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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프랑수아 트뤼포의 '미시시피의 인어'

트뤼포의 낭만적인 범죄물

 

평론가 시절부터 헐리우드 장르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프랑수아 트뤼포는 감독으로 데뷔한 후에도 몇 편의 장르 영화, 정확하게는 범죄물을 만들었다. 고전기 헐리우드 필름누아르에 대한 재해석을 보인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나 트뤼포가 히치콕에게 받은 영향이 잘 드러난 <비련의 신부>(1968), 그의 마지막 영화인 <신나는 일요일>(1983) 등은 트뤼포가 범죄영화에 갖고 있는 관심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미시시피의 인어>(1969) 역시 범죄물의 필수요소를 고루 갖춘 트뤼포의 장르 영화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금발의 여인, 도망자를 쫓는 추적자, 비밀스러운 침입과 우발적인 살인,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어두운 과거. 여기에 <건 크레이지>(조셉 루이스, 1950)의 오마주 장면까지 나오니 이 정도면 이 영화를 범죄물로 분류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의외로 범죄물이라기보다는 두 연인의 치명적인 사랑이야기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장르적 요소들은 이야기의 기본 뼈대를 구성할 뿐 극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대신 그 사이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의 갈등과 사랑이 극의 중심에 놓여있다. 만약 사전 정보 없이 <미시시피의 인어>를 본다면 얼마 동안은 이 영화를 단순한 연애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사건은 너무 늦게 일어나며, 남녀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이런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 트뤼포의 개인적인 삶을 끌어들이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다. 실제로 트뤼포는 과거 연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영화 속 마리온의 사연으로 가져다 쓰기도 했으며, 쫓기는 와중에도 극장에서 데이트를 하며 <쟈니 기타>에 대한 비평적 견해를 주고받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트뤼포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영화를 찍기 전부터 까트린 드뇌브의 캐스팅을 주장했던(제작사는 브리짓 바르도를 캐스팅하려 했다고 한다) 트뤼포가 영화를 찍으며 그녀와 실제 연인으로 발전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트뤼포는 어쩌면 냉혹한 범죄물 보다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영화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무래도 영화의 전체적인 리듬이나 장르적 긴장감은 헐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점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트뤼포의 특징을 선명하게 부각시켜준다. 트뤼포는 무슨 영화를 만들던 언제나 자신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으며, 심각한 범죄물에서조차 운명적인 사랑과 이로 인해 망가지는 남자 -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만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엔딩씬이 주는 무드는 각별하다. 해피엔딩도, 배드엔딩도 아닌 이 결말에는 단지 사랑에 대한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 지금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처한 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눈앞에 있는 상대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의 약간의 구멍들에도 불구하고 그 불완전함마저 낭만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