해서 카사베츠 영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오늘 초대 손님은 김영진 영화평론가다.

김영진(영화평론가,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오늘 이 영화를 세 번째로 봤다. 두 번째로 볼 때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보았는데 학생들이 졸더라. (웃음) 그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희들도 밤새 술 마시고 그러지 않냐. 그런 것을 영화로 찍었다고 생각해봐라. 처음에는 기분 좋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기고 새벽에 황폐하게 헤어진다. 아니면 다큐멘터리로 술 마시는 걸 찍었다고 생각해봐라”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들은 공감하고 어떤 학생들은 그렇지 않더라. 그리고 이 카사베츠 영화는 엄청 말이 많은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서는 굉장히 강렬하게 남는다. 접촉되지 않는 정서들, 그러한 잔상들이 굉장히 강렬하게 남는다.

 

김성욱: 이 영화도 그렇고 <남편들>이란 영화도 그렇고 술의 취기성이 강하다. 오늘은 이 영화를 3,40대 사람들이 보는 게 어울릴까, 아니면 20대 정도의 사람들이 보는 게 더 어울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사의 상당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 있다. 영화제작 당시인 67,8년의 상황을 생각하면 실제로 굉장히 들끓었던 상황이다. 우리도 며칠 전부터 계속 정치적인 사태들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누군가 ‘정치인의 눈물이나 얼굴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제목이 <얼굴들>이다.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태로 계속해서 벗겨나가는 느낌이다. 간밤에 있었던 무언가의 느낌과 흥취 같은 느낌이 든다. 우연적인 것 같지만 계획적이고 면밀하게 준비되지 않고서는 이런 느낌이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김영진: 만약 카사베츠 감독이 등장인물들을 20대로 잡아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3,40대 50대로 넘어가면 자기들이 한 번 살아봤으니까 망쳤다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공허감이 있는데, 젊은 세대에 대해서 약간의 질시와 부러움이 있고 상반된 것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20대에는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 20대들은 정말 잘 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학생들과 면담을 해보면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카사베츠의 대다수의 영화가 실제로 불안에 관한 영화 같다. 대표적인 영화가 <영향 아래의 여자>이다. 여기서 가장 경의적인 부분은 지나 롤랜즈의 뛰어난 연기다. 영화를 볼 때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끝날 때에는 그녀가 가장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는 느낌이 경이롭다. 감정표현에 매우 솔직하고 아주 민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느끼는 여자다. 그 여자가 상처받고 다치고 그녀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때 관객인 우리도 굉장히 서스펜스를 느낀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들, 구획지어 살아가는 것 같은 억압, 이것을 카사베츠는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끄집어내는 것 같다. 상업영화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찍긴 했지만 전체적인 맵핑은 정해져있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끊임없이 배우와 감독이 계속해서 창조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발견한 영화이다. 분명히 영화를 찍으면서 전체적인 목적지는 있었겠지만 배우와 감독 모두 굉장한 발견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제목에 충실한 영화다. 카메라가 절대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포착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배우가 그 정도의 감정 상태로 자연스럽게 도달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성욱: 카사베츠의 영화는 미국 내에서는 환대받지 못했지만 유럽권에서는 환대받은 영화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굉장히 미국적인 영화다. 분명히 카사베츠는 동시대아메리칸 시네마가 했던 과정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적으로 보면 미국은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와일드 번치> 같은 여정을 그리는 영화를 만들었다. 카사베츠는 그 여정을 더 심각하게 벌였던 것 같다. 그리고 훨씬 내적인 여행을 추구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집안 내부에서라도 인물들의 심리적 여정, 술에 취해서 이상한 퍼포먼스를 벌이다가 하루 정도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여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정의 공통성과 보편성에 있어서 동시대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여정을 그리는 방식이 미국보다는 유럽적인 방식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볼 때마다 느껴지는 연기의 활력이라든가 연기의 놀라움들을 어떻게 뽑아냈을까 나도 궁금하다. 몇 가지 정보에 따르면,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여러 번의 테이크에 의해서 얻어지게 됐다고 한다. <얼굴들> 같은 영화는 얼굴에 굉장히 집중하지만 인물들의 거리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분위기와 감정의 흐름들이 쏠렸다가 흩어지는 느낌의 감정의 패턴들이 영화 화면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놀라운 것 같다. 하룻밤 내내 폭풍우가 치다가 걷히고 나면 집에 들어갈 때의 초조함. 불안한 상태의 느낌들. 불안감 측면에서 보자면 다른 감독들도 3,40대 넘어가는 과도기에 굉장히 흐트러지면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이 시기는 카사베츠 영화 안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면서 동시에 시대적인 흐름 안에서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김영진: 이 영화는 어느 순간에 클라이맥스에 올랐다가 공허하게 끝난다. 보통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지 않는다. 예정된 결말을 향해 간다. 인과론적 구조 속에서 갈등을 해결한다. 카사베츠는 훨씬 그런 의미에서 무정형에 가깝다. 사실 삶이라는 게 언제나 갈등과 해결의 구조는 아니지 않나. 결국 영화를 보면 계속 수면 아래로 묻어두었던 것, 그런 관습과 기성관념, 기성도덕에 대해서 엄청난 에너지로 헤쳐 놓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60년대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때가 영화로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정형이 있었고 그 정형을 전세계에서 마구 부수는 시기였다. 이번에는 상영하지 않는 영화인데 <빅 트러블>이란 영화가 있다. 이게 비디오로 나왔는데, 감독이 존 카사베츠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그 느낌이 아니었다. 굉장히 정형화된 영화고 웃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카사베츠는 이 영화를 찍다가 콘티대로 찍지 않는다고 퇴출됐다. 그는 결국 끝내 시스템과는 타협하지 못했던 감독이다. 그래서 메이저 돈을 받는 것을 굉장히 끔찍하게 여겼다. 몇 편 만들기도 했지만 잘 안됐다. 인터뷰에도 나왔는데, 영화 찍을 때는 행복하지만 끝나고 나면 너무 슬프다고 했던 사람이다. 스탭들과 헤어지기 싫어서다. 그렇지만 메이저 사람들과 일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는 표 한 장도 넣어주기 싫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일정한 돈을 들이고 배급을 해야 하는 시스템 내에서 결코 화해할 수 없었던 유형의 예술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객1: 균형적이지 않고 파괴적인 인물들이 카사베츠 영화에는 도사리고 있다.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어서 상승과 추락은 있지만 중간상태는 없는 느낌이다. 마지막 장면도 봉합되지 않은 상태 텅 빈 폐허 같은 공간을 보여주는데, 카사베츠의 영화는 주로 불안을 담고 있는 영화 같다.

김성욱: 이 영화의 결말도 그렇고 6,70년대 많은 영화들이 보면 탈주의 경향을 갖는다. 카사베츠는 탈주라기보다는 해체의 경향에 가까운데, 원래의 지점으로 되돌아온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가 클럽까지 가서 젊은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다음에 자신의 집으로 남자를 데리고 와서 완전히 고꾸라진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일어선다. 존재성의 영도지점까지 갔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까지다.

김영진: 와이프의 외도를 목격한 남편이 난폭하게 굴려고 하자 여자가 남자를 때린다. 그러고 나서 카사베츠가 이 부부를 계단에 앉혀놓는다. 그러면서 부부들이 담배를 나눠 핀다.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잔영은 폐허의 느낌은 아니었다. 여기서 더 나빠질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하는 느낌이었다.

 

관객2: 40대가 된 남자로서 이 영화를 보니까 위안이 되었다. 이 사람이 29년생인데, 미국 문화적으로 세대를 놓고 보자면 비트 세대, 그러니까 2차 세계대전 끝나고 50년대에 2,30대를 맞이했던 세대고 그래서 재즈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 기성세대가 되고 히피세대에 느꼈던 불안감 같은 것이 영화에 반영됐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미국인들의 내면적인 우울 특히 40대들이 느낌 우울증이 잘 나타난 것 같다.

김성욱: 본인 스스로 결과는 불만족스럽다고 했지만 <기다리는 아이>도 흥미로운 영화중 한 편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으로서도 자신의 존재에 영도까지 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사베츠는 그런 시작점이 많기도 하다. 이후에 찍은 <남편들>도 배우가 많이 바뀐다. <그림자>에서 너무 기운을 빼서, 그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찍을지 애매해졌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누구와 함께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한 게 벤 가자라와 피터포크다. 그 다음에 이야기는 정해졌던 것이다. 이런 패턴이라는 게 카사베츠 영화 작법 안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영화는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여정을 보여준다. 환각, 꿈, 술, 담배라는 것을 거치지 않고서는 진행할 수 없는 여정 혹은 거기에 동반되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갈망, 그런 미국적인 상황에 대한 진실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굉장히 미국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이런 유의 영화가 당시에도 만들어지기 어려웠겠지만, 지금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1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상영한 영화이기에,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한 또 다른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함께 공유 됐으면 좋겠다.

 

정리: 김고운(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