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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붉은 모란 - 화투 승부

붉은 모란 - 화투 승부 緋牡丹博徒・花札勝負 / Red Peony Gambles Her Life

 

 

1969│98min│일본│Color

연출│가토 다이

원작│이시모토 히사키치

각본│스즈키 노리부미, 도리이 모토히로

촬영│후야 오사

음악│와타나베 다케오

편집│미야모토 신타로

출연│후지 준코, 아라시 간주로, 다카쿠라 겐, 와카야마 도미사부로


 

후지 준코가 주연한 도에이의 '붉은 모란 시리즈’는 총 8편이 만들어졌다. 야마시타 고사쿠를 시작으로 가토 다이 등의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는데, 가토 다이는 이 중 세 편을 만들었다. 그 첫 작품이 3화인 <화투 승부>로, 독립적인 작품이지만 눈먼 소녀를 돕는 야쿠자 도박꾼 오류(후지 준코)의 이야기가 6화에서 반복되기에 연작이기도 하다. 가토 다이의 탁월함은 폭력의 격전과 시정 넘치는 연애적 사건 둘 다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연출에 있다. 임협 장르에 품격을 더하는 것. 이를테면 오류는 단도와 총을 기모노의 넓은 소매 속에 숨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해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지만 여전히 여성적 풍미와 관대함을 잃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의 나고야. 철로변을 걷고 있던 오류는 눈먼 아이가 기차에 치일 뻔한 순간 재빨리 구해준다. 이 우연하고 당돌한 시작의 사건은 오류의 인정과 선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실은 간단치 않은 질문으로 진전된다. 결국 이 아이의 운명은 구제될 것인가? 나중에 니시노마루 일가에 신세를 지게 된 오류는 이 아이가 자신을 사칭하며 사기도박을 일삼는 여도박사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니시노마루의 외동아들 지로는 이 일가와 라이벌 관계인 긴바라 일가의 딸 야에코를 사랑한다. 두 일가가 사업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벌이게 되면서 연인들의 사랑에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결국, 니시노마루가 긴바라 일당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고 오류는 혈혈단신 복수를 하기 위해 결전을 치른다. 이야기의 얼개는 임협 장르의 주된 특징에 기대고 있지만 가토 다이의 연출의 강세는 도리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남자와 여자의 멜로드라마를 부각시킨다. 지로와 야에코의 사랑은 라이벌 가문의 적대성 가운데 피어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비극적 사랑을 대중적인 클리셰로 드러내는데, 그 가운데 오류와 하나오카(다카쿠라 겐)의 소란스럽지 않은 사랑이 더해진다. 오류를 마음에 품고 있던 하나오카가 그녀의 살극의 책임을 대속하면서 여기서도 비극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이들의 사랑은 하나오카가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범상한 애정은 아니다. 영화는 이 둘이 빗속에서 처음 만나는 순간의 시정을 매혹적으로 표현한다. 오류가 그에게 우산을 넘겨줄 때 손가락이 가볍게 접촉하는데 그 순간 하나오카는 접촉의 감각에서 그녀의 온정을 죽은 어머니의 기억으로 떠올린다. 최종적인 액션이 벌어지기 바로 전에 눈밭을 둘이 걸어가는 순간이나 한 손에 단도를, 다른 손에는 총을 들고 수십 명의 적을 분주히 쓰러뜨리는 난투 장면은 이 강렬한 액션의 폭력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그것은 복수라기보다는 마치 폭력의 에너지들을 거둬들이는 것으로 보일 만큼 우아하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