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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또 하나의 약속>,<탐욕의 제국> 특별상영

[리뷰]무기력 뒤에도 이어지는 삶 -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이 이야기하는 것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특별 상영]



 


 


무기력 뒤에도 이어지는 삶

-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이 이야기하는 것



삼성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를 다룬 두 편의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에서 가장 지배적인 정서는 무기력이다. 그리고 이 무기력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안타깝고 어처구니가 없고, 그래서 화가 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분노하지만 이내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 그리고 이때부터 영화를 보는 것이 불편해진다. 스크린 속의 사건들이 실제 사건임을, 그리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다. 다시 말해 저들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또는 해야 할까)를 계속 묻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두 편의 영화이다.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을 본다는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하나뿐인 딸을 백혈병으로 떠나 보낸 아버지 한상구는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싸우지만 그 인정을 받기가 너무나 어렵다. ‘진성 반도체’는 조직적으로 증거를 없애는 한편 거액의 돈으로 회유를 시도하고, 함께 싸우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소송을 포기한다. 믿었던 증인은 대놓고 위증을 하며 가족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여기에 내가 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까지 그를 괴롭힌다.




이 모든 부조리한 사건들 속에서 한상구는 그저 당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마지막에 이르러 겨우 산재 인정을 받지만 근로복지공단과 진성 반도체는 곧바로 항소를 준비한다. 승리했지만 완전히 승리한 건 아니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화는 엔딩 장면에서 성급한 카타르시스를 끌어내는 대신 혼자 조용히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배어 나오는 정서는 여러가지이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무기력이다. 단어의 뜻 그대로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발걸음이 무겁다면 그건 영화 속 인물들이 느꼈던 감정을 함께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탐욕의 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또 하나의 약속>이 극화라는 필터를 통해 현실을 한 번 거른 다음 관객에게 보여준다면 <탐욕의 제국>은 최대한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 큰 무기력을 느끼게 한다. 이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악역을 연기한 배우 김영재가 아무리 비열한 웃음을 지어도 <탐욕의 제국> 속 보안 요원이 짓는 무표정만큼 무섭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근로복지공단을 찾은 노동자들은 엘리베이터조차 못 탄 채 계단에서 소리쳐야 하고, 영구차마저 삼성 본사 앞에서는 핸들을 꺾어야 한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노동자는 다음 숏에서 영정 속에 등장한다. 극영화로는 감히 도달하기 힘든 이런 순간의 장면들은 현실의 냉정한 벽을 느끼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했었고 지금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는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자리에서 삼성전자 부사장인 최우수 씨에게 개인적으로 말을 걸 기회를 얻는다. 한혜경 씨는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카메라는 한혜경 씨의 뒤에서 최우수 씨의 표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대답은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냥 자신이 할 일을 한다. 물을 마시고 안경을 만지고 서류를 보면서 자기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한혜경 씨가 문자 그대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약 2분간 이어지는 이 장면은 지금 노동자들의 입장이 어떠한지, 그리고 삼성전자의 입장이 어떠한지 무서울 정도로 잘 보여준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며 이 장면이 더 무섭다고 느낀 건 단지 최우수 씨의 반응 때문이 아니었다. 최우수 씨가 아무 것도 못 본 척하는 ‘연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자리에서 한혜경 씨의 존재를 가장 의식하고 있었다면, 최우수 씨의 뒤에 약 2m 정도 떨어져 앉은 사람들은 반대로 한혜경 씨를 어떤 ‘구경거리’처럼 쳐다본다. 그러니 지금 이 방 안에는 두 가지의 현실이 공존하는 것인데, 즉 한혜경 씨를 모른 척하고 싶어 하는 최우수 씨의 현실과 미소까지 지어가며 한혜경 씨를 멀리서 지켜보는 구경꾼들의 현실이 있다. 그리고 이 두 현실은 모두 관객에게 끔찍할 정도로 처참한 기분을 안겨준다. 누군가의 제지에 의해 이 숏이 끝나는 순간 남는 것은 약간의 분노도 남기지 않는, 지독한 무기력이다. 정말 힘들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들은 모른 척하고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기껏 휠체어가 지나갈 때 다리를 살짝 들어줄 뿐이다.



현실이 이러니 무기력 가운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있을 리 없다. <또 하나의 약속>은 딸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가족의 뒷모습에서 영화를 끝냈고, <탐욕의 제국>은 아플 정도로 잔인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두운 현실과 싸워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약간의 카타르시스조차 이 영화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러니 만약 어떤 관객이 이 영화에서 삼성과 싸워 이길 방법을 찾으려 한다면, 또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행동 지침을 얻고자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이 영화들의 목표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 두 영화는 무기력을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현실을 최대한 적나라하게 보여준 뒤 담담한 어조로 그 뒤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약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영화가 끝난 후 등장하는 자막이다. 지금까지 백혈병 등 희귀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가 200명이 넘으며 그중 80명이 사망했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 말이다. 영화는 한윤미 한 사람의 이야기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준 뒤 이런 사람들이 200명 더 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당신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탐욕의 제국>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한혜경 씨와 최우수 씨의 장면이 끝난 뒤 영화는 갑자기 무대를 옮겨 한 고등학교의 졸업식장으로 간다. 별 나레이션도 없이 졸업을 앞두고 잔뜩 신이 난 아이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보여주는 것인데, 이상하게 이 장면이 앞에 등장했던 다른 장면들만큼이나 슬프고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냉혹한 현실을 85분 동안 보여준 뒤 앞으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이 단순한 장면은 오히려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로 보인다. 무기력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그 뒤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인데, 이는 꺾이지 않는 의지로 다시 일어나 계속 싸우자는 힘찬 주장과는 또 다르다. 즉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이 현실 속에서 불행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는 진단. 어쩌면 이는 냉정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섣불리 모범 답안을 주는 대신 무기력 뒤에도 어떻게든 계속될 삶을 환기시키는 이 냉정함이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을 계속 생각하게 한다.




김보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