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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바캉스 서울

[비평교감1] 우리나라의 비평가는 어떤 태도를 갖는 게 좋은가?

<서신교환: 이사키 라쿠에스타-가와세 나오미> 상영 후 이어진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유운성의 비평교감

 

‘2012 시네바캉스 서울’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8월 2일 저녁, 이사키 라쿠에스타와 가와세 나오미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상영이 끝나고 서신교환 섹션 특별행사로 마련된 첫 번째 비평교감 자리가 이어졌다. 감독들이 영화로 서신을 주고받았듯 국내 비평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유운성이 첫 번째 주자다. 두 비평가가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으로 주고받은 영화와 비평에 대한 생각들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 서신교환 프로젝트의 작품을 오늘 처음 보았다. 이런 순간에 늘 반성하는 거지만 ‘아, 이런 영화를 너무 안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 대해 즉자적으로 말하자면, 이사키 라쿠에스타 감독의 영화는 흥미롭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반면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작품은 왜 저렇게 찍었는지 잘 모르겠더라. 평소 가와세의 극영화를 좋아하고 그녀가 비범한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나르시시즘의 극치를 달리는 것 같다. 반면 라쿠에스타 감독의 작품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여백이 굉장히 많고. 좀 멋있게 이야기하자면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은 접혀있는 부채와 같다’는 벤야민의 말이 떠올랐다. 라쿠에스타의 작품은 자신의 기억이나 주변의 일상적인 자취들에서 시작하지만, 타자에 대한 공감의 의지가 마구 확산되며 에너지를 준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와세는 거기에 전혀 응답을 안 해주더라.

유운성(영화평론가, 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에서 기획해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페르난도 에임브케와 김소영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 중 하나는 스페인 감독이다. 아무래도 스페인 감독들의 경우 본인들이 생각할 때 에세이적이고 서신적인 양식에 걸맞겠다고 생각한 감독들을 참여시킨 반면, 해외 감독들의 경우 그런 점도 고려하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름 있는 감독들을 선정했다. 그래서 빅토르 에리세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혹은 호세 루이스 게린과 요나스 메카스의 서신교환처럼 전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고, 한쪽은 열심히 하는데 다른 쪽이 심드렁해서 균형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혹은 서로가 각자의 표현에 집중해버려서 편지 한 통씩만 보내고 끝난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부분이 오히려 흥미롭다. 주고받는 서신의 양에 구속도 없었고, 처음에 편지를 어떻게 주고받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보자는 취지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김영진 평론가의 말씀대로 라쿠에스타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들을 자신이 모르는 해외 감독에게 보내며 교류가 생기기를 바랐던 반면, 가와세의 경우 편지에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활을 기록한 영상들을 보내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라쿠에스타가 이를 보고 자신의 서신을 진행시키는 방식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가와세가 자신의 고향에서 찍은, 기도하는 모습이나 아이의 모습을 보내자 라쿠에스타가 그걸 자신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시키는 식이다. 서신교환 프로젝트는 어느 한 쪽이라도 상대방의 편지를 보고 이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잘 안되더라. 위태위태하면서도 기어이 상대방이 보낸 것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연결시켜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낸 예가 게린과 메카스였던 것 같다.

 

김영진: 이야기를 확장시키기 위해서 사적인 언급을 좀 할 테니 이해해주시라. 제가 몇 년간 일부러 ‘독립영화만 써보자’하는 결심으로 글을 쓰다가 별로 큰 성과 없이 올해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GV 진행도 많이 했고. 그런데 별로 느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사람들과 엮이면서 평이 둔탁해지더라. ‘이런 부분은 좋지만, 이런 부분은 아쉽다’는, 가장 맥 빠지는 평론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선배 평론가와 여타 영화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도 이걸로 굉장히 공격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이야기 할 때는 대상이 굉장히 협소해진다. 지지하거나 풍부하게 해석할 영화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약간만 서운한 소리를 해도 감독들은 엄청 뭐라 그런다. (웃음) 그런데, 개인적으로 유운성 평론가 블로그에 자주 들어가는 편인데, 가끔 ‘어떤 한국 영화를 봤는데 완전 쓰레기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또 어떤 기자나 평론가가 그 영화를 칭찬하는 글을 썼다고 막 뭐라고 해놓더라. (웃음) 유운성 평론가는 특히 외국에서 영화 관련 네트워크를 만들었던 분인데, 우리나라의 비평가들은 어떤 스탠스를 갖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유운성: 기본적으로 저널리즘 비평은 스탠스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씨네21’이나 ‘무비위크’를 읽는 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호 잡지를 보고 어떤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런 미덕이 있지만 이런 단점도 있다’고 쓰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영화가 어느 정도 단점이 있지만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모든 단점에 눈 감는 게 맞고, 적절히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예 안 쓰거나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평들을 보다 보면 애매한 부분이 많다. 이 사람이 지금 대학원 페이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일반 독자들을 상대로 쓰고 있는 건지. 혹은 이 사람은 이 영화가 어떤 가치가 있다고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린 건지 아닌 건지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또한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평이 결정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령 올해도 신작이 나왔던 홍상수 감독의 경우가 있다. 분명 홍상수의 영화는 전체적으로 달라지고 있는데, 대략 <옥희의 영화>나 <하하하>쯤부터 그의 영화는 달라지지만 그의 영화에 대한 평들은 점점 지겨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수의 영화가 어떤 내적 변화를 겪고 있는지, 혹은 어떤 프로그램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를 꽤 많이 만든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영화의 미학적 프로그램이라는 측면을 파고들어간 평을 본 적이 없다. 대신 매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 영화가 왜 홍상수의 새로운 걸작인지를 입증하기 위한 레토릭들만 난무하기 때문에 홍상수 영화에 대한 평이 지겨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평론가가 다른 평론가를 비판할 때 상호간에 정당하게 실명으로 의견교환을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평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이다. 저널에 실린 한국 평론들을 읽어보면, 남의 글을 칭찬할 때는 실명을 쓰는 반면 비판할 때는 ‘혹자는’이라고 말하며 넘어가는데 이건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솔직하게 쓰다 보면 적이 많아지긴 하지만, 인신 공격성 표현이 아닌 이상 정당한 공방 때문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다지 만날 필요가 없는 사람이므로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감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황에서,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가 인간적인 관계가 끊어진 경우 별로 아쉽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반면 그런 언급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가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었고, 그런 사람은 감독으로서도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유운성: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전주영화제 해임 사태 이후 김영진 선생님이 한겨레에 쓰신 글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선배 평론가가 먼저 연락을 주셔서 ‘이런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신 건 처음이었고, 일주일 정도 고민을 해서 메일을 드렸다. 그 답장을 쓰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경험이었다. 오늘 편지 영화들을 봤는데, 한국에서 평론가들끼리 만나는 대담 자리는 종종 있지만 편지를 교환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혹시 그런 기회가 있을까, 기회가 있다면 그런 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자극이 되고.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자면, 유운성 평론가가 ‘독립영화’라는 계간지에 이서 감독의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에 대한 글을 실었었다. 그 관점이 흥미로워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일주일쯤 지나서 그 자체로 한 편의 글이 될 만한 답변이 왔다. 깜짝 놀랐고, 저는 그걸 인용해서 같은 잡지에 글을 썼다. 이런 식의 교환이, 오프라인으로는 어렵겠지만 온라인에 일종의 거점기지를 만들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유운성 급의 평론가가 5명만 모여도 화제를 끌 것이다. 템포가 좀 늦어도 상관 없으니 거점기지가 있어서 레터 투 레터를 연재한다든지, ‘쓰레기’ 같은 가감 없는 표현들이 오가는 평들이 실린다면 (웃음) 사람들이 많이 찾아 읽을 것 같다.

 

유운성: 불과 20년 전,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의견을 주고 받을 때 어쩔 수 없이 시간차나 거리가 존재하던 시기가 지나고 나자 사람들이 오히려 그 시간차나 거리를 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은 많아지지만 정작 ‘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줄어든다는 의식이 많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오늘 보신 서신교환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지난 10년 간 의도적으로 편지 형식을 빌린 프로젝트가 많이 나왔다. 게다가 그런 프로젝트들이 좋은 결과를 보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실제로 2002년 무렵에 발간된 <무비 뮤테이션스Movie Mutations> 라는 책이 있다. 조너선 로젠봄과 에이드리언 마틴이 공동 편집한 책인데, 같은 세대에 태어난 평론가들이 서로에게 오늘날의 시네필리아에 대해 쓴 편지와 답신들로 시작한다. 또, 비평적인 작업이 창작의 결과물을 만든 예도 있었다. 올해 전주에서 틀었던 <드라이레벤>이라는 영화가 그 중 하나다. 각각 대략 열 살씩 차이가 나는 세 명의 독일 감독이 6개월 동안 편지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셋이 함께 만들 수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발전시켜 ‘한 마을의 사람들’이라는 아이디어로 각자 90분짜리 장편을 옴니버스로 만든 영화다. 최근 이루어진 이런 식의 공동작업 중에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생긴 것 같고, 그런 수단으로 편지라는 방식이 돌아오는 것이 흥미롭다. 그래서 김영진 평론가가 말씀하신 대로 평론가들끼리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서 비평적 공동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진: 그러면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자,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운성 평론가도 약속하신 거다. 아까 창을 휘두르지는 않겠다고 하셨으니까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서신을 교환하는 자리로. (웃음) 사실 그런 걸 영화제가 주축이 되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홈페이지가 1년 내내 열려있는데도 영화제 때만 쓰지 않나. 거기에 비평을 모아서 뭔가 기획을 하려는 생각을 왜 하지 않는지 의아하다.

 

유운성: 이상하게 오프라인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권위부여가 너무 큰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비평가도 많지 않지만, 운영을 한다고 해도 오프라인에는 정련된 글을 발표하는 반면 블로그에는 ‘오늘 시사회를 갔다 왔는데 배우가 아름답더군요’ 뭐 이런 이야기만 한다. (웃음) 개인적으로 해외 평론가들의 블로그나 SNS에 자주 들어가보는 편인데, 그 안에서 평론가들끼리 논쟁이 개진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한 평론가가 블로그에 ‘지금 이 영화제에서 어떤 영화를 봤는데 이렇고 저렇다’라고 써놓으면 그 밑에 덧글을 다는 사람들이 거의 현역 평론가들이다. 그러면서 활발하게 의견 교환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일단 평론가들이 블로그에 덧글 다는 것 자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달더라도 ‘잘 읽었습니다’ 같은 하나마나한 덧글이 대부분이다. (웃음) 21세기 십 년이 넘었으니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창구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미국 쪽은 우리처럼 등단제도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온라인상에 비평적으로 유용한 글을 쓰다가 저널에 의해 발굴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한국은 평을 쓰려면 절차가 좀 있어야 하고, 온-오프라인의 위계와 장벽도 있다. 평론가들끼리도 많은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고, 평론가와 관객, 혹은 아마추어 필자들 사이에서도 교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김영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저도 어떤 형태로든 덧글을 달아본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모순적이기도 하다. (웃음) 어쨌든 오늘 우리끼리만 이야기 한 건 아닌 것 같고, 관객분들도 함께 생각하고 들어주신 게 느껴진다. (웃음) 늦은 시간까지 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정리: 박예하(관객 에디터) 사진: 정지은(자원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