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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서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안고 떠나가는 기차

[영화읽기]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존 포드는 웨스턴 장르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포드의 경력은 곧 웨스턴 발달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여겨지곤 한다. <역마차>(1939)가 고전적 웨스턴을 완성한 작품이라면, 2차 대전 후에 나온 <수색자>(1956)는 서부와 서부 영웅에 대한 수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웨스턴을 완성시킨 걸작으로 평가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수색자>로부터 6년 뒤인 1962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작가적 성찰이 돋보인다. 그가 도달한 성찰의 깊이는 서부극과 영웅주의를 탈신화화하기에 이른다. 포드의 후기작 중에서 단연 손꼽히는 작품이며, 미국에서 웨스턴이 쇠퇴하고 있던 시기에 만들어진 기념비적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동부에서 법대를 갓 졸업한 변호사 청년 랜섬 스토다드는 서부로 향하던 중 악당 리버티 밸런스의 습격을 받아 우연히 신본이라는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스토다드는 존 웨인이 연기하는 서부 사나이 톰 도니폰과 핼리라는 여인의 도움으로 밸런스에 대한 복수를 준비한다. 또 한편으로 그는 마을을 연방정부에 가입시키고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신의를 쌓아나간다. 결국 스토다드는 밸런스와의 결투에서 이겨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불리게 되지만, 나중에는 밸런스를 쏜 사람이 도니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설이 사실이 될 때는 전설을 기록한다"는 신본 스타 편집장의 대사처럼,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전설이나 신화가 역사와 문명과 맺는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는 스토다드라는 동부 출신 변호사를 통해 서부의 황야가 문명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플래시백 속의 플래시백으로 보여 지는 스토다드와 밸런스의 이전 결투에서 숨어있던 도니폰의 존재가 드러날 때, 영화는 역사 과정에서 신화가 갖고 있는 역할을 보여주기도 한다. 스토다드가 대표하게 될 새로운 시대를 위해, 과거의 서부 영웅인 도니폰은 자신의 커뮤니티와 사랑한 여인을 모두 넘겨준 뒤, 자신의 집을 불태워 버린다. 스토다드는 역마차보다는 기차와 어울리는 인물로, 서부의 미래를 제시한다. 이에 반해 도니폰은 자신이 써온 서부의 역사를 스스로 지워버리고, 이방인 혹은 무법자가 되어 사라지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스타 편집장에게처럼 철도가 건설된 이후로는 잊혀져버린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서부극과 서부영웅에 대한 송가로 생각되는 영화다. 또한 웨스턴을 대표하는 두 사람, 존 포드와 존 웨인이 함께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해서 더욱 웨스턴 장르에 대한 반영적 영화로 비춰진다. 특히 존 웨인이 연기하는 톰 도니폰이 핼리와 함께 살기 위해 짓던 집을 자신의 손으로 불태우는 장면은 <수색자>에서 이튼이 집을 떠나가는 장면과 비교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세월이 흘러 폐허가 된 도니폰의 집을 다시 찾아온 핼리는 여전히 그 시절의 선인장 장미가 피어있는 것을 보고 추억에 빠진다. 돌아갈 집조차 사라진 도니폰에게 남은 것은 초라한 관과 오랜 친구들뿐이지만, 그의 관 위에 놓인 선인장은 여전히 아름답다.


결국 워싱턴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핼리와 스토다드는 신본으로 돌아오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스토다드는 처음 그가 신본에 도착했을 때처럼 변호사 사무실을 차릴까 생각한다. 영화는 스토다드가 원경에서 기차와 함께 신본에 도착했던 것처럼, 마지막에는 다시 서부라는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안고 떠나가는 기차를 비춘 채 끝난다. (이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