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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프랑스 영화의 황금기:1930-1960

[리뷰] 장 비고 '라탈랑트 L'atalante'


모든 사랑 찬가 영화의 원형, 혹은 영화사상 최고의 사랑영화. <라탈랑트>는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막 결혼한 신혼부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라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그리는 이 영화는 그 단순한 플롯 안에 당시 흑백의 화면과 영화기술로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장면과 섬세한 심리를 담아낸다.
평생을 시골에서 자란 쥘리엣은 “어릴 때부터 별난 성품과 취향을 가진 탓에” 어머니나 마을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라탈랑트 호 선장의 아내가 되어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배 위에서 생활하며 떠도는 생활이 그리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상 가장 먼 곳까지 여행할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바지선인 라탈랑트 호는 그저 프랑스의 강줄기만을 따라 흐를 뿐이다. 쥘리엣이 그토록 선망하던 파리에 도착한 날, 그녀는 장의 오해와 질투로 인해 크게 싸우게 되고, 결국 파리를 제대로 즐길 새 없이 떠나야 할 상황이 되자 몰래 배에서 내린다.
“물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던 쥘리엣의 믿음은, 쥘리엣이 떠나고 나서야 장에게 깃든다. 쥘리엣과 헤어진 뒤 극심한 고통을 겪던 장은 간절히 쥘리엣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차디찬 겨울의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결혼식 날 입었던 바로 그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아름답게 장을 향해 웃고 있는 쥘리엣의 환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오늘날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들에서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남자 혹은 여자의 장면이 삽입되곤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유전자 깊이 <라탈랑트>의 영향이 새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원래 물은 자궁 속 양수를 은유하기에 흔히 부활과 새로 태어남을 뜻하는 상징으로 쓰이지만, <라탈랑트>에서 물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랑을 환기시키고 다시 확신시키며, 지리멸렬한 일상의 다툼과 오해로 인해 가려진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녀를 향한 그의 사랑을 원래 상태 그대로 빛나도록 정화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 장면은 <품행제로>에서의 베개싸움 장면과 함께 흔히 장 비고의 영화들이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데에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드러내듯, 이 장면들은 일상의 평범한 사건과 대화와 행동들에 대한 묘사 사이에서 어느 순간 뜻밖에 드러나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장 비고의 영화에는 의외의 운동감과 역동성이 있다. 장과 쥘리엣에겐 세상 전체라 할 좁은 라탈랑트 호 안의 선실은 아기자기하게 묘사되지만, 한정된 공간 안에서도 <라탈랑트>는 다양한 앵글과 숏을 선보이며 과감한 클로즈업과 풀숏을 번갈아 교차하며 ‘인물 간 관계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반면 예컨대 선술집에서 쥘리엣이 행상인과 춤추는 장면 등 배 바깥의 육지로 카메라가 나왔을 때에는 역동적인 율동성을 갖고 움직인다. 이러한 장면들이 있기에 앞서 말한 유명한 장면의 서정적 아름다움이 더욱 배가되는 것이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화면들은 상당부분 촬영을 맡은 보리스 카우프먼의 공이기도 하다. 지가 베르토프의 동생으로 이후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촬영감독으로 활약했던 그는 장 비고와 작업했던 기간을 ‘영화 천국(cinematic paradise)’이었다고 회상했다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영화에 쏟아지는 ‘모든 로맨스 영화의 원형’ ‘영화사상 최고의 사랑영화’라는 영광을 비고가 살아생전부터 누렸던 것은 아니었다. 29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그는 다큐멘터리 단편 두 편을 포함해 모두 네 편의 영화만을 남겼을 뿐이며, <라탈랑트>는 그중 유일한 장편이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비고는 이 영화를 만들 당시 병석에 누운 채 겨울철의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연출을 해야 했고, 결국 영화가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봉을 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설상가상, 배급사는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65분의 러닝타임으로 난도질해 개봉했고, 흥행을 고려해 당시 파리에서 인기를 끌던 유행가를 끌어들여 영화에 삽입하는 한편 제목까지 바꾸어 버렸다. 1990년 감독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판본의 프린트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이탈리아의 RAI 배급사의 창고에서 발견되기까지, 영화는 오랫동안 소실과 부분복원만을 반복한 채 간신히 누더기 상태를 연명해 왔다. 그러나 무수한 가위질과 기나긴 세월의 더께에도 불구하고 <라탈랑트>는 여전히 마법 같은 아름다움으로 황홀한 손짓을 보내며 영원한 사랑의 송가가 되었고, 수많은 후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비로소 89분의 제대로 복원된 버전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후대의 관객인 우리에게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글/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