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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약자들의 연대로 그린 희망 - <영웅>


[리뷰]약자들의 연대로 그린 희망

- 제제 감보아의 <영웅>



15살 때 군대에 끌려간 비토리우는 20년간 내전의 현장에서 군인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지뢰에 한쪽 다리를 잃고 전역해야 했고, 그는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돈다. 한편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마누는 현재 예민한 사춘기를 지나는 중이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 공부 대신 도둑질로 돈을 모은다. 영화는 두 개의 별개의 이야기, 즉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이용사의 이야기와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진행시키다 점점 두 이야기를 엮으며 서로를 서로에게 인도한다. 영화의 초반 이 둘이 부자일 가능성이 제시되고 영화가 진행되며 이는 점점 커지는데, 이는 충실하게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라가는 이 영화에서 일종의 서스펜스를 발생시키고 유지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비토리우가 병원을 나와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나 그가 차례로 만나게 되는 이들, 특히 여자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과 모습들, 그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사춘기를 보내는 마누의 일상을 통해 앙골라의 현실이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앙골라 전체 인구의 1/10 이상이 모여 살고 있는 수도 루안다의 ‘만남의 광장’에는  오랜 내전으로 생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을 찾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경제적 양극화는 갈수록 극심해지고 물가는 살인적이며, 아이들은 공부에 열중하기보다 거리에서 도둑질을 배운다. 독립전쟁과 내전을 거치며 다리를 잃은 대신 받게 된 훈장은 그저 비토리우의 지난 삶의 징표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 아무런 존중을 받지 못한다. 부를 손에 쥔 극소수(대체로 포르투갈인들이다)의 으리으리한 고급 맨션 뒤로 네이티브 앙골라인들이 사는 슬럼가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때로 선생과 제자, 너그러운 소비자와 생산자, 혹은 우연히 마주쳐 인연을 맺고 도움을 주고 받는 남과 여 등,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한 공간 안에 존재할 수도 있지만, 이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높고 깊은 계급의 장벽이 굳게 서 있다. 부자가 관대하고 동정심 넘치며 착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그렇지 않은 이와 진짜 친구나 이웃이 될 수는 없다. 후아나의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일종의 유사-데이트를 하던 비토리우가 결국 그녀를 포기하는 모습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후아나의 선의와 착한 마음씨는 비토리우에게 의도한 결과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감독의 시선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희망을 놓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비토리우와 마누가 마침내 제대로 만나게 되는 것은 비토리우의 도둑맞은 의족을 통해서다. 영화의 서스펜스가 해소되는 이 장면에서, 감독은 상투적인 신파 대신, 약자들의 ‘연대’를 답으로 채워 넣었다. 아마도 이들의 저녁식사는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이런 희망을 통해 비로소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비토리우와 마누뿐이 아니다. 관객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김숙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