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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엘리아 카잔 특별전

메소드 연기의 주술사를 만나자

4월6~18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

엘리아 카잔(1909~2003)에 대한 언급 가운데 아마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연기 스타일을 스크린에 도입한 영화감독이라는 평가일 것이다. 배우가 극중 인물에 몰입할 것을 요구하는 메소드 연기를 중심 원리로 삼아 배우들로부터 뛰어난 연기를 끌어낸 그와 함께 본격적인 리얼리즘 연기가 미국 영화사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카잔이 영화 카메라를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기록’의 도구로 간주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카메라는 오히려 현미경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의 외양 너머로 더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카잔의 영화 속에 포착된 인물들은 내면에서 타오르는 어떤 ‘불꽃’을 보여주었다. 대개 그들은 그 원인이 내적인 불안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사회적 억압에 의한 것이든 여하튼 고뇌에 찬 이들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나 <워터프론트>(1954)가 예증하듯, 그런 인물들을 그린 카잔의 영화들은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면을 갖추면서 당대 영화의 한계를 넓히는 것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마틴 스코세지 같은 이는 카잔을 두고 이후의 우상파괴주의자들을 위한 길을 닦아놓은 영화감독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한다. 4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은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이 대가의 작품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자리이다.

상영작 가운데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카잔의 대표작인 <워터프론트>이다. 영화는 폭력과 배신이 난무하는 뉴욕의 한 부두를 배경으로 조합을 지배하는 불량배들 밑에서 일하던 테리 말로이의 도덕적 각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탄탄하게 짜여 있는 극적 구조 안에서 앙상블 메소드 연기가 빛을 발하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단호한 시선마저 돋보인다는 점에서 <워터프론트>는 빼어난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에 동의하는 많은 평자들도 한낱 ‘밀고자’가 고통 받는 그리스도와 같은 인물로 격상되는 후반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누군가는 극적 논리의 허술함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파시스트적 구실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사실 많은 이들은 후반부에서 테리의 울부짖음은 카잔 자신의 외침이라고 보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영화를 만들기 전 카잔이 반미활동위원회의 청문회에 참석해 공산주의에 동조한 동료들의 이름을 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워터프론트>는 ‘밀고자’ 카잔 자신에 대한 영화적 변명처럼 들린다(시나리오를 쓴 버드 슐버그 역시 카잔과 같은 행동을 한 인물이었다). 여하튼 카잔의 이런 전력은 그의 경력 내내 따라다녔고, 특히 1999년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할 때 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 ‘우호적’ 증언의 행위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카잔은 오히려 그 일 이후에 좀 더 뛰어나게 된 유일한 영화감독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영화가 만들어진 당시의 사정을 무시하고 영화를 보면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테리는 빼어나게 그려진 반항아로 보일 수도 있다. <에덴의 동쪽>(1955)은 또 다른 스크린의 반항아 제임스 딘의 존재가 그야말로 불타오르는 영화이다. 현대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그는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이를 특유의 무너질 듯 과민한 모습 안에 담아 당대 젊은이들에게 거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한편으로 <에덴의 동쪽>은 와이드 스크린 화면 안에다가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표현하려는 카잔의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이 영화를 카잔의 최고작으로 꼽은 바 있다. 그 자리를 조너던 로젠봄은 <대하를 삼키는 여인>(1960)에 넘겨줬다. 영화는 댐이 건설되면 침수될 지역에 남아 있길 원하는 완고한 부인에게 땅을 팔라고 설득하러 온 정부 관계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제 전통과 발전, 완고한 개인주의와 공공을 위한 선(善), 낭만주의와 실용주의 사이에 전선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카잔은 어느 한편에 편향된 시선을 주지 않는 사려 깊음을 보여준다. 물론 미묘하게 그려진 러브 스토리도 주목을 요한다. ‘엘리아 카잔 특별전’에서는 언급한 작품들 외에 <신사협정>(1947), <거리의 공황>(1950),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초원의 빛>(1961) 같은 영화들이 카잔의 세계를 조망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홍성남_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