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 talk

"시간이 지나도 절실함이 힘을 발휘하는 영화다"

[시네토크] 배우 전무송·안성기·송길한 작가와 함께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지난 20일 일요일 늦은 오후 마지막회로 상영된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상영 후 열린 시네토크의 현장에는 특별한 친구들이 가득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몸이 편찮으신 관계로 참석이 어려우셨던 감독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영화의 두 주연배우 전무송, 안성기 씨와 시나리오작가 송길한 씨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그리고 객석에는 영화 <만다라>의 감수를 맡아주셨던 평상스님까지. 평소 임권택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패밀리들이 모였다. 그들은 30년 전 영화임에도 새록새록 그 때 그 시절을 회고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진행으로 넘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정성일(영화평론가/영화감독):
영화를 30여년 만에 극장 객석에서 본 소감이 어떠한가?
전무송(영화배우): 영화가 개봉했을 때 단성사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 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안성기, 송길한 작가, 평상스님과 함께 이 영화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촬영당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송길한(시나리오 작가):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감흥이 남다르다. 다시 한 번 영화에 조목조목 감수를 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평상스님께 감사드린다. 유난히도 가족같이 끈끈했던 스텝과 배우들의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정신들을 오늘 함께하신 관객들이 알아주셨길 바란다.
안성기(영화배우): 성인이 되고 배우 활동 초창기 시절 출연한 영화다. 당시엔 나이 좀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애’다. 당시 정일성 촬영감독님과 임권택 감독께서 ‘정노인’, ‘임노인’ 하시며 장난치셔서 정말 나이가 많으신 노인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금 현재 내 나이보다 어리셨다. 참 세월이 느껴진다. 또 촬영하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생각난다.

정성일: 마이크를 객석에 넘겨 영화의 고문을 봐주신 평상스님의 소감도 듣고 싶다.
평상스님: 오랜 세월이 지나 30여년 만에 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싶다.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었지 하는 생각들이 난다. 옛 생각을 하게 되서 좋고 여러분과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감회가 남다르다.
안성기: 염불 한번 해주셔야지 좋지 않겠나? (웃음) 영화 속 나와 지산스님의 염불은 모두 평상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로 대체 되었었다.
전무송: 우리도 잘 배웠는데 리듬이 안 좋았다.
송길한: 둘의 염불 연습의 증인은 나다. 순천에서 촬영할 때 같이 술을 많이 마시고 나는 잠시 나왔는데, 민박집 불이 그 늦은 밤에 환히 켜진 채로 있더라. 다가가 보니 고 곽지균 조감독과 두 배우가 밤을 새워 다음 촬영씬 리허설을 하더라. 술이 확 깨던 순간이었다.

정성일:
'필름 2.0'에서 비평가들에게 ‘내인생 최고의 한국영화’를 꼽으라고 했을 때, 1위에 <오발탄>, 2위에 <하녀>, 그리고 3위에 <만다라>가 올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후 모두들 지겨운 시대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신과 1980년 5월 광주사건은 한국 사회가 다른 차원으로 돌입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 때 그 시대의 공기를 전해주는 두 영화가 <바람불어 좋은 날>과 <만다라>였다.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만다라>는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다. 보는 사람을 사로잡는 이 영화의 힘은 절실함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촬영당시 병 때문에 죽을 각오로 찍은 정일성 촬영감독의 절실함과 삭발투혼을 발휘한 두 배우 분, 혼이 빠질 때까지 시나리오 집필을 하신 송길한 선생의 절실함이 마법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은 안성기라는 배우의 위치를 굳게 해준 영화라고 생각된다. 삭발을 하며 집중해 임했던 이 영화가 갖는 개인적인 의미에 대해 듣고 싶다.
안성기: <만다라>라는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유신 정권 속에서 꿈틀하는 힘을 발휘한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것 또한 운이 좋았다. 그 이전에 성인 배우로서 찍은 4편의 영화에서 나는 회의를 느꼈다. 일생을 걸고 영화에 뛰어들었는데 약간 암울한 감정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바람불어 좋은날>을 만나 새로운 영화를 관객에게 보여줬고 나는 힘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만다라>를 만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에 함께 수 있었다. 배우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고 그 이후 내가 원하는 작품에 내가 배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다.

정성일: 많은 감독들과 작업해보면서 느낀, 임권택 감독님의 연기지도 스타일이 갖는 차별성은 무엇인가?
안성기: 구체적으로 말씀을 안 하신다. “해~봐, 해봐” 하실 뿐이다. 임권택 감독님은 특이한 습관이 있으신데, 감정 연기에 따라 고개를 올리신다. 고개가 끝까지 뒤로 안 올라가시면 NG고 고개가 다 올라가시면 좋은 것이다.

정성일:
전무송 씨는 원래 연극배우로 활동하시다가 처음 하게 된 영화라고 알고 있다. 처음 만나 같이 작업한 영화감독인 임권택 감독님은 어떠셨나?
전무송: 일반 관객 앞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영화계 선배인 안성기 씨가 카메라 앞에 서는 법에 관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인자하시고 부드러우셨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저 “이렇게 해봐요. 저렇게 해봐요.” 하셨다. 그러곤 “어때요? 괜찮아요?”하시는데 내가 이상하다 하면 다시 찍곤 했다. 배우에게 표현과 움직임에 대해 말하지 않으시지만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 때까지 촬영을 다시 하게끔 지도 하신다.

정성일: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참으로 이례적인 것 같고 그 형식이 파격적이라고 느껴진다. 쓰인 배경이라든지 쓸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송길한: 당시에 일반 회사에 들어가 월급쟁이가 되려 했다. 그러던 중 임감독님이 이미 촬영이 들어간 영화가 큰일이 났다며 살려달라고 찾아왔다. 영화사 기획실장이였는데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고 충무로 여관방에 들어가 4박 5일 동안 잠도 안자고 시나리오를 섰다. 여관방을 나왔을 때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실감했다. 극도로 몰려서 초능력적인 힘이 발휘된 것인지, 내가 썼나 싶을 정도로 좋은 대사들이 나왔다.

정성일: 영화와 원작 소설의 엔딩이 다르다.
송길한: 절집의 비리는 이 영화가 해야 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두 젊은이가 삶을 완성해가는 길에 관한 얘기니까, 두 젊은이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야 했다.


관객1: 안성기 씨 출연작을 많이 보았고 연기에 감동을 많이 받는다. <만다라>에서는 어떻게 캐릭터를 해석했기에 이런 연기가 나온 것 인가?
안성기: 착한 사람이다. 허나 화도 있다. 선배스님인 지산스님이 쿡쿡 찔러올 때 분노의 감정도 있고 그것을 표현해야했다. 지금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특히 엔딩씬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너무 밝게 속이 들여다보이게 웃고 있다. 조금 무표정으로 해도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나의 연기는 미숙한 점이 많았다.

관객2: 법운스님의 마지막 장면이야기가 나오니 지산스님의 마지막에 관해 묻고 싶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그 죽은 척하는 연기를 했나? 그리고 그 당시 눈이 정말 많이 온 것 같은데 기다린 것인가 우연의 일치인가?
전무송: 설악산에서 촬영했는데, 오색 약수터에서 눈이 오길 보름을 기다렸다. 4월 중순까지 눈이 오는 경우도 있다는 동네 주민의 말에 기다리고 기다리다 내년에 찍던지 하자하며 철수를 하려고 한 날에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렸다. 마지막에 딱히 어떤 표정으로 누워있자 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서 계속 남는 것은 “견성하거든 나 좀 제도해줘”와 “내 눈의 점안은 누가 해주나”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이고 남이 해줘야한다. 제대로 알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고민거리다. 나는 지산이 그것을 알고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생 구하고 있는 인생의 답을 나타내는 탑 밑에서 죽었다. 계속 남는 두 대사와 나의 탑을 생각하고 그것을 찾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관객3: 지산스님이 애인을 찾아갔을 때 애인이 고무신과 양말을 빨아주는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이해가 선뜻 안됐다. 무슨 의미가 깃든 것인가?
송길한: 굉장히 아름다운 씬이다. 아무리 창녀지만 기둥서방이 있다. 겪어보니 좋고 무슨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어 지산을 애인 삼은 것이다. 딸랑 고무신 하나 신고 만행을 하는 그의 신을 씻어 준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부은 것과 닮았다고 본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씬이 빛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상스님: 몇 가지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화 제목 ‘만다라’의 뜻은 '세계', '세상'이다. 우리가 사는 곳, 우주, 인생, 자연을 담는 총체적인 말이다. 엔딩이 원작과 달라진 이유는 내 고집도 있었다. 법운스님이 수행자로서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출발은 하게 한 것은, 지산의 삶에 매료되는 원작의 끝과 다르다. 대사가 달라진 곳이 있는데, 죽은 지산의 불상을 그의 애인에게 전해줄때 애인이 “그분은 성불하셨겠죠?”라 묻고 법운은 “그분은 그분이 원하는 곳을 가셨을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관객4: <만다라>라는 영화가 개인적으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송길한: 많은 내적 변화가 있었고 모르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 승려의 삶도 이렇게 치열한가 싶었다.
전무송: “내 눈에 점안은 누가 해주나”를 생각하다가 ‘내 눈은 내가 떠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막연한 불교 신자였는데, 영화 촬영 후 더 깊게 불교에 빠지게 되었다. 이 후에 <원효대사> <아제아제 바라아제> 같은 다수의 불교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안성기: 빡빡 깎은 머리와 승복을 내 몸에 맞추려고 영화 촬영 전에 준비도 많이 하고 승려처럼 돌아다니며 많은 체험을 했다. 그 때 많이 배우고 느꼈다.


정성일: 관객 분들이 임권택 감독의 다른 불교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셨으면 한다. 또 감독님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가 3월 17일에 개봉한다니 꼭 보시라.
송길한: 종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얘기다. 자기 이름과 돈을 바라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영화를 위해 만들고 이야기를 해기위해 만드셨다. 그의 정성과 감동이 잔잔하게 가슴에 배어드는 영화다.

(정리: 배준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