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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프랑수아 트뤼포의 '녹색 방'

트뤼포식 레퀴엠

 

프랑수아 트뤼포의 후기 대표작 <녹색 방>이 만들어지기 한해 전인 1977년, 그에게 아버지와 같았던 앙리 랑글루아와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사망했다. 충격에 빠진 트뤼포는 죽은 이들과 계속 함께 하는 삶을 꿈꿨다. 그것이 그를 한때 심취했던 헨리 제임스의 세계로 이끌었을 것이다. 원작 <사자(死者)의 성단>의 각색을 그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였던 장 그뤼오에게 맡기며 그는 배경을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의 프랑스로 옮기기로 했다. 그리고 일본 문학에서 사자 숭배와 관련된 참고 문헌을 찾고 성직자들에게 종교적 장면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인간의 죽음,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트뤼포는 이 영화에서 그 답을 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의 출발지는 무덤이다. 극장에 불이 꺼지면 제1차 세계대전의 뉴스릴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 줄리엥 다벤을 직접 연기한 프랑수아 트뤼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10년 후의 그는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를 위로하고 있다. 자신이 보살피고 있는 농아 조르주에게는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다음날 자신이 부고 담당기자로 있는 글로브지의 사망한 구독자들로부터 반송돼온 잡지들을 보면서는 이상한 열정을 드러낸다. 그렇다. 이 수많은 죽음은 다벤에게 끝없는 절망이 아닌 비범한 열정을 유발한다. 혹은 그 둘을 같은 것으로 만든다. 오래전에 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는 그녀를 잊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라 생각하며, 사자들에 대한 기억으로 그들과 자신의 삶을 방부하는 데 혼신을 다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무겁게 내려앉은 이 영화는 그러나 섣불리 그 그늘에 잠기지 않는다. 다벤이 세실리아 망델을 만나면서 죽음은 조심스레 사랑과 몸을 섞기 시작한다. 오로지 죽은 자의 사랑받을 권리만 주장하는 그에게 그녀는 산 자도 사랑받을 권리가 있음을 일깨운다. 그러나 깨달음은 요원하다. 다벤은 사자들을 영원히 살게 할 기억의 성소를 짓는 일에 몰두하지만, 그곳에 밝힌 촛불이 실은 산 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 무지가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또 마지막 장면을 경이롭게 한다. 앎을 넘어서는 구원의 순간이 숏과 숏 사이에 섬광처럼 다녀간 후 비로소 두 연인은 서로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줄 수 있게 된다. 혹은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영화에 성직자로 출연하기도 한 연출가 앙투안 비테즈를 감동시킨 것도 바로 그 선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는 <녹색 방>을 본 뒤 트뤼포에게 그 “제가 그 깊은 곳에서 본 것은 바로 선한 마음입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주변의 평가와 달리 상업적으로 이 영화는 트뤼포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트뤼포의 사후에 <녹색 방>은 종종 그의 영화적 유언처럼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영화 속에서 그가 맞이하는 결말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고별사 혹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예배당이다. 실제로 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예배당에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사진을 모시기도 했다. 고독하고 불안했으나 선한 바탕을 잃지 않았던 트뤼포는 죽어서도 그들 곁에 머물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후경 /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