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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가을날의 재회

[리뷰]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흔들리며 -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

[리뷰]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흔들리며

- 제임스 그레이의 <투 러버스>




제임스 그레이의 주인공은 늘 확연히 나뉘어 있는 두 개의 극단적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 사이란 낮과 밤 사이일 수도 있고, 법과 무법 사이일 수도 있으며, 유태계와 비유태계 사이일 수도 있고, 가족과 개인 사이일 수도 있으며, 안정과 불안 사이일 수도 있고, 실패와 성공 사이일 수도 있으며, 삶과 죽음 사이일 수도 있다. 그 중간에서 방황하다 마치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어떤 운명에 이끌린듯 한쪽 구석으로 밀쳐지게 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탁하고 축축하고 멜랑콜릭한 회색지대, 그곳이 그의 주인공들이 우리를 데리고 가려는 목적지란 생각마저 든다. 그들이 자신이 발을 담그고 있는 장르가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이 결국에는 한 묶음의 가치 체계와 전혀 상반되는 다른 한 묶음의 가치 체계 사이에서 짓이겨지며 멜로드라마적 정조를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투 러버스>에도 두 세계가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유태계 가족의 장남인 레너드(호아킨 피닉스)는 약혼녀가 떠나버린 뒤 거듭 자살을 시도하다 두 여자를 만나게 된다. 차분한 흑발의 산드라(바네사 쇼)는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알게 된 지인으로 그와 같은 유태계 출신에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안정된 성향과 평범한 취향의 인물이다. 반면 눈부신 금발의 미셸(기네스 펠트로)은 그가 사는 아파트 위층에 사는 이웃으로 유태인 문화에 무지함은 물론 자신이 근무하는 로펌의 중역과 불륜을 벌이며 약물중독 증상까지 보이고 있는 불안한 심리 상태의 소유자다. 두 여자가 등장할 때, 관객은 레너드가 산드라의 세계에 정착하는 것이 이성적인 선택임을 알면서도 미쉘의 세계를 향해 손을 뻗으려 안간힘을 쓸 것 같다는 인상을 즉각적으로 받는다.


이 영화의 매혹은 언뜻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운동의 벡터로 체험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첫 장면 하나만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관객의 눈앞으로, 앙각으로 포착된 한 남자의 상체가 숨막힐 만큼 어둡고 불길한 공기에 휩싸인 채 프레임 안을 부유하고 있다. 곧 그가 다리 위를 걷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다시 곧 그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던 그는 한 여자의 섬광을 본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는데, 이 갑작스럽고 애매모호한 자살행위 앞에서 관객은 무엇보다 그 육체의 운동에 스스로를 일치시켜 장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 운동이란 물론 중력에 의한 하강운동과 부력에 의한 상승운동이다.  이 대조적 방향의 운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와 함께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흔들리도록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부력이 필요하지만,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살려면 중력이 필요하다. 막 물 밖으로 나온, 하지만 항상 반쯤은 물에 빠져 있는 듯한 레너드는 그러나 자신에게 중력보다 부력이 절실하다고 믿는 것 같다. 치명적인 착각이다. 그래서 그는 산드라에게로 내려가 닻을 내리기보다 미쉘에게로 헤엄쳐 올라가려고 한다. 두 번의 섹스 역시 정확히 그런 방식으로 찍혀 있다. 산드라와의 섹스는 침실에서 정상 체위로 이루어지지만, 미쉘과의 섹스는 황량한 공중의 옥상에서 벽을 맞대고 이루어진다. 물론 산드라의 세계는 중력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미쉘의 세계는 부력이 전염되는 세계이다. 그 가운데서 결국 레너드는 미쉘을 따라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다, 자신이 창밖으로 던진 가방처럼 땅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비로소 파도의 유혹으로부터 뒷걸음질쳐서 산드라의 품속으로 주저앉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이 미어진다. 분명 더 나아 보였던 것으로의 선택이 끝난 뒤에도 슬픔과 괴로움은 지독한 수준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산드라를 껴안는 레너드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과 숨이 목에 걸린 듯한 목소리가 그 여파를 견디고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그레이는 탈출구나 도주로를 쉬이 허락하지 않으며, 관객의 폐소공포증적 우울을 끝까지 해소시켜 주지 않는다. 우리는 육지와 바다 사이 어딘가에서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미아가 된 듯한 기분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이후경영화평론가