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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6 가을날의 재회 + 자비에 돌란 특별전

[리뷰] 질주의 이미지에 맞서는 어떤 작고 사소한 동력 - <벨빌의 세 쌍둥이>

질주의 이미지에 맞서는 어떤 작고 사소한 동력

- <벨빌의 세 쌍둥이>(실뱅 쇼메, 2003)





 과장된 인상의 캐릭터와 배경보다 어떤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2003년에 발표된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잔상은 사이클 선수로 성장한 손자 ‘챔피온’이 할머니 ‘수자’와 함께하는 힘겨운 훈련과 무기력한 표정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자전거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챔피온의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사이클만을 위해 훈련하고 먹고 자는 그에게서 감정의 동요를 발견할 수 없었다. 훈련을 마친 뒤 수자 없이는 혼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챔피온을 둘러싼 무력한 분위기가 이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거의 13년 만에 다시 본 <벨빌의 세 쌍둥이>는 무력한 분위기로 단정할 수 없는 활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짧게나마 그 운율을 고찰하고자 한다.



자전거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 어린 챔피온이 정신없이 자전거를 모는 장면에 이어 사이클 선수가 된 그가 수자와 함께 고된 훈련에 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아니, 훈련이 고되다기보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챔피온의 퀭한 눈가와 초점 없는 시선이 훈련의 강도를 무겁고 느린 속도로 인지하게끔 만든다. 챔피온이 키우는 개, 브루노는 집에서 시종일관 불안한 표정으로 시계를 바라본다. 브루노는 15분마다 위층 창문에서 맹렬한 속도로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짖어댄다. 시간이 무겁게 흐르는 것 같은 집안에서 브루노가 유일하게 격렬한 반응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처럼 <벨빌의 세 쌍둥이>에선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정적과 질주의 이미지가 교차하곤 한다.



정적과 질주의 이미지가 교차, 대비될 수 있는 이유는 극 중 인물들이 항상 어디론가 이동하기 때문이다. 수자는 손자가 마피아에게 납치되자 벨빌을 향해 험난한 여정을 감수한다. 세 쌍둥이 자매의 도움을 받아 챔피온을 구출하면서 벌어지는 마피아와의 추격전에 이르기까지 수자를 중심으로 극 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전진한다. 사이클 대회의 경주, 15분마다 지나가는 기차, 마피아의 추격이 수반하는 질주의 이미지는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되레 간헐적으로 맞닥뜨리는, 인물이 멈춰서는 순간을 강조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벨빌에 도착한 무일푼의 수자가 세 쌍둥이 자매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끼니를 해결할 돈도 없이 다리 밑에서 밤을 보내는 수자를 향해 세 쌍둥이가 접근한다. 여기서 인물이 멈춰 있는 동안 앞으로 이동하는 힘이 다른 동력으로 전환되는 점이 눈에 띈다. 과거 인기 가수였던 세 쌍둥이 자매는 수자의 즉흥 연주에 맞춰 그들의 히트곡이었던 “벨빌 랑데부”를 부른다. 그들의 과거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더 커진 몸집과 안무가 화면을 가득 차지한다. 명성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세 쌍둥이의 흥과 웃음은 끊이지 않는다. 그들의 주식인 개구리를 구하기 위해 고안한 폭탄 역시 할머니가 된 세 쌍둥이가 지닌 동력 중 하나다. 위 영화를 되돌아 봤을 때, 가장 정적인 장면으로 기억하는 챔피온의 식사 장면 역시 저울을 연결해 겨우 움직이는 시계와 폐자전거를 개조한 턴테이블의 작동으로부터 동력을 얻었다.



나른하게까지 느껴지는 정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반에 드리워져 있지만 결코 무기력하다고 할 수 없다. 압도적인 질주의 이미지는 영화의 흐름을 환기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인물이 멈춰있는 순간에 발생하는 작거나 사소한 동력과 대비되곤 한다. 챔피온과 쌍둥이 자매가 이끄는 자전거 경주 세트가 마피아의 차량을 모두 제치는 장면에서 돋보이는 요소는 손수 방향을 전환하는 쌍둥이 자매의 손과 수자의 구두굽이다. 그 밖에 마피아의 차량들은 너무 크거나 빨리 달렸기에 화를 당했다. <벨빌의 세 쌍둥이>는 이 작고 사소해 보이는 동력을 주목하고 예찬한다. 지나간 명성을 개의치 않는 현재의 즐거움과 가난까지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시선은 작은 동력이 갖는 힘을 배가하는 데 기여한다.



권세미 l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