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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가을날의 재회

[리뷰] 진저는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 샐리 포터의 <진저 앤 로사>

[리뷰] 진저는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 샐리 포터의 <진저 앤 로사>



올해 17살인 진저(엘르 패닝)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어른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녀는 정치, 특히 핵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여러 정치 모임에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주위 어른들에게 전해주며 쑥스럽지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른들이 자신을 어른처럼 대해주는 것이 기쁜 것이다. 그녀는 갈수록 이런저런 모임에 더 열심히 나가고, 더욱 더 진지하게 세계가 처한 위기를 걱정한다. 이를 통해 어른들의 인정을 받으며 자신이 이제 아이가 아님을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그런 진저가 가장 좋아하는 어른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다. 진저는 뛰어난 정치 이론가이자 예술가적 기질까지 갖춘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한다. 그런데 감독은 흥미롭게도, 아버지를 향한 진저의 동경을 조금 ‘위험하게’ 그린다. 어린 소녀가 나이 든 남자에게 애정을 느끼듯 부녀 관계를 묘사한 것이다. 진저는 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침대에 함께 있는 장면을 보며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진저의 마음을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겹쳐 묘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저의 캐릭터에 이상한 역설이 발생한다. 그녀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어른의 모습을 아버지에게서 찾은 뒤 아버지와의 상상계적 일치를 통해 만족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진저가 수줍어하며 아버지와 침대에 나란히 앉은 뒤 곰인형 두 개를 침대에 눕히는 장면은 그녀의 이런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때 진저가 아버지와 함께 그 침대에 들어갔다면 <진저 앤 로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바뀌었을 것이다(이를테면 금기에 대한 멜로드라마). 하지만 감독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로사(앨리스 엔글레르트)를 불러온다. 이 영화에서 로사는 진저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행동을 하는 노골적인 진저의 분신 double으로 그려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로사는 진저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즉 아버지와 섹스를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로사는 진저가 걷고 싶었던, 그리고 걷을 수도 있었던 길을 대신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이 영화의 비판 지점이기도 하다. 감독은 로사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도구적으로 그렸다). 로사는 진저의 아버지와 진지한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안 진저는 지독한 혼란을 겪는다. 이를 거창하게 상징계로의 진입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상투적인 말로 ‘성장통’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저는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이 ‘성장 드라마’의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안도해도 괜찮은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진저는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다. 이때 아버지는 진저에게 사과를 하고 진저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자리에 없는 로사에게 “용서한다”는 편지를 쓴다. 답변의 대상이 이상하게 바뀐 셈이다. 그리고 영화는 서서히 어두워지며 끝난다. 이때 이 장면에서 감정의 매끄러운 마무리 대신 어떤 불길함이 느껴지는 건 진저와 로사의 이상한 분신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진저-로사-아버지가 그리는 삼각형이 (뒤틀리긴 했지만) 비로소 완성됐다는 느낌까지 준다. 다시 말해 진저는 아버지를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로사를 경유해 좀 더 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진저는 이제 어른이 된 것일까. 영화가 다음 이야기를 전해주지 않는 쪽을 택했기 때문에 그 정답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저의 진짜 성장통은 지금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