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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잭이 현실을 견디는 방법 -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사의 추적>

[리뷰] 잭이 현실을 견디는 방법 - 브라이언 드 팔마의 <필사의 추적>





<필사의 추적>의 악명 높은 마지막 장면은 브라이언 드 팔마의 남자 주인공이 죄의식으로 인해 어떻게 부서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견디는지 잘 보여준다. 과거 경찰과 함께 일했던 잭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같은 편을 죽음에 몰아넣은 적이 있다. 그는 이때의 죄의식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샐리가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때 잭이 죄의식을 방어하기 위해 택한 첫 번째 방법은 ‘삼류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시시한 장르 영화를 “2년에 5편씩” 만드는 것은 단순한 현실 도피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잭의 경우에는 그 현실 도피를 통해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일종의 ‘재능 낭비’를 통해 스스로를 괴롭히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나름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물론 샐리를 구하는 것과 대통령 후보 암살 뒤에 놓인 음모를 밝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씻겠다는 것인데, 잭이 우연히 마주친 사건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몰입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다. 잭은 음모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샐리의 죽음을 무력하게 ‘듣고’ 지켜보아야 했다. 그때 잭이 들은 비명은 계속해서 잭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죄의식은 과연 어떻게 방어할 수 있을까. 드 팔마는 자살하거나 폐인이 된 잭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죽음을 죽음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현실을 견디는 잭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죽음의 비명을 영화 속 가짜 죽음에 사용한 것에 대해 윤리적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드 팔마는 여기에 별 관심이 없다. 대신 그는 잭이 어떻게 죄책감을 감당하고 현실을 버티는지 보여주려 한다. 즉 그는 사운드만 분리한 죽음의 기호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죽음과의 직면을 교묘히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 후에도 여전히 불편함과 꺼림칙함이 남는 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어떤 욕망 때문일 것이다. 즉 여기엔 잭이 죄의식을 방어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죽음에 대한 욕망을 반복적으로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의심이 남아 있다. 물론 드 팔마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죄의식과 그로 인한 주체의 분열은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이며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타인의 비명뿐이라는 암울하고 냉정한 현실 직시다. 이제 잭은 죽음을 회피하려고 하든 죽음을 향한 욕망을 쫓으려고 하든 샐리의 비명 없이는 현실을 견딜 수 없다. 이보다 더 끔찍한 현실 진단이 있을까.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