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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코스타 가브라스의 '낙원은 서쪽이다 Eden is West'


1956년, 23살의 젊은 영화청년 코스타 가브라스가 프랑스의 리용 역에 도착했다. 암울한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고국 그리스를 벗어나 유학길에 오른 길이었다. 그가 처음 대면한 프랑스의 풍경은 온몸을 휘감고 도는 한기와 부슬비, 안개 너머로 보이는 회색빛 건물들의 음침한 모습들이었다. 이방인에게 비친 이 낯선 타지의 풍경에 대해 코스타 가브라스는 “내 삶의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것은 갑자기 전혀 소통할 수 없는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남자의 불안과 고독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50여년의 시간을 지나 일련의 작품들(<제트>(1969) <실종>(1982) <뮤직박스>(1989))을 통해 세계적인 시네아스트로서의 명성을 얻은 지금까지도, 마치 하나의 트라우마처럼 강렬하게 남아있다. <낙원은 서쪽이다>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최근 사르코지 행정부의 폭력적 이민자 정책과 불법체류의 문제들, 신자유주의의 체계적 억업들, 그리고 가브라스가 경험했던 타자의 불안과 절망에 대한 기억들.

영화는 20대 청년 엘리야스(리카르도 스카마르치오)가 불법 이민선을 타고 프랑스로 밀항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선박이 프랑스 해안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경비선에 발각되고, 위급해진 엘리야스는 무조건 바다로 투신한다. 그리고 다음날, 천운으로 살아남은 그는 프랑스 해안가에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부르주아들의 요새와도 같은 고급 리조트 ‘에덴 클럽’. 이 아이러니컬한 이름의 해안 리조트 사이로 바다 저편에선 이민자들의 생사를 건 탈출이 지옥도처럼 펼쳐지고, 동시에 보안경비대의 철옹성 같은 철책 보호 속에서 부르주아의 나른하고 권태로운 향락이 펼쳐진다. 언어조차 통하지 않은 이곳에서 엘리야스는 최대한 자신의 신분을 숨기며 리조트를 빠져나가 파리로 가야한다. 그러나 불법이민자에게 이 요새는 들어오기도, 그리고 탈출하기도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벗어나기만 하면 순탄할 것 같았던 리조트 밖에서 벌어진다. 여기저기서 이민자들을 감시하는 경찰들, 그들의 약점을 잡아 돈과 노동들 갈취하는 자들, 젊은 남자의 육체를 현혹하는 여인들. 여정들 사이에 때로는 연민과 도움의 손길이 존재하지만 그것으로 희망을 말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이민자들에게 서유럽 사회는 폭력적이고 냉혹하다.



코스타 가브라스는 <낙원은 서쪽이다>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그려낸다. 제국주의적 지배와 학살, 정치적 파시즘과 우파적 폭력 등의 문제에 대해 진중하고도 논쟁적인 정치 드라마를 그려냈던 그가 이 영화에서는 현실과 판타지라는 경계 속으로 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많은 이민자들이 낙원이라는 희망을 품고 탈주하는 서유럽국가의 냉혹한 현실은 엘리야스가 겪게 되는 고난의 로드무비 형식을 통해 가감없이 그려진다. 고풍스런 문화유산들로 채워진 서유럽의 아름다운 도시풍경과 예술적 풍취, 풍요로운 음식들은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길을 묻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파리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들, 호시탐탐 그들을 감시하는 경찰들의 검문들. 이러한 풍경은 이미 켄 로치의 <자유로운 세계>(2007)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영화 속에서 절망적으로 체험했던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브라스는 <에덴은 서쪽이다>에서 켄 로치적인 현실로부터 일정한 ‘영화적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판타지이자, 희망에 관한 부분이다. 잘생긴 미남자 엘리야스는 비록 불법 이민자이지만 그의 육체성으로 인해 여성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정치적 논쟁보다는 판타지로 안주한다는 혐의는, 이 절망적 현실에 대해 가브라스 감독이 희극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비약하자면 마치 시골의 윌로씨가 파리의 번잡한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자크 타티의 희극처럼,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이 낯선 도시의 이방인 엘리야스의 처절한 이민기는 관객에게 일정부분 희극적 상황극으로 각색된다. 바로 이 점으로 인해 <낙원은 서쪽이다>는 켄 로치의 <자유로운 세계>처럼 관객을 압도하는 암울하고 냉혹한 현실에 대한 공포를 상기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희망과 판타지, 현실과 영화 그 경계 속에서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엘리야스가 손에 넣게 된 마술 봉이 정말로 에펠탑에 불을 밝혔는지, 도시의 차들과 사람들을 멈추게 했는지, 그가 속한 곳이 영화 촬영장인지 냉혹한 현실적 도시 파리인지 모호하게 말이다. 비극을 희극으로 치환하는 유머는 이미 <엑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6)에서도 드러났지만, 이 영화 <낙원은 서쪽이다>는 그것보다 좀 더 가볍게 나아간다. 70년대식의 진중함은 사라졌지만, 현실을 영화적 기법으로 각색하는 노장의 솜씨는 여전히 발군이다.

글/ 정지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