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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앙투안 드와넬 5부작

중요한 건 사랑이야

 

* 프랑수아 트뤼포가 1971년에 남긴 앙투안 드와넬 연작에 관한 노트 <앙투안 드와넬은 누구인가?>를 바탕으로 쓴 글임을 밝힌다.

 

‘앙투안 드와넬 연작’은 애초에 한 편으로 예정되었으나 우연한 기회에 20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된 다섯 편의 영화 - <400번의 구타>, <앙투안과 콜레트>, <도둑맞은 키스>, <부부의 거처>, <사랑의 도피> - 를 말한다. ‘앙투안 드와넬 연작’은 낭만적이면서 고전적인 남자의 이야기다(트뤼포는 앙투안이 19세기 식의 젊은이라고 생각했다). 앙투안은 소년 시절에 이미 발자크를 비롯한 고전문학에 매혹되었고 삶의 매순간마다 일기와 편지를 쓴다. 그가 장차 쓰게 되는 소설은 일기와 편지의 확장에 다름 아니다. 인터넷과 핸드폰의 시대라면 앙투안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앙투안 드와넬 연작’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성장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앙투안은 어른과 사회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기에 계속 공간을 이동하고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그의 인간관계와 사랑에 있어 도무지 성장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그것은 프랑수아 트뤼포가 이 시리즈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앙투안은 천성적인 현실도피주의자다. ‘앙투안 드와넬 연작’은 감독과 배우와 인물이 함께 엮어나간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다. 오디션에서 뽑힌 장 피에르 레오는 물론, 콜레트, 크리스틴, 사빈느 역할의 세 여배우 - 마리 프랑스 피지에, 클로드 자드, 도로시가 들락거리면서 다섯 편이자 결국에는 한 편인 영화를 완성했다. 배우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자취가 남아 있으나, 그들은 배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인물인 양 자연스럽게 역할에 스며들었다.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1959)의 첫 촬영을 1958년 11월 10일에 시작했다. 그날 앙드레 바쟁이 40세로 생을 마감한다. 아버지로 여긴 바쟁의 죽음을 애도했던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를 그에게 바친다. <400번의 구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 앙투안은 슬프고 고독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인물에 변화를 가져온 건 장 피에르 레오라는 어린 배우였다. 오디션 당시 엄청난 열정으로 임해 트뤼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소년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트뤼포는 레오 덕에 각본보다 영화가 더 좋게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트뤼포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레오가 첫 시사에서 보여준 반응에서 알 수 있다. 촬영 내내 밝은 모습으로 행동했던 레오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속에 트뤼포의 어린 시절과 그의 현재가 함께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단편으로 기획됐던 영화가 장편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가 소년기의 아픈 경험들을 담기를 원했다. 십대에 이미 경찰서를 들락거린 트뤼포처럼, 13살 소년 앙투안은 가족과 학교가 공히 포기한 말썽꾸러기다. 거짓말과 가출과 도둑질로 인해 소년은 철창에 갇히고 감화원으로 보내진다. 앙투안은 말한다. “지겨워, 내 인생을 살고 싶어, 바다를 보고 싶어” <400번의 구타>의 마지막 장면은 그 바람에 대한 대답이다. 해변으로 달려간 소년은 세상으로 향하는 모험의 문턱에 선다. 트뤼포는, 자신이 태어난 이듬해에 장 비고가 내놓은 <품행 제로>에 견줄 만한 작품을 만들었다.

 

트뤼포는 <400번의 구타>의 속편에 대해 가끔 생각하면서도 속편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두려워했다. 그의 두려움은 옴니버스 영화 <스무 살의 사랑> 중 프랑스 편을 의뢰받는 순간 사라진다. 그는 앙투안이란 인물을 다시 한 번 등장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의 과거를 살짝 변주하기로 한다. 영화에 미친 트뤼포는 음악에 빠진 앙투안으로 변했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릴리안 리트뱅을 만났던 기억을 음악회에서 앙투안과 콜레트가 눈길을 주고받는 것으로 바꾸었다. 17살 소년 앙투안은 레코드 회사에서 일하면서 독립된 생활을 시작한다. 콜레트는 소년의 일상에 변화를 부른다. 소년은 소녀의 집 맞은편으로 숙소를 옮기고, 소녀의 가족과도 친해진다. 그러나 콜레트는 앙투안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그랬다. 아름다운 소녀 리트뱅을 놓고 경쟁했던 장 뤽 고다르와 트뤼포는 둘 다 쓴맛을 보고, 사랑의 실패는 자살 소동과 군 입대로 이어졌던 것이다(그러므로 다음 작품 <도둑맞은 키스>는 군인인 앙투안의 모습으로 발을 뗀다). 현실적인 소녀와 낭만적인 소년이 만났을 때 이미 예견된 첫사랑의 고통을 <앙투안과 콜레트>(1962)는 시리면서도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전한다.

 

연작의 세 번째 작품 <도둑맞은 키스>(1968)는 앙투안의 새로운 사랑이 그렇듯 덜컹거리는 작품이다. 촬영에 들어가고 며칠 뒤, 그 유명한 ‘앙리 랑글루아 사건’이 벌어진 탓이다. 당연히 랑글루아를 옹호했던 트뤼포는 일련의 사태들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인과 투사라는 두 가지 생활을 병행했던 트뤼포는 촬영장에 매번 늦게 도착했고 심지어 참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각본은 필연적으로 변화를 겪어야만 했으며, 배우들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어 내어 연기했다. 그런 까닭에 영화에 참여했던 스텝들은 <도둑맞은 키스>를 ‘작은 기적’이라 부른다. 연작 중 첫 컬러 영화인 <도둑맞은 키스>에서 앙투안은 여자 친구 크리스틴과 여신처럼 아름다운 부인 파비앙 사이에서 뒤뚱거린다. 그의 뒤뚱거림은 극중 그의 직업이 군인, 야간경비원, 사설탐정, 신발가게 점원, TV 수리공 등으로 바뀌는 것과 대응한다. 청년이 되어서도 앙투안은 모든 것에 서툴다. 그래서 그는 사랑스럽다.

 

<도둑맞은 키스>의 속편 격인 네 번째 작품 <부부의 거처>(1970)는 부부가 된 앙투안과 크리스틴의 이야기다(두 사람이 결혼한 걸 보고 싶다고 랑글루아가 트뤼포에게 말했다 한다).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현대음악의 불안한 향기는 부부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 크리스틴은 집에서 음악 레슨을 하고, 꽃 가게에서 일하던 앙투안은 사무 착오로 미국계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잡는다. 드와넬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나는 한편, 앙투안이 회사에 손님으로 온 일본 여자와 외도를 하면서 부부생활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트뤼포가 <부부의 거처>에서 원했던 것은, 레오 맥커리, 조지 큐커, 에른스트 루비치가 연출한 미국식 코미디의 분위기였다. 실제로 영화는 일상의 웃음으로 넘친다. 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주변인물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에필로그에서 재결합한 앙투안 부부는 사이가 나빠 보이는 이웃 부부가 예전에 했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때, 이웃 부인은 “두 사람은 이제 진짜로 사랑하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부의 거처>는 흐뭇한 미소로 마감된다.

 

 

연작이 이어지고 성공을 거두면서 드와넬이라는 인물과, 실재하는 두 사람 장 피에르 레오와 프랑수아 트뤼포 사이에서 웃기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트뤼포와 레오를 혼동한 카페 주인은 트뤼포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고 “영화가 옛날에 만들어졌나 봐요. 그 때는 많이 젊어 보이더군요”라고 말했다. 신문 가판대의 남자는 먼저 왔다간 레오를 트뤼포의 아들로 착각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레오와 트뤼포가 앙투안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융합되었음을 알려주는 예들이다. 트뤼포는 드와넬이 만화 캐릭터처럼 고정된 인물로 변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게다가 <부부의 거처>를 마쳤을 무렵에 이미 트뤼포는, 레오라는 배우가 하나의 인물에 고착될까봐 걱정했다. 트뤼포는 <사랑의 도피> (1979)를 끝으로 앙투안이라는 캐릭터를 더 이상 영화에 끌어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사랑의 도피>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보다 이전 네 편 영화를 요약하고 총정리하는 쪽을 택했다. 전작에서 뽑아낸 장면(과 새로 찍은 몇 가지 장면)으로 플래시백을 완성하고, 등장했던 인물들의 관계를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그래서일까, 연작을 마무리한 뒤 트뤼포는 <사랑의 도피>가 진짜 영화처럼 보이지 않아서 불편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앙투안 드와넬 연작’이 어쩌면 실패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앙투안 드와넬 연작’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의 도피>에서 앙투안은 편지를 쓰다 엄마가 가르쳐 준 단 한 가지 진실을 떠올린다. ‘중요한 건 사랑이다’ 앙투안이 그토록 현실 안팎을 서성인 것도 다 ‘사랑’ 때문일까. 그는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했으나, 그 시간의 자리엔 사랑이 남았다. <사랑의 도피>는 레코드점에서 키스하는 두 커플과 어린 앙투안의 모습을 교차하며 끝난다. 놀이기구를 타다 어지러워하던 소년은 삶과 사랑을 경험하며 더욱 심한 어지러움을 겪는다. 그 어지러움 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면 그건 사랑 덕분이다. 20년의 기록이 남긴 마지막 말씀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