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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프랑수아 트뤼포 전작 회고전

[리뷰] 끝나지 않은 결혼식 - 프랑수아 트뤼포의 <비련의 신부>

 

 

프랑수아 트뤼포의 1967년작 <비련의 신부(원제는 검은 옷을 입은 신부La Mariee Etait En Noir)>는 미국의 작가 코넬 울리치(윌리엄 아이리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결혼식에서 남편을 잃은 신부가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살해함으로써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코넬 울리치는 1930~40년대 주로 활동한 추리 소설가로 누아르의 아버지로 불린다. 트뤼포는 코넬 울리치의 소설을 읽고 즉시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가 존경한 감독인 알프레드 히치콕은 1954년에 이미 울리치의 소설을 영화화하여 <이창Real Window>를 만들었다. 트뤼포는 울리치의 블랙 시리즈(Black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소설들) 중 두 편을 영화화했는데, 1940년에 출간된 『검은 옷을 입은 신부The Bride Wore Black』와 후에 <미시시피의 인어La Sirene Du Mississipi>의 원작이 되는 1947년의 『어둠 속의 왈츠Waltz into Darkness』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잔 모로(극중 줄리)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검은 옷을 입은 그녀는 창문에서 뛰어 내려 죽으려고 하지만 어머니에게 저지 당한다. 그리고 여행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녀가 가방에 차곡차곡 포개어 넣는 옷들은 모두 검은 색과 흰 색. 이후 등장하게 될 그녀의 의상들이다. 그녀는 검고 흰 아름다운 옷을 몸에 걸치고 그녀의 남편을 죽게 만든 다섯 남자를 찾기 시작한다. 그녀의 수첩에는 그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리고 한 명씩 그들을 찾아 내어 죽일 때마다 그 이름들을 지워 나간다. 그녀의 목표는 다섯 개의 이름을 모두 지우는 것이다.

 

트뤼포는 원작에 충실한 237페이지의 각본을 썼다. 등장 인물의 이름과 그들이 죽는 방식은 원작과 영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트뤼포는 원작의 반전이 있는 결말을 대폭 수정하여 소설 속에서 신부인 줄리를 추적하는 탐정의 역할을 거의 삭제했다. 대신 복수 과정 그 자체, 즉 차질 없이 살인을 하기 위해 꼼꼼히 준비하고 모든 것을 쏟아 붇는 여주인공의 모습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트뤼포가 코넬 울리치의 소설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울리치의 작품은 다른 추리 소설들과 달리 탐정의 역할이 축소되고 반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트뤼포는 울리치에 대한 글에서 그의 인물들에 대해 미국적인 영웅과는 정반대라고 썼다. 그의 삶과 영화 안에서 영웅적 용기는 항상 기지나 재치보다 높게 평가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에게 반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원작보다 더 나아가 아예 탐정의 역할을 하는 형사의 존재를 지우고 비련의 신부가 벌이는 복수극을 완성시킬 수 있는 각본을 썼다. 그가 원한 것은 어떤 영웅적 의식도 없이 순수하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이었다.

 

수정된 각본에 따라 여주인공을 맡은 잔 모로의 역할은 막중했다. 초점은 온전히 여주인공에게로 옮겨 갔다. 트뤼포는 감정적이고 선악에 고뇌하는 인물이 아니라 강박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을 원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죽어가는 남자 주위로 만돌린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잔 모로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하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기꺼이 유혹하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인물을 연기한다. 살인은 하나의 연극처럼 그녀의 연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되는데 때때로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에서 트뤼포는 주인공이 기지와 재치, 그리고 태연한 즉흥 연기를 통해 상황을 헤쳐나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트뤼포의 기지였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비련의 신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한 남자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 이내 배경 음악으로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복수가 끝날 때까지 비련의 신부에게 결혼식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손소담: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