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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모든 걸 바쳐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한 질문

6월 작가를 만나다 - 조창호 감독의 <폭풍전야>

지난 6월 26일 저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대표적인 정기상영회인 ‘작가를 만나다’ 행사를 열었다. 상영작은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풍부한 감수성과 섬세한 연출력으로 표현해 새로운 멜로영화의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은 조창호 감독의 <폭풍전야>. 상영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미지들이 굉장히 많이 남고 감정 상태가 많이 보이는 영화인 것 같다. 어떤 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처음 하게 됐는지?
조창호(영화감독): 2001년도에 조폭 조직의 행동대장쯤 되는 분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는 와중에, 같은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에이즈 감염인의 피를 자기 몸에 바르고 마시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다가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그걸 신문에서 접하면서 필이 확 왔다. 과연 목숨을 담보로, 모든 걸 다 바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어떤 게 있을까,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던진 다음에도 얻은 게 없는 그런 허무한 상태에서, 그 남는 시간에 우리는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 대한 질문이 생겨 그걸 모티브로 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김성욱: 영화를 보면 인물들이 엇박자나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 어긋나는데 그게 감독님 얘기하신 것처럼 허무한 상황인지, 아니면 일종의 미필적 고의 같기도 했는데.
조창호: 미필적 고의는 분명히 아니다. 어떤 한 인물이나 사건이 다른 인물이나 사건에 미치는 영향력 같은 것이 갈등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어떤 복수의 것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 때 아주 단순화 시키면 드라마가 헐거워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시각적인 측면으로 보면 사라진다는 게 눈을 감거나 눈을 가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런 건 어떤 데서 생각을 했는지?
조창호: 마술이란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공통적으로 떠올려지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영화 속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술이 시각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인데, 실제적으로 그 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트릭이다. 그러니까 카메라가 진실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 영화 역사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흐름을 다시 한 번 제가 정리를 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김성욱: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회성이나 존재성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창호: 욕인가? (웃음)
김성욱: 아니다. (웃음) 일단 인물의 많은 부분을 비워두고 영화를 찍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중간 중간에 장난들도 좀 더 길게 지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굉장히 짧게 가고, 짧은 에피소드들이 되게 많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전체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그런 부분을 선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조창호: 이런 주제와 인물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훨씬 더 사회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아직 날것 그대로 끌어와서 영화를 만드는 그런 높은 경지는 아닌 것 같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 얘기를 할 때는 그냥 그렇게 떠올려 지더라. (웃음)

김성욱: 김남길 씨가 뛰는 장면이 있는데 그러다 쓰러진다. 저쪽에서 또 다시 황우슬혜 씨가 열심히 뛰어오다 또 쓰러진다. 그걸 여관집 소녀가 보고 언니 하면서 뛰어 올라가는데 그 장면이 되게 특이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미지에서 딱 촉발이 된 건지?
조창호: 그런 장면에서 웃는 관객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기본적인 연출의 세기가 부족했다는 부분은 스스로 인정을 해야 될 것 같고. 다만 이미지는 아니고 드라마 상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였다. 수인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고 그 시점에 와서야 자기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리고 그 여자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는 그런 걸 느꼈을 때 하루라도 더 살아서 이 삶과 공존할 수 있다면, 그런 바람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 첫 장면에서 현수막에 보면 지상최하의 마술이라고 돼 있는데 그렇게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조창호: 처음에 그거는 저 자신에 대한 조소로 출발했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은 상당히 볼거리가 있고 그러면서도 영화의 주제와 좀 더 맞닿고 하는 거였고 마술에 관련해서 굉장히 많은 자료를 찾고 준비하고 그랬다. 많이 연구하고 기획했던 여러 가지 마술 장면들을 포기하게 되면서 제 스스로에게 일종의 fuck you를 한번 날린거다.

관객1: 수인, 상병, 미아, 이름이 다 특이하다. 수인이라는 건 참는다, 인내한다는 말도 되고 그 다음에 죄수를 다른 말로 수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가 미아가 된다든지 그런 의미가 있을 것 같고. 그런 걸 생각하고 이름을 붙였는지?
조창호: .그렇다. (웃음)

김성욱:
영어 제목은 <Lovers Vanished>라고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조창호: 그거는 회사에서. (웃음)

관객2: 첫 장면이 바람 부는 것, 그 다음이 마술쇼 장면이다. 보이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공간적인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창호: 일단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술이 하나의 이미지, 어떤 제3의 장소에서 떠올리는 존재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이 이제 겨우 사랑을 알 것 같은데, 그러자마자 영화는 이제 끝인데 거기서 이제 그 감정이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또 다른 의미로 지속되어질 것 같은, 당장 여기서는 우리 눈에 보이진 않아도. 인물들의 뿌리가 없는 건 맞다. 폭풍전야는 사실 자연 현상이다. 공간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는 부분은, 그렇게 의도한 건 사실 아니다.

관객3:
영화를 보고 나니까 이미지라든가 이미지 안에서 인물이 배치되는 배경 이런 부분이 상당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대사가 그냥 외국어고 자막으로 만약에 이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궁금한 건 이 영화는 어떤 장르로 봐야 되는지?
조창호: 그냥 다른 것 빼고 드라마라고 부르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막으로 보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는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알 것 같다. (웃음) 제가 다 화살을 맞을 이야기다. 풍경에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다. 아, 그림 예쁘다, 라든가 풍경 예쁘다, 라든가. 근데 사실 전 그런 것이 욕이라고 생각한다. 제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은 종류의 영화들이 몇 있다. 그런데 특별히 칭찬할 거 없을 때, 그림 좋다, 미술 좋다, 뭐 이런 얘기를 하지 않던가. 물론 영화 속의 어떤 풍경이 하나의 감정으로, 이야기로 작용을 하길 간절히 원하면서 찍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인물, 인물의 감정이고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었다면 그것이 우선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거다.

관객4: 영화 정말 잘 봤다. 이런 느낌은 처음인데 영화를 정말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봐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이 이야기를 봐서, 이 이야기를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 슬퍼서 막 울었던 게, 되게 절박하게 느껴졌다. 결국은 이 이야기도 마술처럼 사라지고 사람들이 모르는 얘기가 될까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조창호: 영화를 봐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그런 관객을 뵙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건 방향을 가리키고 그쪽으로 가지 못한 그런 영화다, 저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끔 얘기한다. 가끔 나는 되게 잘 봤는데 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시는 분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제가 이 영화를 못 가게 만들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곳까지 가 계신 분들이니까 만드는 사람보다 더 뛰어난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관객5: 저는 장면들이 되게 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수인이 달리는 장면조차도 정적으로 느껴졌다. 제가 보기엔. 그리고 그런 정적인 장면들이 카메라가 이렇게 계속 가지 않고 장면을 전환시키는데 그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제공된다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조창호: 저 스스로는 영화를 만들면서 정적이다, 동적이다, 상징과 은유,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이 어떤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건 있다. 저는 아직까지는 세상의 선한 의지를 믿는 사람이다. 수인과 미아의 아주 선한 마음의 결, 민정에게도 그런 것이 좀 남아있고, 다른 캐릭터에도 조금씩 남아있어서 쉽게 깨지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씨, 그런 결이 부딪치면서 만들어지는 감정. 제가 생각하는 감정이 제가 썼던 대사로 제대로 전달되어졌을 때 대사 하나하나에 충분히 그런 감정이 느껴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김성욱: 이제 마쳐야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조창호: 영화를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실제로는 이런 자리가 이 영화 만들고 나서 처음이다. 다섯 문제밖에 못 맞췄는데, 와 이 문제 어떻게 풀었어?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자리가 저한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고 영화 만들라 말씀하시는 것 같고 저도 좋은 기운 받고 돌아가는 것 같다. (정리: 홍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