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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동시대 영화 특별전

[리뷰] 스티븐 소더버그의 <헤이와이어>

익숙한 참신함



스티븐 소더버그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감독이다. 매년, 혹은 일 년에 두 편까지 신작을 내놓을 뿐 아니라 제작자로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심심찮게 은퇴 소식을 전하면서도 누구보다도 바쁘게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며 번번이 은퇴를 번복한다. 게다가 그의 영화는 매번 예상치 못한 소재로 매번 다른 장르를 선보인다. 그의 열혈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현기증을 느끼기 일쑤다. 한동안의 지지부진함을 딛고 <조지 클루니의 표적>(1998)이 성공한 뒤 이어진 소더버그의 행보는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때 쏟아진 ‘새로이 등장한 젊은 작가주의 감독’이라는 평가보다는, ‘누구보다도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장르영화를 만들면서 여기에 자신의 개성을 흐릿하게만 남겨놓는 감독’으로서의 성향을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의 ‘좋은 친구’인 조지 클루니 같은 스타들과 함께 한 블록버스터와,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인디풍’의 소박하고 다소 실험적인 영화를 자유롭게 오가며 신작들을 쏟아낸다.


<헤이와이어> 역시 이런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액션극이다. 줄거리는 여느 비밀요원이 나오는 액션영화와 별 다르지 않다. 조직과 옛 연인에게 배신당한 인물이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며 음모를 밝혀내고 복수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것이 소더버그의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주인공은 여자다. 실제 이종격투기 선수이기도 한, 영화배우로서는 무명인 지나 카라노 주변으로 마이클 더글라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안 맥그리거, 마이클 패스벤더, 빌 팩스턴, 채닝 테이텀, 거기에 감독 겸 배우 마티유 카소비츠까지, 쟁쟁한 남자스타들이 조연으로 포진해 있다. 이러한 화려한 캐스팅은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의 올스타 캐스팅과 대비를 이루는데, <헤이와이어>의 남자 조연들은 마이클 더글라스를 제외하면 철저히 지나 카라노의 말로리 케인을 빛나게 해주기 위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말 그대로 ‘들러리’의 지위로 하락한 캐릭터들을 연기한다. 그녀를 배신했던 이들은 모두 처참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둘 다인 장면들을 연출하게 된다. 첫 시작부터 벌어지는 채닝 테이텀과의 격투씬,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바르셀로나 작전에서의 통로 액션씬,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텔방에서 마이클 패스벤더와 벌이는 격렬하고 긴 격투씬이 모두 그러하다. 좁은 공간에서 육체적으로 잘 훈련된 배우들과 함께 별다른 카메라 트릭 없이도 굉장한 볼거리를 선사하면서, 여기에 남자조연들을 무명 여배우의 손에 ‘묵사발’로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말로리 케인은 그저 육체적 능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 케네스(이안 맥그리거)와 빤한 수법을 꿰뚫어보고 미리 대비하는 지혜까지 갖췄다.


<헤이와이어>의 액션과 스타일이 더욱 눈에 띄는 것은, 현재 액션/스릴러 장르를 잠식하고 있는 ‘클로즈업의 짧은 컷, 빠른 편집, 핸드헬드 카메라’가 아닌, 오히려 굉장히 복고적인 카메라워킹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세피아톤이 두드러지는 화조, 풀숏과 롱테이크로 구성되는 격투씬. <제이슨 본> 시리즈 이후 거의 공식처럼 굳어진 유행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런 액션 스타일을 ‘참신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혹은 다소 늘어지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거나. 그러나 액션에서 스피드보다 신체의 동적 아름다움과 여기서 발현되는 파워를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환호성을 동반한 쾌감을 안겨줄 것이다.


그런데 영화의 거의 마지막, 음모가 거의 밝혀지면서야 비로소 나오는 이안 맥그리거와 마이클 패스벤더의 대화씬으로 가면, 이 영화가 그저 강한 여성의 화끈한 액션물의 쾌감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른바 알파 여성을 대하는 우리 시대의 여전한 당혹스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듯 보이는 지점이 있다. 돈과 이권이 걸렸을 때 여성은 아무리 동료 혹은 옛 연인이라 한들 손쉽게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존재다. 그녀의 능력은 손쉽게 폄하된다. 그리고 이 폄하의 이면에는 이른바 ‘여자를 죽여본 적은 없다’는 기사도 정신이 공존한다. 강한 여성은 여러 모로 기존의 성 역할과 젠더 구분을 뒤흔드는 존재이지만, 우리는 그 ‘흔들림’ 이후의 혼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강한 여성에 대한 폄하는 그 능력에 대해 가늠할 수 없음과 그로 인해 유발되는 공포의 다른 표현이 된다. 결국 그녀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합당한 거래를 제시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글/ 김숙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