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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바캉스 서울

[발제문]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개혁과 대안적 해결을 기대하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개혁과 대안적 해결을 기대하며

발제 조영각





1. 제한상영가의 문제


제한상영가는 2002년 <둘 하나 섹스>가 낸 "등급보류 위헌제청 청구 소송"에서 상영금지인 등급보류가 위헌임이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드러남으로서 조급하게 만들어진 제도이다. 당시 영화계는 제한상영가 역시 위헌의 소지가 있음을 줄기차게 이야기했지만 어떤 영화가 극장에 걸릴지 두려워한 제도권에서 제한상영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몇 개의 제한상영가 극장이 생겼고, 실제 운영되었다. 제한상영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옥외광고를 포함해 광고를 할 수 없고, 제한상영관은 멀티플렉스와 같은 건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폐관 위기의 단관극장들이 제한상영허가를 받아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제한상영가 영화가 많지 않았고, 광고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데 한계가 분명했다. 결국 극장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고, 일부는 지역에서 예술영화관으로 바뀌기도 했다. 제한상영가 영화를 수입했던 수입업자들도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상영되고, 비디오나 DVD로도 출시할 수 없는 제한상영가 영화를 계속 수입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제한상영가가 예상되는 영화는 그 영화가 아무리 예술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수입되지 못하고, 영화제에서 단발적으로 상영되거나 음지에서만 볼 수 있었다. 가끔 수입되는 영화들도 어김없이 문제시 되는 장면들이 삭제되거나 ‘블러’처리를 해야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008년 해외영화 수입업자가 헌법소원을 내서 또다시 제한상영가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지만, 정부 당국은 딱히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현행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당국의 게으름도 있지만 영화계의 무능력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제한상영가에 부합되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들이 많지 않고, 와이드 릴리즈 될 만한 제한상영가 영화를 수입하는 회사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싸워야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될텐데 영화를 개봉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권을 포기하고 싸우기가 쉽지 않고, 전면적인 싸움도 쉽지 않다. 영화계 전체로 보면 작은 이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제한상영가 등급은 없어져야 한다. 성인들의 볼 권리를 제한할 어떤 명분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제한상영가 등급의 논리가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으로 볼 때, 제한상영가 등급은 설득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등위를 비롯한 보수적인 청소년 보호론자들은 성인물의 범람과 포르노그라피가 극장에서 상영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미 성인물이나 포르노그라피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만 열어도 쉽게 볼 수 있는 컨텐츠이다. 실질적으로 포르노그라피는 음란물을 규제하고 있는 형법 등에서도 규제가 가능하다. 그리고 가족 관객이 주타겟이 되는 멀티플렉스에서 예술성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포르노그라피를 상영하기는 쉽지 않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있더라도 그것은 옥외광고물 등 일부의 광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면 된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 못 담그고,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식으로 일부의 우려가 전체 관객들의 볼 권리를 제한하고, 창작자들의 표현자유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백번 양보해서 현재의 제한상영가가 필요하다면 실질적인 상영금지 조치가 아니라, 현행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인정하고 지원하는 아트플러스 체인 예술영화관에서라도 상영을 허락하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이 부분은 영화인들이 뜻을 모아 법개정을 추진하면 된다. 영등위도 제한상영가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면서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영금지 조치가 남발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법개정에 나서야 한다. 영등위는 실질적으로 등급분류를 무기로 권위적인 기관을 자임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는데, 수입가격이 높은 영화는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개봉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사에서 제한상영가를 피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삭제하거나 블러 처리하고 일반개봉관에서 개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온전하지 못한 영화를 관람하게 될 수 있다. 아니면 예술영화관 버전과 일반관 상영 버전을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데, 한 영화의 두 가지 버전이 상영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없애는 것이 답이다.


영등위 홈페이지에서 검색 가능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제한상영가 영화를 찾아보았다. 2008년부터 2014년 7월 31일까지 6년 7개월 동안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국내 24편, 해외 36편으로 총 60편이다. 그중 5기 영등위 위원장인 박선이 위원장 재임시절인 2011년 9월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국내 19편 해외 27편으로 총 46편이다. 이전까지 14편의 영화가 제한상영가를 받았다면, 박선이 위원장 재임 시절 전년도에 비해 총 3배의 제한상영가 등급이 남발되었다는 점은 주지할 만하다. 등급이 있더라도 운영의 묘를 살려 그 등급을 주지 않으면 된다. 독일의 경우 상영금지 등급이 있지만, 상영금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현 영등위가 얼마만큼 영화인들의 이해와 요구에 무심하고, 관객들의 볼 권리를 하찮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며, 영등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남발


현 영등위의 문제점은 제한상영가 등급의 남발에만 있지 않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도 남발되고 있다. 박선이 위원장 재임 시기 전체 3,485편의 영화중에서 1,513편의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전체 영화 중 43.4%의 작품이 청소년관람불가인 것이다. 청소년들이 보지 못하고, 성인들이 봐야 할 영화들이 그렇게 많은가? 최근 당신이 본 성인영화를 생각해보라! 어떤 영화가 성인들만 봐야 하는 영화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김경묵 감독의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감독과 배급사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야 할 어떤 이유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영등위의 기준으로는 대사와 모방위험 부분에서 "높음"으로 나와 청소년관람불가라고 한다. 그들은 진정 청소년들이 뱉어내는 비속어와 욕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오히려 영화가 청소년들을 모방하지, 청소년들이 한낱 영화에서 비속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영화에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영화를 통해 폭력과 섹스와 비속어를 배운다고?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영등위 어른들은 청소년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성인들은 물론 청소년들의 볼 권리를 빼앗고, 그들을 단지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들을 점점 음지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반문해 보아야 한다.

3. 영등위의 개혁을 위해


현재 한국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는 영등위의 등급분류를 거쳐야 한다. 예외가 있다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영화진흥위원회의 등급분류면제 과정을 거처 자체 등급으로 상영된다. 서울아트시네마를 포함한 모든 영화제들이 이 제도를 통해 등급분류를 받지 않고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등급분류 면제조차도 거부하는 곳은 서울인권영화제 뿐이다. 때문에 극장에서 영화제를 개최하지 못하고, 야외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더 문제는 단 한 개관에서 개봉을 하더라도 영등위의 등급분류를 거쳐야 한다. 현행 등급분류제도는 모든 영화가 아니라, 등급을 받아야 할 영화를 규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일테면 몇 개관 이상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등급분류를 받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영화(독립영화전용관이나 시네마테크, 예술영화전용관에서만 개봉하는 영화 등)는 자율적으로 상영하도록 해야 한다. 사후 규제를 통해 현행 등급을 부합하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도록 하거나 하는 조치를 하면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한상영가 등급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남발도 재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등위가 개혁되어야 한다.

현재 영등위 위원은 10명 중 영화인 출신은 3인에 불과하다. (영화기자 출신인 박선이 위원장을 포함하면 4인이다)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의 경우 7인중에 3인이고, 비디오등급분류소위원회의 경우 7인 중에 2인 뿐이다. 영화인 출신이 아니라고, 그들의 문화적 영화적 소양에 시비를 걸 의도는 없다. 영화인들만이 등급 분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등급 분류 결과를 볼 때, 영등위의 기본 임무가 무엇인지, 등급 분류가 왜 필요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위원이 얼마나 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영등위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비판이 필요하고, 영등위는 그런 의견들을 청취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영화인들 스스로 민간기구를 만들어 자율적으로 등급 분류를 하고, 등급 분류가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임을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물이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언제까지 세세한 등급 문제 자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영등위를 해체하고 민간 기간에서 등급 분류를 해서, 현재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는 영등위를 구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