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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다정한 작별 인사 - 프랑수아 트뤼포의 <신나는 일요일>

 

트뤼포는 <이웃집 여인>에 이어 다음 작품에서도 파니 아르당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우기로 결심한다. 트뤼포는 특히 <이웃집 여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외모가 ‘필름 느와르’의 여주인공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신나는 일요일>의 주된 틀은 히치콕 풍의 스릴러이다. 이중의 살인 혐의를 받게 되어 자신의 사무실에 숨어있게 된 한 남자(장 루이 트랭티냥)가 있다. 자신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심하는데, 여기에 그의 비서(파니 아르당)가 동참한다. 공간에 고립된 남자와 직접 상황 안으로 뛰어 들어가 증거를 찾아내는 여자의 설정은 히치콕의 <이창>을 떠올리게 한다. 트뤼포는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플롯 자체보다, 과거의 미국영화들, 필름 누아르나 갱스터 영화, 탐정물, 코미디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조명과 세트, 의상, 소품 등은 흑백촬영을 위해 특별히 공을 들였고, 음악 또한 ‘<빅 슬립> 같은 워너 브라더스 스타일’을 주문했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와 함께 이를 이끌어가는 빠른 리듬과 활기가 영화의 주를 이룬다.

 

오프닝에는 밝은 음악과 함께 경쾌하게 거리를 걷는 파니 아르당의 모습이 등장한다. 곧이어 사냥터에서 벌어진 최초의 살인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범인의 모습은 부분적으로만 나타나고, 갑작스런 총격과 함께 한 남자가 얼굴 전체에 피가 튄 채 쓰러진다. 마찬가지로 예기치 않던 순간에 파니 아르당이 뺨을 맞는 장면에서처럼, 급변의 순간들이 영화 곳곳에 존재하고, 불균질한 요소들이 빠른 호흡의 리듬으로 연결돼 특유의 유희성을 강조한다. 덕분에 <신나는 일요일>의 시간과 사건은 현실의 것과는 별개의 논리로 진행된다. 시간과 공간은 물론 날씨마저도 그러하다(파니 아르당이 조사를 위해 사무실을 나설 때 쏟아지던 장대비는 그녀가 차를 바꿔 타자마자 그쳐버린다!).

 

영화의 초반에는 전혀 호감을 갖고 있지 않던 두 남녀가 어느덧 공모의 관계로 바뀌어가더니, 결국에는 남자의 결백의 입증하는 것과 동시에 결혼에 도달한다. ‘긴 토요일 밤’(찰스 윌리엄스의 원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지나 해피 엔딩으로 맞는 ‘신나는 일요일’인 것이다. 영화 내내 살인 사건을 쫓아 주인공을 돌며 사진을 찍던 사진 기자는 영화의 엔딩에선 두 사람의 결혼식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던 중 실수로 떨어뜨린 카메라의 조리개가 아이들 앞으로 굴러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아이들이 공을 차며 놀 듯 조리개를 주고받으면서, 자연스레 카메라와 유희, 유희로서의 영화를 상기시킨다.

 

한편 배우들의 연기 또한 플롯의 설득력과 영화의 엉뚱하고 유쾌한 매력을 더한다. 특히 파니 아르당이 연기하는 ‘바바라’는 평소 취미 삼아 하던 연극 연습에서 불만을 느끼게 되고, 때마침 경찰에 쫓기고 있던 자신의 상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녀는 아마추어 탐정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역할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면서 호기심과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실마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파니 아르당의 모습은, 그런 ‘바바라’의 모습을 생기있게 그려낸다.

 

 1983년, 영화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트뤼포는 뇌종양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이듬해인 1984년 가을, 트뤼포는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그가 계획했던 몇 가지 기획들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예기치 않게 그의 유작이 되었지만, <신나는 일요일>은 늘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과 배우에 대한 예찬을 멈추지 않았던 그다운 작별인사로 남게 되었다.(장지혜: 관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