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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단순한 영화의 단단한 힘 - 스티븐 소더버그의 <사이드 이펙트>

단순한 영화의 단단한 힘

- 스티븐 소더버그의 <사이드 이펙트>



스티븐 소더버그는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흥미로운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내는 감독이다. 그는 과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채 롱숏과 미디엄숏을 차분하게 쌓아나가며 거기에 클로즈업을 더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그는 삼각대나 스테디캠 등을 이용해 안정적인 촬영을 선보이며 무리한 핸드헬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댄서들의 화려한 무대가 등장하는 <매직 마이크>에서도 카메라는 관객에게 춤을 온전히 보여주려 했고, 심지어 액션영화인 <헤이와이어>에서도 카메라는 싸우는 사람들에게서 적당히 떨어진 채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는 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숏들은 독자적인 운동을 펼치기보다는 드라마의 전개에 충실하게 복무하기 때문에 영화의 리듬은 메트로놈을 켠 것처럼 일관적으로 지켜진다. 너무 빨라지거나 너무 느려지지도 않는 것이다.


또한 그의 배우들 역시 ‘엄청난’ 메소드 연기를 펼치지 않는다.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실제 인물을 훌륭한 연기로 그려냈던 마이클 더글라스조차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소더버그의 영화는 스타일적 측면에서는 ‘작가적’ 특징이 없고 감정적으로는 크게 몰입이 되지 않는 심심한 드라마로 보이기 쉽다. 최근 어느 때보다 왕성했던 그의 활동(2008년 <체> 이후로 지금까지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11편의 장편을 연출했다)에도 불구하고 소더버그가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요즘처럼 과도한 영화적 스타일이 넘쳐나고 그에 따른 눈속임의 순간과 거짓 감정이 관객들을 피곤하게 할 때 소더버그의 영화가 가진 미덕은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의 영화에는 지금 보고 있는 장면, 그리고 그것이 지금 전달하는 이야기만을 온전히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는 억지로 감정을 고양시키지 않으며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지도 않는다. 대신 단순한 미장센 속에 정직하게 담긴 배우들의 몸짓, 표정, 대사가 가진 힘을 믿고 그 가능성을 최대한 키우는 쪽을 택한다.




특히 두 인물이 대화할 때 소더버그처럼 ‘오버 더 숄더 숏’을 자주, 그리고 잘 활용하는 감독은 드물다. 악의든 선의든 두 인물의 진심이 부딪치는 것을 단순하게(그러나 엄격하게) 나눈 두 개의 숏을 통해 정면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더버그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은 이와 같은 몇 개의 소박한 숏으로 이루어진 대화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조그만 방에서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며 사랑을 확인하던 <매직 마이크>의 마지막 장면이나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변호사들 사이에 앉은 과거의 연인이 서로 시선을 주고 받는 장면은 그 좋은 예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더버그의 <사이드 이펙트>는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기와 살인, 치정과 약물 중독 등 각종 선정적인 소재를 몇 차례의 반전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는데, 이 자극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소더버그는 앞서 설명한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 둘의 조합이 독특한 결과를 만든다.


이 영화는 한 여인의 반복된 거짓말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연속적인 범죄를 다루며 이야기와 분위기에서 계속 변화를 겪는다. 가여운 여인의 사연에서부터 시작해 멜로 드라마, 오싹한 심리극, 범죄물, 그리고 마지막의 냉정한 복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수차례 바꿔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르적 시도도 인상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소더버그가 그 변화의 지점들을 특별하고 화려한 영화적 장치 없이, 즉 앞서 말했던 단순한 숏들의 단순한 편집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하나의 숏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면 그 다음 숏은 다시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 다른 이야기를 말한다. 그리고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이 연쇄를 통해 영화는 변화무쌍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며 목적지를 향해 일정한 속도로 걸어간다.


<사이드 이펙트>의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러한 연출 방식이다. 소더버그는 이 영화에서 최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혼성을 유희하며 그 불협화음을 전시하는 것과 정반대의 전략을 취한다. 그는 다른 성격의 이야기가 만드는 충돌을 보여주기보다는 이제껏 해온 자신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하나하나 숏을 쌓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소더버그의 방식이 무조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사이드 이펙트>의 소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연출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화려한 연출로 만들어낸 강렬한 에너지를 통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힘을 얻는 게 아니라 잘 짜여진 하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호흡으로 따라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연출, 스티븐 소더버그의 <사이드 이펙트>는 그 단단한 힘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김보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



사이드 이펙트 Side Effects

2013│106min│미국│Color│DCP│청소년 관람불가

연출│스티븐 소더버그 Steven Soderbergh

출연│주드 로,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상영일ㅣ 3. 15(토) 13:00 / 3. 20(목) 19:40 / 4. 1(화)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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