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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포르투갈어권 영화제

[리뷰]지배의 공허한 영광 - <센트로 히스토리코>

[리뷰] 지배의 공허한 영광

-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빅토르 에리세, 아키 카우리스마키, 페드로 코스타의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




포르투갈의 북서부에 자리한 구시가지 기마랑이스 지구는 포르투갈의 발상지라 불리는 최초의 수도이다. 2012년, EU는 이 지구를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했고 1년간 집중적으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센트로 히스토리코>(2012)는 이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제작됐다. 감독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러했다.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된 후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 거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따라 유럽의 영화계를 대표한 네 명의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 북유럽 핀란드 출신이면서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스페인의 빅토르 에리세, 그리고 포르투갈을 대표해 페드로 코스타,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가 참여했다.


카우리스마키의 <식당 주인>은 기마랑이스 거리의 한 식당 주인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언제나 그러하듯 카우리스마키는 과묵하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그린다. 언뜻 <어둠은 걷히고>의 식당이 떠오르는데, 그 영화에서는 비즈니스의 정글의 법칙에서도 오래된 고객과 가게의 일원들 간의 연대감이 돋보였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관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관계는 절연됐고 정서적 차가움이 더하다. 그의 가게에는 종일 손님의 발길이 드물다. 가게를 닫고 저녁에 댄스클럽에서 춤을 함께했던 여인에게 그는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그녀가 기혼임을 알게 되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카네이션이 거리에 버려진다. 라디오로 들리는 소리들은 2012년 EU의 전례가 없는 헝가리에 대한 경제 제제조치의 내용들이다. EU는 당시 재정적 감축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었다. 간혹 축구경기의 중계방송 소리도 들려온다. 이 고독한 정서에 다른 기운을 불러오는 것은 파두의 노래다. 블루의 컬러 또한 여전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 남자는 그럼에도 길거리의 고양이를 위해 문 앞에 우유접시를 놓는다. 이 단순한 행동이 묵묵히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물론 그가 낮에 식당에서 준비한 어부를 위한 스프에 사람들의 발길이 없었던 것처럼 고양이 또한 등장하지는 않는다. 남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이다. 이 막연한 기다림이 마음을 울린다.





빅토르 에리세의 <깨어진 창문>은 기마랑이스에서 조금 떨어진 방치된 옛 방직 공장을 무대로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영화다. 일찍이 이 공장에 근무했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명씩 옛 공장의 식당을 배경으로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1845년에 창업한 이 공장은 1990년에 경영위기로 2002년에 문을 닫았다.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자 고된 노동의 괴로운 경험들이다. 14세에 일을 시작했던 한 여성은 기계의 소음 때문에 고막 이식 수술을 했는데, 이제 56세라며 인생이 끝났다고 토로한다. 영화 마지막에 한 남자가 아버지의 일을 회상하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그 곡에 맞추어 식당 벽에 걸린 거대한 크기의 사진에 보이는 무수한 익명의 사람들의 얼굴이 화면을 장식한다. ‘포르투갈에서의 영화를 위한 테스트’라는 작은 제목이 영화의 시작 부분에 나오지만 평범할 수도 있는 장면이 말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불어오는 이 작품을 에리세의 가벼운 습작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정복된 정복자>는 기마랑이스 지구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담은 가장 짧은 단편이다. 기마랑이스 지구의 거리와 광장, 엔리케스 아퐁수의 동상과 그곳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전체를 이룬다. 정복자의 동상을 올려다보는 쇼트에 모든 관광객들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모습을 대조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페드로 코스타의 <스위트 엑소시스트>는 그 자체만으로는 기마랑이스 지구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영화다. 그는 기마랑이스라는 주제로 얼마나 기마랑이스라는 특정한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포르투갈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험한 듯하다. 코스타는 대신 1974년 포르투갈의 독재정권에 대항해 젊은 장교들이 궐기한 카네이션 혁명에 대해 말한다. 식민지 카보베르데의 이민자 출신인 벤투라가 이번에도 주인공이다. 그는 이 쿠테타에 참가했다 숲속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 입원한다. 병원의 엘리베이터에서 그는 청동의 페인트로 칠한 (사람인지 역사의 유령인지, 혹은 기념비적인 조각인지 모를)병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해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던 코스타는 74년의 카네이션 혁명의 체험이 벤투라와 같은 이민자들에게는 아프리카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고 말했었다. 혁명에의 체험이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역사적 순간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감정, 역사, 특별히 제목처럼 공포의 체험을 전한다. 영화의 제목 ‘스위트 엑소시스트’는 1974년에 발매된 커티스 메이필드의 앨범에서 따온 것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